살아 있는 사람 공간인 양택에서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서열이 높다. 이를 ‘좌상우하(左上右下)’라고 한다. 하지만 죽은 자 공간인 음택(陰宅)에서는 이 원칙은 정반대가 된다. ‘우상좌하(右上左下)’ 즉, 오른쪽이 왼쪽보다 서열이 높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이 바라보는 공간에 대한 전통시각이다. ‘좌상우하(左上右下)’ 원칙을 적용하려면, 궁궐, 사찰, 서원, 사대부 가옥을, ‘우상좌하(右上左下)’ 원칙을 적용하려면, 종묘나 사당, 왕릉 등을 답사해 보면 된다.
좌상우하 원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문화재는 ‘궁궐(宮闕)’이다. 궁궐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정전 구역이다. 경복궁에서 정전은 ‘근정전’이다. 이 곳 앞 넓은 공간을 ‘조정(朝庭 : 조회를 하는 마당)’이라 불렀다. TV 사극(史劇) 단골 대사인 ‘조정대신’이란 말은 바로 이 곳 마당에 설 수 있는 신분을 말한다. 그러한 신분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문반과 무반이라 부른다. 이들을 흔히 ‘양반(兩班)’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조회를 할 때 이들 위치는 어떻게 될까? 신하들 좌석 배정 기준은 근정전 용상에 좌정해 남쪽을 바라보는 국왕이 된다. 국왕을 기준으로 왼쪽(동쪽) 품계석 쪽은 문반이, 오른쪽(서쪽) 품계석 쪽은 무반이 차지한다. 이때 문반은 무반보다 더 높은 지위가 된다. 그 이유는 조선사회가 문인을 무인보다 우대했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 관직인 3정승 가운데 좌의정과 우의정이란 관직이 있다. 누가 높을까? 물어 온다면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관직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될 수 있다.
- 병산서원 강당(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본 전경. /뉴시스
좌상우하 원칙은 ‘서원(書院)’도 똑같이 적용된다. 서원 중심 건물인 강당 뒤쪽에는 사당이 위치하고, 강당에서 전면을 보았을 때 앞마당 좌우에는 각각 건물이 한 채씩 있고, 강당 정면에는 루(樓)가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서원건물 배치법이다. 이 강당에서 본 좌우 건물은 유생들 기숙사인데, 왼쪽 건물을 동재, 오른쪽 건물을 서재라 부른다. 이곳에서 좌상우하 원칙을 적용하면, 좌측 동재가 우측 서재보다 서열이 높다. 따라서 유생들 가운데 선배들이 동재에 거주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왕릉은 오른쪽이 왕, 왼쪽이 왕비
그런데, 죽은 자 공간 즉, 음택(陰宅)에서는 이러한 상하질서는 정반대가 된다. 바로 ‘우상좌하(右上左下)’원칙이다. 다시 말해서 오른쪽인 서쪽이 왼쪽인 동쪽보다 지위가 높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는 종묘, 사당 또는 왕릉 등을 답사할 때 적용하면 된다.
먼저 종묘(宗廟)를 보자. 종묘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 위패를 모셔둔 왕가 사당으로 중심 건물은 정전(正殿)이다. 정전 내부에는 왕과 왕비 위패가 19칸에 각각 모셔져 있다. 그렇다면 조선 창업자 태조 이성계 위패는 어느 곳에 모셔져 있을까? 죽은 자 공간에서는 오른쪽이 높은 지위라 했으므로, 당연히 오른쪽(서쪽) 맨 끝 자리에 태조 이성계 위패가 놓이게 된다. 이어서 동쪽으로 차례로 태종, 세종, 세조 등 순서로 위패를 모시고 여기에서 누락된 임금과 왕비 위패는 영녕전으로 옮겨간다.
이번에는 조선 왕릉으로 한 번 가보자. 조선 왕릉은 총 42기인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6월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 분포되어 있는데, 조선 519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훌륭한 역사 체험 장소이다. 왕릉에서 좌우 우선순위를 파악하려면 주인 시각을 정확히 알아야한다. 왕릉 주인공은 당연히 돌아가신 왕과 왕비이다. 따라서 기준이 되는 조형물은 돌아가신 분들이 누워 계시는 봉분이다. 그 봉분에서 정자각 혹은 홍살문 쪽으로 바라보는 방향이 바로 좌우 기준이다. 그러므로 봉분에 서서 정면을 보았을 때 쌍분인 경우 오른쪽(右上)이 왕 무덤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에는 선조들 전통적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지키고 가꾸려면 선행 작업으로 우리 문화재 보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후손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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