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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 김광섭

작성자우보|작성시간16.05.23|조회수843 목록 댓글 0

     저 녁 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집「겨울날」(창작과비평사 刊 1975년)

 


이어령  에세이 詩畵展

    金光燮「저녁에」

 

 이산(怡山) 김광섭(金光燮)은 오염되어가는 지상 문명을 고발한「성북동 비둘기」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천상의 별을 노래한「저녁에」시인이기도 하다. 지상과 천상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 세계에서는 한 울타리 속에 있다. 인간은 땅 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영어로 컨시더(consider)라고 하지만, 원래 뜻은「별을 바라다본다」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실제 바다든 삶의 바다든 별을 보고 건너갔다. 점성술과 항해술은 근본
적으로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천문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이 세상에서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밤 하늘의 별이요, 마음 속의 시(도덕률)」라는 칸트의 경이(驚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하나 공통점이 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러니까 어둠이 와야 비로소 그 정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로 시작되는 그 詩題가「저녁에」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시 의미를 더 깊이 따져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해서「저녁에」시를 이끌어가
는 언술은「별」(천상)도「나」(지상)도 아니다.「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라는 언술 주체는「나」가 아니라「별」이다. 나는「보다」의 목적어로 별의 피사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그렇게 많은 사람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의 다음 시구에서는 지상의 사람이, 그리고「나」가 언술 주체로 바뀌어 있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 별과 사람, 그리고「내려다보다」와 「쳐다보다」가 완벽한 대구를 이루며 동시적으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달리 언어로 표현할 때는 불가피하게 말을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그 순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저녁에」도「별」이「나」보다 먼저 나와 있다. 즉 별이 먼저 나를 내려다 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선에 있어서 나는 수동적이다. 첫 행 시점과 발신자가 별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점 거리를 결정하는「이」,「그」,「저」지시 대명사를 보면 별은「저렇게 많은 것」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은「이렇게 많은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점 거리가「저렇게(별)」보다「이렇게(사람)」가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처럼 본다는 것은 대상을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보고 남이 나를 본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격렬한 싸움인 것이며, 인간의 삶과 존재란 결국 이러한 눈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명제「타자(他子)는 지옥」이란 말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러한 눈싸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정다운 것이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저렇게 많은 별중에」라고 불렸던 별이 나중에 오면「이렇게 정다운 별하나」로 바뀌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렇게에서 이렇게로 변화하게 만든 그 시점은 누구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저녁에」라는 시 읽기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답안을 퀴즈 문제처럼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펼쳐보면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시 제목처럼「저녁」이라는 그 시간이다. 별이 나를 내려다본 것이나 내가 별을 쳐다본 것이나 그 이전에 저녁이 먼저 있었다. 저녁이 없었다면, 어둠이라는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내려다보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진다.

 

  저녁이란 어둠의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하나와 나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異次元)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너하나 나하나」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둘째연 시구
이다. 만남은 곧 헤어짐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그 진부한 주제가 여전히 이 시에서 시효를 상하지 않고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시적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에서 볼 수 있듯이 빛과 어둠의 정반대 되는 것이 그 사라짐의 명제 속에 교차되어 있다. 그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이면서도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는 빛과 어둠이라는 합칠 수 없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저녁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다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 이것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이다.


  그러나 김광섭은 한국 시인인 것이다. 사람들은 멀고 먼 하늘에 자신의 별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고 믿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천문학의 별을 배우기 전에 멍석 위에서 별하나 나하나를 외우던 한국의 어린이였다. 그러기 때문에 별의 패러독스는「타자(他子)는 지옥이다」가 아니라「타자(他子)는 정(情)이다」로 변한다. 그리고 그 한국인은 윤회의 길고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 다시 만나는 또하나 저녁을 기다린다. 그것이 한국인 가슴 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있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이다. 그 시구가 화가와 만나면 한폭 그림이 되고, 극작가와 만나면 한 편 드라마가, 그리고 춤추는 무희와 만나면 노래와 춤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만나서는「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만남이 된다. 저렇게 많은 별 중 하나와 마주보듯이 박모(薄暮)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상의 별하나와 만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운명의 만남을…….
  그리고 그렇게나 먼 빛과 어둠의 두 세계로 사라진다해도 우리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시구를 잊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만나랴」라는 의문형으로 끝나있지만 그러한 시적 상상력이 존재하는 한「정다운 너하나 나하나」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몇 광 년 먼 거리를 소멸시키고 영원히 마주  보는 시선을 어떤 시간도 멸하지 못한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수직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싸는 저녁의 시간……. 그 순간 만남을 영원한 순환 시선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시가 맡은 소중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

* 조선일보 2014년 1월 7일 덕성여대 김현숙 교수 글이다.

 "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수화 김환기(金煥基·1913~197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에 열린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자 뉴욕시대 점화(點畵)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환기미술관에서 개최한 기념전 1부 제목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인 것만 봐도 이 그림 위상과 상징성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화가는 두고 온 고국 산천과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김광섭 시 '저녁에'를 하루 종일 되뇌며 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 시 마지막 구절이다. '환기 블루'라 불리곤 하는 푸른빛이 어딘지 모르게 온화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화가가 고국 산천과 벗들을 목놓아 그리워하면서 점을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환기 푸른색 추상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한다면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바로 앞 구절이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임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환기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32×172㎝/개인소장>

 

<친구 초상. 구본웅 작>

 

* 인연을 만드는 대장간 (구활/수필가, 매일신문 '구활의 고향 맛')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은 애절하고 그리운 정이 화폭 속에 알알이 박혀있다. 화가 고향은 목포 앞바다 안좌도라는 섬이다. 그는 어릴 적 바다를 보며 자랐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란 그림은 뉴욕 생활에 권태가 깃들 무렵 김광섭 시인이 소포로 부쳐준 ‘저녁에’란 시를 읽고 그걸 소재로 그린 것이다. 시 한 편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향을 떠올려 준 것이다.

 그는 큰 캔버스를 끄집어내 점을 찍고 그 속에 바다를 그려 넣었다. 화가는 하루 16시간씩 작업하면서 출렁이는 파도와 별빛과 달빛을 투사시켰다. 그 외에도 보고 싶은 고향 산천과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을 그려 넣었다.

 화가 아내는 재혼으로 얻은 김향안이다. 그녀는 시인 이상 아내였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닌 신여성 중에서도 뛰어난 재원이었다. 스무 살 때 여섯 살 많은 이상과 결혼했으나 이상은 4개월 만에 요절하고 말았다. “결혼 4개월 동안 낮과 밤이 없이 즐긴 밀월은 월광(月光)으로 기억할 뿐”이라며 이상을 추억하곤 했다.

 이상 본명은 김해경이었고, 김향안 본 이름은 변동림이었다. 딸 셋을 둔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변동림이란 이름을 버린 것이다. 변동림은 화가 구본웅 계모인 변동숙의 배다른 동생이다. 시인과 화가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남편들이다. 자매 남편들을 동서라 부른다. 그러고 보니 변동림 남편 이상과 김향안 남편 김환기도 동서지간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서두에 ‘두 그림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른다’고 말한 저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덕수궁 100선 전에서 두 그림 배치가 어찌 되었는지 사실은 그게 궁금했다. 대작과 소품이란 크기 차이 때문에 가까이 붙어 있지는 못했겠지만 마주 서서 째려보거나 혀를 껄껄 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면 동서지간이니까.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 시 ‘저녁에’)


화가 구본웅은 이상에게 ‘친구의 초상’을 그려 주었다. 시인 김광섭은 친구인 김환기에게 ‘저녁에’란 시를 써 주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명화를 낳게 했다. 이상의 아내 변동림은 요절한 시인 임종을 지켰으며, 김환기 아내 김향안도 남편 임종을 지킨 뒤 미술관을 지어 주었다.

 

* 김광섭(金珖燮): 1905 - 1977>

* 1905년 함북 경성군 어대진 출생, 호는 이산(怡山).

*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 1932년 대학졸업 뒤 귀국

*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 (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발표했다.

* 1934년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 隨筆文學考>, [조선문학(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 關心)>을 발표했다.

*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 시작(詩作)을 시작했다. 이 계열 작품으로는 <동경(憧憬)>, <초추(初秋)> 등이 있다.

*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였다.

* 1938년 제1시집 [동경(憧憬)]을 출간했다.

* 1941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 1955년부터 경희대학(慶熙大學) 교수로 10여 년간 교편생활을 했고,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自由文學)]을 발행했다.

* 1966년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반응(反應)]릏 출간했다.

* 1977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抒情詩集)](1958) 등이 있다. 1958년 서울시문화상, 1965년 5 · 16문예상, 1969년 문공부 예술문화대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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