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 1945 ~ )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는 이 시대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이다. 그녀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독특한 예술 형식을 통해 남성지배구조하의 사회적 편견에 저항해왔다. 크루거의 예술세계의 일차적 전략목표는 사회 내부에 침투해 있는 지배적인 제도적 권력에 항거하는 일이다. 그것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권력 작용을 어떻게 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크루거의 전략은 70년대 미술, 특히 개념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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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bara Kruger exhibition, 1991. Mary Boon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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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는 미국 뉴저지 뉴어크(Newark)에서 중 하류층 노동자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여러 소수 민족들만이 밀집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크루거에게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후일 그녀의 작품이 노동과 인종 차별 문제 특히, 흑인과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시라큐스 대학에 입학한 후 일 년만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크루거는 1965년 파슨스 디자인학교(Parsons Design School)에 들어가 자신의 작품세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크루거는 디자인 수업을 받으면서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부터 사진을 배우고, 마빈 이스라엘(Maivin Israel)에게는 시각매체의 효과적인 전시방법에 대해서 사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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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광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이스라엘의 영향은 큰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크루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크루거를 여러 사진작가들에게 소개하고 60년대 중반 급속히 번창하던 패션잡지와 광고 일러스트 세계로 직업을 알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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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 모아젤』 이라는 잡지사에서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통신판매를 위한 상품의 광고를 제작하던 크루거는 1년 만에 디자이너 실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후일 크루거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선 크루거의 작품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이미지들을 자세히 조사하고, 선택하고, 그것들의 커뮤니케이션으로의 가능성들을 평가한 후, 크기를 조정하고, 다양한 각도로 재배열하는 등 숙련된 디자이너의 숙련된 기술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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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의 작품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강렬함은 광고매체에서 볼 수 있는 관객의 주위를 환기시키고 시선을 붙잡아 두는 기법과 같은 것인데, 크루거는 디자이너로서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이미지와 언어를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관객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을 터득한 셈이다.
4년 가까이 광고계에서 사진편집을 통해 습득한 이러한 기술은 크루거에게 광고의 기본구성 요소인 사진이미지와 텍스트가 대중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임을 인식케 하였고 이후 작품의 형식적 바탕이 된다.
그런 점에서 크루거의 작품들이 흡사 러시아 구성주의의 포스터와 존 하드필드의 몽타쥬, 그리고 현대의 광고 이미지를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크루거가 그래픽 디자인에서 미술의 세계로 눈을 돌린 1960년대 말의 미술계는 개념미술의 새로운 등장과 함께 페미니즘, 각종 인권신장 사회운동,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와 일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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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yme,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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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녀는 여성적인 재료들 뜨개질, 실, 천, 보자기등, 주로 섬유예술을 평면으로 꼴라주해서 보여주는 여성적인 감수성이 다분한 것이었다. 이는 남성중심이 지배하는 미술관 문화에 도전하는 매체로 주로 페미니즘 여성 예술가들이 사용해 오던 것들이다.
그녀들이 이러한 소재를 선택한 것은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매체는 남성 우월주의 미술문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크루거가 본격적으로 사진매체를 텍스트와 함께 사용하여 비판적인 메시지를 작품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는 것은 80년대부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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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uger_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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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비판적 시각은 사실 크루거가 1976년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시작한 다양한 글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크루거는 뉴욕을 떠나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1년간 강의를 하고 독서와 영화 등 영상매체에 관심을 가지면서 예술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에 Art & Language Group 이라는 모임에서 자신의 개념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회 문화 이론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발트 벤야민(Balter Benjamin) 등을 접하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크루거는 또한 예술과 정치의 다양한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 '문화 변혁을 위한 예술가(Artists Meeting for Cultural Changes)' 그룹에도 참가하면서 벤야민, 바르트 등의 이론이나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호르크 하이머(Marx Hokheimer) 등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적 시각의 예술론 등을 읽고, “자신의 작품이 이제까지의 미술 관습에 대한 효과적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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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작업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것을 강렬하게 인식한다.
크루거가 이들 모임 AMCC (데이비드 살르와 바바라 브름 세리 래빈, 신디 셔먼, 리차드 프린스 등이 함께 포함 되어 있었다.)에 합류하게 된 것은 일종의 ‘클리나멘’이였다. 이들 모임은 진지한 비평과 토론 속에서 제한되어진 의식에 의해 생산되는 기존 미술관 미술에 대한 인식을 해체하려는 의식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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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70년대 말부터 텔레비전, 영화, 음악 등에 대한 비평을 잡지에 기고하게 되는데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는 이후 작품의 개념과 텍스트의 내용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 결과, 크루거가 다루었던 자극적이고 예민한 아포리즘적인 페미니즘 주제들은 단순히 예술적 차원을 넘어 비평적 대중문화의 한 형태로서 자리 잡는다.
1977년 『그림/읽을거리Picture/Reading』라는 제목의 책에 캘리포니아의 주택들을 무덤덤하게 찍은 사진들을 게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한 크루거는 사진 옆쪽에 그 주택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암시해주는 짧은 설명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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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h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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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80년대 이후 사진이 등장하고 이미지와 문구가 결합된 작품의 모태가 된다.
크루거는 자신이 사진을 직접 찍기 보다는 오래된 사진 연간물, 실용안내서, 잡지로부터 사진을 골라내어 재작업 한 뒤 대중적 명언, 정치 문구, 광고 선전문구로부터 유래된 강력한 풍자적인 글을 사진에 덧붙임으로써 일종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예를 들면‘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나의 육체는 전쟁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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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body is batteleground,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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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aiteld,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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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감 개구리가 클로즈업된 사진에 ‘나를 사줘’라는 커다란 문구가 들어가 있고, ‘나는 당신의 생활을 바꿀 것입니다.’라는 말이 작게 레이 아웃되어 있다. 마치 광고처럼 원하는 이미지를 가져와서 글을 결합시켜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광고와 같이 분명한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사진이미지와 텍스트가 동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광고물처럼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진이미지를 텍스트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뜻 충격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작품들은 쉽게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업이 포스트모던 예술로 단정 지어지기도 하고 남성을 공격 대상으로 한다는 비난과 함께 너무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사용하는 텍스트의 표현이 남성중심의 거대담론에서 만들어진 질서와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고, 작품제작, 전시 방식의 특히 함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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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의 작품들은 책, 잡지, 포스터, 빌보드, 포장용 가방과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인쇄되었고, 대도시 공공장소의 선전용 문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압축된 언어의 광고 방식과 강렬함을 문화적 가치로서 즉, 이미지와 메시지로 대체하고 있다.
대형 간판(billboard)을 적극적으로 활용 하고 있는 그녀의 전시 방법 또한, 기존의 미술 작품을 창백한 흰 벽의 공간에 가두어 버렸던 폐쇄된 전통적인 전시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고, 일반 대중이 개방적이고 참여적으로 참여하도록 바꾸어 놓았다.
미술관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넘어서 빌보드 · 책표지 · T-셔츠 · 포스터나 일상생활의 인쇄매체 등 다양한 수단의 채널을 이용하는 작품의 유통 전략은 그의 작품들이 근본적으로 많은 관객과 만나고자 하는 소통의 미술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것은 전통적인 미술관 전시 시스템과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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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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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가 늘 페미니스트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주자로서 인식되어 온 것은 그의 작품이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된 동시대 구조 속에서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문화 정치적 담론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미세하게 깔려 있는 권력의 실체를 폭로함으로써, 소외된 타자성을 복구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략을 매우 전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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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captive audience,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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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의 사진이미지와 텍스트를 사용한 작품의 형식적 전략은 이미지의 차용 ·작가 정체성의 해체 · 복제성 ·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구분을 와해하는 등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비평의 핵심적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다. 1983년 크루거는 아니나 노제 갤러리에서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한 전시를 했고 이때부터 크루거는 진지한 비평적 관심을받게 된다.
주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비평의 커다란 범주 속에서 하나의 시각적인 사례로 제시되었던 크루거의 작품은 광고나 상품포장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틀과 미디어를 통해 이미 본 듯한 흑백사진, 그리고 푸투라 볼드의 글씨체가 전달하는 자극적인 문구로 인해 하나의 상표처럼 낮익게 다가오는 작품이 되었다. 1981년 크루거는 이전의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작품에 빨강색을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형의 초기에는 주로 프레임으로만 빨강색을 사용했으나 이후에는 이 작품에서처럼 화면내에 빨강색 띠들이 등장한다.
또한 빨강색이 등장하면서 작품 제작도 비닐 위에 사진으로 실크스크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성(gender)의 주제를 다룬 것으로 그녀가 페미니스트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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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MoMA(뉴욕 근대미술관)로 크루가가 기획한 전람회 「Picturing Greatness」는, 사진을 예술 작품으로서 취급하는 미술관(특히 MoMA)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다.
또, 「YOUR BODY IS A BATTLE GROUND(당신의 신체는 전장이다)」라고 하는 슬로건이 합쳐진 작품은, 1980년대의 미국에 있어서의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쟁·캠페인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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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not yourself,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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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거의 주된 관심사는 수사적 형상(imagery)으로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 이미지는 사회적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쿠르거는 여성 신체의 파편적 재현 이미지와 도발적인 경구를 함께 사용하면서 여성에 가해지는 부계적 폭력과 억압을 고발 한다. 따라서 크루거의 예술은 페미니스트 운동과 여성예술가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던 70년대의 논쟁 속에서 생각되어질 수 있다.
페니미즘 운동은 성은 선천적이거나 필수적인 상태라기보다는 재현체계을 통해 만들어지는 구조로 보고 있다. 남. 여의 성별은 생물학적 결과라기보다는 사회적 기준이 적용되는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즉, 남성중심의 지배구조는 권력을 가진 남성을 주체로 상정하는 것이고, 여성을 타자로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페니미즘시각을 단순히 남성, 여성의 이분법적인 대립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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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소외면, 주변부 문화의 재조명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도 미술계의 중심에서 소외된 주변부였고, 타자였다.
90년대부터 사진매체를 미술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포스트모더니스티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70년대부터 미술계에 불어 닥친 페미니즘 시각에서 싹튼 그 역량의 힘이 작용했다고 보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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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uger_tote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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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lton Times Square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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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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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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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사진의 전략이 “사진적인 것은 곧 증거이다”라는 이데올로기 신화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고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진의 이중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동시에 기존의 거대담론 미술제도권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즉, 사진의 진실성은 사진 그 자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담론에 의해서 강력하게 귀정되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크루거의 작업은 이미 선구적이었다.
글: 이 영 욱(중국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rxli@ybu.edu.cn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