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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지혜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작성자曉停(효정)|작성시간12.04.28|조회수991 목록 댓글 0

시본이 전하는 문화산책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Gustav Klimt _ Kiss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죽은  빈에서 활동한 화가다.
그의 그림 키스(위의 그림)는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이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만종보다 훨씬 많이 복제되어 엽서나 카드 그리고 심지어 불을 켜고 끄는

버튼의 장식으로도 쓰인다.

나는 클림트의 이 그림을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 영화에서 백혈병인가 걸린 남자를 줄리아가 간호해 주는데, 그 남자가 취향이 좀 고급이라 건축 회화 같은 것을 소개해 준다.
그 중에 클림트의 '키스'가 있었다. 그후로 심심찮게 이 그림을 봐 왔다. 그러다가 내 친구 하나와 요근래 클림트 얘기를

할 기회가 있어서 클림트에 대해서 좀 알아 봤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빈 사람이다. 그리고 세기말에 주로 활동했다. 그 때의 빈은 요세프라는 늙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제가 다스리는 유럽의 중심이었나 보다. 말러, 쇤베르크가 있었고, 프로이트도 거기 있었다.

세기말의 빈은 허위와 위선이 판치고 있었고,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했다.


바람 안 피는 가정을 가진 남녀가 거의 멸종.....? ^^
그런 분위기니까 프로이트가 나왔을 것이다.
즉 프로이트는 세종이 다스리는 조선이나, 청교도가 처음 발을 내린 미국 동부에서는 '죽었다 깨나도'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나라 우리 토양에서 우리의 정서와 배경에 맞는 우리 사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빈의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전세계에 받아들여졌듯이, 우리의 토양에서 태어 났지만

전세계적으로 보편화 될 수 있는 그런 사상....


결국 '우리'도 우리의 정서가 있지만, 인류의 한 부분이기에...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라도 꼭 그런 사상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암튼, 클림트는 그런 빈에서도 좀 심했나 보다.
죽은 후 친자 확인 소송만 14건이란다. 4건은 승소....
그림을 그릴 때도 벌거 벗은 젊은 여자들이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게 하고,

그는 자기 그림을 그리다가 여자들이랑....(생략).... 
또 그림 그리고 이랬나 보다. ^^  친구가 스케치한 그림에 의하면 쟁반을 나르는 하녀도 벌거 벗고 에이프런만 두르고...

괴짜에 향락주의자에....
그러면서 평생 여자와 결혼 안 하고 어머니, 누나와 살았다고 한다.

가정를 가지고 정상적인 아버지 노릇하는 것은

꿈도 안 꾸었다고....

 

그런데.....

예술가는 이래야 하나? 좀 미치거나 비상적이어야 하나?
예전에 애 엄마(편의상 P라고 호칭)가 연극을 할 때, 선배 연극배우 (지금은 영화로 좀 유명해진 사람) 하나가 그랬다.
"P야...너는 너무 정상적이야...아픔도 고통도 너에겐 그동안 없었으니 연극하려면 좀 아파 봐야 해...

그리고 넌 너무 밝아..." 이랬다. 
그 말이 긴 여운이 되어 오히려 내게 남았다.
예술 하는 사람은 인생의 굴곡을 좀 겪어 봐야 하는가?

성격이 좀 비정상적이어야 하는가?

그래야 좋은 작품 좋은 연기가 나오는가?
모르겠다. 근데 그런 사람이 많기는 하다.
ex) 베토벤, 고호, 도스토예프스키, 제임스 딘, 심지어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드는 김훈의 서늘한 눈빛도...

클림트는 한 마디로 "괴짜 화가"로 불린다.


근데 클림트도 생전에 유명하기는 했으나,

오늘날과 같은 열렬한 대접은 그가 죽은 후 50년 뒤부터라고 한다.
그는 191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그림 키스와 더불어 그가 뜬 때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성개방 물결이 불어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클림트의 키스가 그 당시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그림 속의 여자가 '입술을 허락하지 않고 있고, 남자의 손을 내리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그림을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 그림 속의 여자가 '남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그림을 다시 한 번 보라. 과연 그렇게 보이나? 클림트가 '여성해방'등의 심오한 생각을 하고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클림트는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 중의 '환희의 송가'를 성적으로 해석해서, 그 클라이 막스를 남녀가

부둥켜 앉은 것으로 묘사한, 옆으로 길다랗게 펼쳐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기사 예술 작품을 두고 어떤 해석을 못하랴?

베토벤이 그 얘기를 들으면(귀가 안들려 듣지는 못하겠지만^^)

"고얀 놈" 이럴 지 모른다.

클림트의 키스는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이라 대중들에게 친숙하지만,

실제로 보면 또 다른 그런 그림이라고 한다.

실제로 금을 써서 그렇다.

 

 

금이라는 것이 사진 찍어서 카드에 인쇄되면 그 오묘한 빛이 그냥 노란색 비슷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이 그냥 매끄러운 평면이 아니라,
볼록볼록하게 양각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직접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에 가서 보면,

그림의 크기와 금의 빛깔로 인해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라고 한다.

클림트는 예술가라는 존재, 예술가와 도덕, 생전과 사후의 평가,

그리고 원작과 사진으로 복제한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화가이다.

 

*원문출처 : http://blog.daum.net/happitice/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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