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구마기도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마르코 16, 17). 예수께서는 이런 능력을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셔서 그 능력이 온전히 보존되도록 하셨다. 기도와 신앙에 바탕을 둔 일반적인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개인 혹은 공동체적으로 행할 수 있다. 항상 이런 능력은 특별한 권한을 수여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개념 정립을 해야 한다. 즉, 이것은 해방의 기도(영어로 deliverance:역자 주)이지 구마(영어로 exosism:역자 주)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런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사기꾼들과 주술사 등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는 구마라는 준성사를 세워 전적으로 주교들이나 혹은 주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들(그렇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절대 할 수 없음)에 의해 행해질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정하고 있다(교회법 1172참조). 준성사들은 교회의 전구로 얻어지는 거룩한 표지로써 개인기도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교회법 1166 참조). 그리고 이런 준성사들은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승인된 예식과 격식(경문)을 정확히 지키도록 정하고 있다(교회법 1167 참조).
구마를 행하는 주교(그런 주교들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 외에 권위를 위임받은 사제로 구마사제라 불리는 이가 거행한다. 오늘날 이 호칭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은 정식 구마사들이 아니면서도 진짜인양 행세하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구마를 행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구마기도가 아니라 해방의 기도라고 불려야 하며 어떤 경우는 주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구마는 교회로부터 정해진 분명한 준성사이다. 그 외 다른 명칭은 모호해서 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세례성사 속에 포함된 예식은 단순 구마기도라고 불러야 정확하며 대 구마기도는 준성사로써 구마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새 가톨릭 교리서는 정하고 있다. 사적 구마 혹은 공동 구마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며 구마가 아니라 해방의 기도라고 불러야만 정확하다.
구마사는 예식서의 기도를 정확히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준성사들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구마는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고, 몇 분 안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식서에 있는 모든 기도들을 다 할 필요는 없고 예식서가 권고하고 있는 대로 다른 기도들을 첨가할 수 있다.
구마의 목적은 두 가지다. 마귀들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목적에 대해 모든 책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구마는 우선적으로 진단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도 자주 이런 목적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마를 행하기 전에 당사자나 가족들과의 면담을 통해 정말 구마가 필요한 상황들이 전개되었는지 혹은 존재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물론 구마만을 통해서도 악마의 개입 여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상하거나 설명이 불가능한 모든 현상들은 실제로 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이고 초심리학적인 현상들은 진단을 위한 충분한 기준이 될 수 없다. 오로지 구마를 통해서만이 악마의 개입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하게 밝혀 낼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예식서에서도 유감스럽게도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고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이런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 조차 모르고 있는 특정한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안될 필요성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구마는 진단의 효과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악에 의해 조장된 훼방인지 아니면 사람 안에 들어간 악령의 작용인지를 분별해내는 것이라고 미리 전제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구마의 첫 단계가 되어야 한다. 중요성면에서 구마의 특별한 목적의 첫 단계는 악령의 훼방을 풀고 마귀들린 사람을 해방하는 것이다. 구마사가 염두 해야 할 증세들을 정확하게 분별해내기 위해서 이런 논리적인 단계(먼저 진단하고 치료하는)가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구마 전에 나타나는 증세와 구마 중의 증세, 구마 뒤의 증세, 여러 구마 중에 전개되는 증세 등은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예식서는 간접적으로라도 위에 말한 증세들의 중요성에 대해 3항에서 언급함으로써 구마사로 하여금 한 가지만을 가지고 악마의 존재를 판단하지 않도록 여러 조항들을 두어서 교묘하게 숨어버리는 악마의 많은 속임수들 앞에 유의하도록 권하고 있다. 우리 구마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악마들은 부마상태를 숨기기 위해 정신적인 질병이나 편집광자인 것처럼 가면을 써서 더 이상 구마가 필요 없는 것처럼 기묘하게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되는 실재하는 위험은 오늘날 상당히 흔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악령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내지 못할 위험이며 그 결과 구마가 꼭 필요한 때를 놓치고 마는 경우를 숙지하고 싶다. 내가 주도한 구마사들의 회의에서 모든 구마사들이 동의한 것은 악에 대항한 구마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처음 구마를 할 때 확실한 증거를 얻지 못했을 경우 간단한 구마를 사용함. 아주 작은 목소리로 행하는데, 단순한 축복기도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기도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마가 의심되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구마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말이다. 반대로 악마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서야 부마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미 그 실체가 깊이 파고들은 뒤에야 비로소 알아챘을 때, 우리 구마사들은 구마를 행하지 않은 것에 크게 후회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여부에 대한 증세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불분명하지만 몇 가지 안되는 증세만으로도 충분히 구마를 진행할 수 있다. 구마 중에 그 외 다른 증세들이 드러난다면 첫 번째 구마가 간단하게 끝났을지라도 기존으로 해야 하는 예식기도 이외에 구마기도는 당연히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구마 중에 아무 증세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부마자 자신이 분명한 구마의 효과(일반적으로 상태를 호전시키는)를 드러낸다. 그럴 경우 다시 한 번 구마를 반복하고 그 효과가 계속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현저히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전후로 부마자는 구마 중에 악마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증세들은 가끔씩 천천히 사라지는데 치유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이다. 다른 경우, 증세들이 더욱 악화되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다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숨어있던 악마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악마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악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 증세들이 드러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구마에 대한 무경험 때문에 구마를 하기 전에 증세를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종종 이런 신호들은 많은 경우에 구마 중이나 혹은 구마 뒤, 아니면 모든 구마가 다 끝났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나는 구마사로 사목생활을 하면서 마귀들린 상태 자체가 너무 심해 심지어는 수 년 동안이나 구마기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분야를 어떤 정석에 꿰어 맞추려는 해법으로 축소하려는 노력은 헛될 뿐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여러 가지 악마의 출현 현상을 분명하게 알아본다. 예를 들어 이런 사건은 나와 내가 소집한 모든 구마사들에게 일어났던 것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부마 증상에 대해 예식서에서는 세 가지 증세를 들고 있다. 즉, 이상한 언어를 말하고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하며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현상 등을 들고 있다. 이런 증세들은 구마 전에 나타나지 않고 항상 구마 도중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구마사들 좋으라고 이런 증세들이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말해두고 싶은 것은 부마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 부마자를 만났을 때 난처한 입장이 되기도 한다. 가끔씩 정신적 질환과 악마의 영향이 함께 부합되어 일어나는 힘든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구마사는 정신과 의사와 협력체계를 이루는 것이 현명하다. 깐디도 신부님은 구마를 행할 때 로마의 유명한 정신과 과장인 마리아니 교수를 불러 자신의 구마기도에 참여시키곤 했다. 반대로 마리아니 정신과 교수가 깐디도 신부님을 자신의 운영하는 클리닉으로 불러 입원 중인 환자 케이스를 함께 연구하기도 했다.
현학의 허세를 부리는 현대의 몇 몇 신학자들은 엄청난 새 소식이라면서 특정한 정신질환이 부마로 혼동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웃기는 소리들이다. 미국 학계에서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온 것으로 믿는 몇 몇 정신의학자들과 정신병리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좀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즉시 알아챌 것이며 이런 잘못된 과오를 막을 수 있는 첫 번째 사람들이 교회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1583년부터 레임스(Reims) 주교총회에서 나온 규정에 의해 교회는 이런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 부마를 의심해 볼만한 형태들을 발표하고 단순한 정신적인 질병에 의해서도 올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정신의학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었고, 신학자들은 복음을 믿고 있었다.
구마기도는 증상을 파악하는 것 외에 부마자를 해방시키는 치료의 목적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아주 힘들고 오랜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당사자 개인의 협력이 필요한데도 자주 이런 협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 개인의 많은 기도와 잦은 성사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구마기도를 위해 구마사에게 가야할 때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그 시간을 회피하게 된다. 이런 부마자를 위해 누군가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누구도 이런 상태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악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방하는 분은 주님이시고 물론 기도, 특히 교회가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이지만, 하느님의 자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통상 부마가 시작된 시기의 강도에 따라 다르며 이런 상태와 구마 사이의 시기에 따라 다르다. 열 네 살 된 여자 아이가 나를 찾아왔는데, 부마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발로 차고 물어뜯고 할퀴는 격앙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아이를 완전히 악마의 손에서 빼내는데 단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마가 시작된 첫 단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저히 악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었던 젊은이를 예수께서 해방시키는 장면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그 아이는 즉시 죽은 듯이 땅에 쓰러졌다. 몇 분 뒤 정신을 차렸고 남동생과 놀이를 하기 위해 정원을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로써 악마의 개입이 상당히 미약한 것을 증명한다. 구마사는 자주 심각한 상황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구마사에게 가야지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를 하나 제시하겠다. 어떤 남자 아이가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부모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크면서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처음 시작 증세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증세가 심각해지자 부모들은 아이를 의사들에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의사 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7살 된 여자 아이가 나를 찾아왔으나 이미 유럽의 병원들을 전전한 뒤였다. 어떤 친구, 혹은 뭔가 좀 압네 하는 사람의 충고대로 자연적인 병이 아닌 듯하니, 주술사를 찾아가라는 대로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피해는 이중으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우연하게도 누군지 모르지만 구마사를 찾아가라는 충고(사제들은 거의 이런 충고를 하지 않음)를 했기에 찾아온 경우였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악은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린 뒤였다. 이에 대한 첫 번째 구마는 당연히 악령을 “쫓아내고 뿌리를 뽑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구마기도는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 흔히 몇 년을 끌기도 하지만 항상 악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간을 주관하시는 것은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마사의 믿음과 부마자의 믿음이 굉장한 도움이 되며 부마자의 기도와 그 가족들과 그 외 다른 사람들(봉쇄수도회 수녀들, 본당 공동체, 기도단체, 특히 해방의 기도를 해주는 기도단체)의 기도가 효과를 가져다준다. 또한 가능하다면 해방의 기도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준성사들을 사용하는 것도 굉장한 도움을 준다. 그 예로 구마를 위한 성수나 그것이 없다면 일반 성수, 구마를 위해 축성된 성유, 구마를 위한 소금 등이다. 물과 기름, 소금을 구마용으로 축성하기 위해 굳이 구마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일반 사제들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예식 안에 이런 특별한 축성예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사제들은 이런 일들이 애들 장난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이에 대해 알지도 못할 뿐 더러 이를 요구하는 사람을 앞에다 두고 비웃는다. 이런 준성사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기로 약속한다.
자주 성사들을 접하는 것은 복음에 적합한 생활로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기초이다. 묵주기도의 강력함은 매우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동정 마리아께 의탁하고, 천사들과 성인들께 전구하는 기도 또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한 구마기도를 통해 준비된 해방을 맞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장소들인 성지들을 순례하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풍성한 도구들을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사탄에게 유혹을 당하신 사건을 전해줄 때, 항상 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해 사탄을 물리치신 주님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엄청난 효과를 불러오며 자유기도나 성경에 있는 특별한 기도로써 시편이나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노래 등의 찬양의 기도 또한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있다 손치더라도, 구마기도들을 통한 효과는 구마사로 하여금 겸손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구마는 그것을 집행하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업적임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구마사나 부마자 모두에게 실망이라는 힘든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구마기도의 섬세한 결실은 대부분 힘들고 늦게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상으로 주님께서 왜 이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시는지를 일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청난 영적인 결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어둔 믿음의 터널에서 이루어지지만 분명한 것은 진정한 빛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다.
사람이나 장소 등을 위한 성물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집으로 들어가는 문설주, 침실 방, 식당이나 가족이 자주 모이는 장소 등에 모셔둔다. 상본은 이교도적인 부적이 아니라 상본에서 보여 지는 형상을 닮으려는 노력이며 기도하면서 보호를 청하는 개념이다. 나는 요즘 집 축성을 위해 가정 방문을 하다보면 문설주에 잘 만들어진 빨간 색의 소뿔(부적:역자 주)을 보게 되고 각 방을 축성하면서 주의해 보아도 상본이 걸려있는 방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도를 예로 보면 성인께서는 선교사명을 완수하면서 각 가정의 문설주에 예수(JHS, Jesus Hominum Salvator, 인간의 구원자 예수)라는 이름이 쓴 메달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자주 믿음을 통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축성된 메달의 효과를 사무치게 보았다. 라보뤠 Laboure'(1830년 파리에서의 발현)의 성녀 카타리나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뒤 수십만 개의 복사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기적 메달, 그 작은 기적 메달을 통해 귀중한 은사들을 얻을 수 있었던 사건들만을 나열한다고 해도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책들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악마에게 사로잡힌 일화들을 수집한 여러 가지 책들 중,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역사적으로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는 실례는 알사찌아(Alsazia)의 일푸르트(Illfrut) 마을에 살던 부르네르(Burner) 두 형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869년에 구마기도들을 통해 해방된다. 악마들이 행하는 고통스러운 장난에 시달리던 어느 날, 악마는 이들을 통해 구마사와 몬시뇰, 수녀가 타고 있는 마차를 뒤엎으려고 했었지만, 출발하기 직전 마부는 보호의 목적인 성베네딕도 메달을 받아 깊은 신심을 가지고 그것을 주머니에 간직했기 때문에 악마는 자기 뜻대로 마차를 뒤엎어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론으로 가톨릭 교리서에서 구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네 가지 항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구마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517항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치유와 구마로써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신다고 예수께서 하신 일들에서 출발한다.
550 항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바로 사탄의 나라가 패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 28). 이것이 바로 구마의 최종적인 목적으로써 악마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를 완전히 물리치신다.
이 두 항에서 구마는 세례성사 속에서의 유효함과 악마의 지배를 받는 이들을 해방하는 힘이라는 이중적 단계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1237항은 세례는 죄와 죄를 선동하는 악마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비신자들을 위하여 한 가지 혹은 몇 가지의 단순 구마기도를 바침으로써 예비신자는 완전하게 사탄을 끊어버리게 됨을 설명해주고 있다.
1673항은 구마의 의미에 대해 정의하면서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악마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라고 한다. 구마는 악마를 쫓아내거나 악마의 지배세력에서 구해내는 것이 목적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항은 예식서와 교회법에서 빠진 부분을 언급하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여기서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물건(일반적인 의미에서 집, 동물, 물건, 전통과 유사한 것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음)에 대해서도 구마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마는 부마자에게만 행할 수 있는 것만 아니라 악마의 지배세력에 있는 사람에게도 행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