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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순교 성인 - 50. 성 최창흡 베드로

작성자천국열차 승무원|작성시간19.09.25|조회수32 목록 댓글 0


103위 순교 성인

 

50. 성 최창흡 베드로

 

 성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17871839)1801년에 순교한 총회장이었던 최창현(요한)의 아우이며, 그의 부인은 같은 해 순교한 손소벽(막달레나)이고, 또한 1840년에 순교한 최영이(바르바라)는 그의 딸이며, 1839년에 순교한 성 조신철은 그의 사위였다.

 

  최창흡(베드로)1787년경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3세 때에 부친을 여의고 형의 순교 후 파산을 당한 집에서 아무 교육도 미처 받지 못하고 자랐다. 신유 박해가 끝난 다음, 신자들이 다시 모이고 최창흡도 교우들을 만나 순교한 형이 믿었던 종교의 교리와 경문을 배웠다. 그는 30세 경에 서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난 손소벽과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역시 신유 박해로 부친과 모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차차 수계하게 되었다.

 

  1821년 콜레라가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 감을 보고, 최창흡은 부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신심생활에 전심하였다. 그는 1833년경에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입국했을 때, 신부의 권면과 성사를 받고 열심히 살았다. 그의 슬하에는 열 한 자녀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타고난 성품이 온순하고 겸손하여 언제나 남에게 잘 대해주었고, 모든 이와 이웃 사람들에게 언제나 화평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모든 교우들로부터 모범적이고 열심한 신자라는 평판을 들었으나, 그는 스스로 개탄하며 언제나 자신의 무지함과 과거의 신심생활에 열심치 못하고 더욱 더 진보하지 못하는 영적 생활을 고민하면서 늘 치명의 은혜를 간구하곤 하였다.

 

  그의 순교하고 싶은 열망에 상응하여 18395월에 박해가 격심해짐에 따라 순교의 각오도 굳어져갔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위하여 피신하기로 하면서 사위집으로 피신하였다. 그의 사위는 바로 당시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조신철이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도 결국 7월 초에 체포되었는데, 그의 열 한 명의 자녀 중에서 아홉 명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이 때 그와 그의 부인 손 막달레나와 큰 딸 바르바라와, 두 살 난 어린 딸은 친척에게 맡기고 가족이 전부 체포되었다.

 

  그는 포청에서 문초를 받았는데

네가 사교(邪敎)를 믿느냐?”

나는 사교(邪敎)는 믿지 않고 다만 천주님을 공경합니다

배교하면 살려 주겠다

나는 만물의 주인이신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천주학을 했느냐?”

교우인 나의 부모님께서 천주님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심문관이 비웃으며

여기 큰 학자 하나 났구나라고 하였다. 일곱 번의 문초에 따라 주뢰와 곤장을 맞았다.

 

  150대의 곤장을 맞으면서 다른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위협 당했으나, 베드로의 열심함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만한 말을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포청에서와 다름없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며, 마침내 심문과 3차 고문 후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서소문 밖 형장에 나가면서 옥에 있는 자기 부인과 딸에게 눈물과 고통은 육정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순교하게 됨을 주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면서 나의 뒤를 따르기 바란다고 옥졸을 통하여 전달하게 하였다. 그는 수레를 타고 기도를 그치지 않으면서 형장으로 향하였는데,

 

  “천국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주위 동료 교우들에게 남기고 다른 교우 6명과 함께 용감히 순교의 칼을 받았다. 18391229, 그의 나이 52세였다.

 

발췌문헌 : 김옥희, {103위 성인전}, 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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