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2권 79-82: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마태 12,33)
작성자코스모스작성시간26.06.18조회수27 목록 댓글 0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79-82: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마태 7,16-19)
79. 이 구절에서 우리는 특히 두 나무의 비유를 근거로 두 가지 '본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즉, 하나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본성이요,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것도 아니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도 아니라고 강변하는 자들의 오류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저서들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며,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더 논의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분명히 해둘 점은, 이 두 나무의 비유가 결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이 비유가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여, 이 구절의 앞뒤 문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영적 눈멀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다음 말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그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악한 영혼은 회개하여 선하게 될 수 없고, 선한 영혼은 악하게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좋은 나무는 나쁜 나무가 될 수 없고, 나쁜 나무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는 곧 영혼 자체, 곧 사람 자신을 뜻하며, 열매는 사람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은 선한 행실을 할 수 없고, 선한 사람은 악한 행실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다른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신 뜻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마태 12,33)
만일 이 두 나무가 두 본성을 의미한다면, 주님께서 “되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본성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같은 대목에서 주님께서는 이 두 나무를 다시 언급하시며 이어 말씀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마태 12,34)
그러므로 사람이 악한 동안에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 그는 이미 악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은 뜨거울 수 없다.”는 말도 참으로 옳습니다. 눈이 녹아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눈이라고 부르지 않고 물이라고 부릅니다. 이전에 눈이었던 것이 더 이상 눈이 아닐 수는 있지만, 눈인 채로 뜨거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이 더 이상 악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악한 사람이 선한 행실을 할 수는 없습니다. 혹 악한 사람이 때때로 어떤 “유익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가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는 바리사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마태 23,3)
그들이 전하는 말은 선한 것이었으며 이를 듣는 것은 유익했으나, 그 선함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마태 2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선포하였고, 듣는 이들에게는 유익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유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해 예언자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밀씨를 뿌리고도 가시를 거두어들이며 지칠 때까지 일을 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예레 12,13). 이는 그들이 선한 것을 가르치면서도 악한 행실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고 실천한 이들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것이 아니라, 가시덤불을 '통하여'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거둔 것입니다. 마치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울타리에 엉켜 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것과 같습니다. 그 포도는 포도나무의 열매이지 가시나무의 열매가 아닌 것입니다.
80. 우리는 나무를 식별하기 위해 어떤 열매를 보아야 하는지 정당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은 복음에서 언급된 '열매'가 단식이나 기도, 자선과 같은 외적 행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여, 이른바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에게 속고는 합니다. 만약 위선자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었다면, 주님께서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주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 이 세 가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비심이 아니라 허영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바라기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거나 기도하는 체하며, 또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단식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이러한 기만으로 사람들을 올가미에 가두며, 양의 옷 아래 숨은 이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을 해치고 약탈하기 위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경고하신 '나무를 식별하는 열매'는 이러한 외적 행위들이 아닙니다. 진리의 빛 안에서 선한 마음으로 행해질 때 그것은 양의 옷이 되지만, 기만하기 위해 악한 마음으로 행해질 때는 이리의 위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리들이 종종 가죽을 빌려 쓴다고 해서, 양들이 자기 가죽을 미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81. 그러면 어떤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도는 말합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갈라 5,19-21)
또한 좋은 나무를 알아보게 하는 열매에 대해서도 같은 사도가 이어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여기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쁨'을 누린다고 할 수 없으며, 단지 기뻐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가 앞서 '의지'에 관해 논하며, 악인들에게는 진정한 의지가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이처럼 “기쁨”이라는 말은 본래 선한 이들에게만 올바르게 사용됩니다. 예언자도 이를 증언합니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나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57,21)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말도 아무 믿음이나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 언급된 다른 덕목들도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에게서 겉으로는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맑고 단순하지 않으면 그것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눈을 깨끗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 뒤, 피해야 할 것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82.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맑은 눈, 곧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실과 말로 드러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유혹(시련)'을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유혹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세속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기대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잃을까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는 지혜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콜로 2,3)― 를 향하여 나아가는 동안, 이단자들과 세속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못 이해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이는 우리가 단지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참된 열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데 있으며, 주님께서는 바로 그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친히 모범이 되기를 기꺼이 원하셨습니다.
번역 박수현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6-05/agostino-discorso-montagna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