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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누기

교황, 세상은 양심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를 만들어내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삶은 언제나 다시 태어납니다. [스페인 청년 Q&A]

작성자코스모스|작성시간26.06.12|조회수43 목록 댓글 0
Pope Leo XIV visits Spain 

교황, 세상은 양심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를 만들어내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삶은 언제나 다시 태어납니다.


세 명의 젊은이들의 질문에 답하며, 레오 14세 교황은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 ‘내적 불안’을 길러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청년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우선적으로 돌볼 것을 요청했으며, 용서는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긴 여정입니다”라고 교황은 인정하며, “우리는 아주 작은 걸음으로 나아갑니다”라고 덧붙였다. 여성 살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것이 “비극적인 현실”임을 강조하며, 개인과 사회 전체의 책임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황 성하의 스페인 사도 순방
2026년 6월 6일 – 12일


Barcelona, Prayer Vigil, June 9, 2026 Pope Leo XIV
교황 성하와의 대화
저녁 기도회
바르셀로나, ‘류이스 콤파니스’ 올림픽 주경기장
2026년 6월 9일

[질문1]
교황 성하, 우리는 자라면서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생산하고, 성공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오직 거대한 공허함뿐이었습니다. 답을 찾아 헤매던 중 제 삶은 전환점을 맞이했고, 이번 파스카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이 새로운 길 위에서 성하께 여쭙고 싶습니다.

사회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아래만을 바라보게 하거나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시선을 돌리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향해 시선을 계속 붙들 수 있을까요? 이 거센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참된 성소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님 답변]
귀한 증언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올해 파스카에 세례성사를 받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저도 여러분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젊은이들과 어른들이, 비록 한동안 하느님에게서 조금 멀어져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다시 그리스도교 신앙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중대한 걸음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점차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그 모든 것은 분명 우리의 성장과 성숙에 기여하며, 우리 내면의 삶의 공간을 넓혀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기쁨과 성공, 그리고 실패를 겪으면서도, 더 깊은 갈증을 해소해 줄 또 다른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더 넓은 지평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이 ‘내적 불안(inquietudine)’은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무한을 향하도록 창조되었기에, 아무리 유한한 지평이나 성취, 정복이 우리를 만족시킨다 해도, 그것들은 동시에 우리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끊임없이 찾도록 초대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며 찾고, 또 찾도록,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면으로 내려가면서’, 즉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찾도록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질문으로 돌아가 두 가지 짧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건강한 내적 불안을 가꾸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윤과 성과에 대한 우상숭배, 끊임없이 생산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자기 이미지에 대한 숭배는 결국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특정한 사회관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마취제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멈추는 법을 배우고, 중요한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며,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중히 여기고, 복음의 빛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될 때, 그들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으며 다양한 차원에서 불의와 실존적 빈곤을 낳는 사회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내적 불안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내면성의 발견, 영성의 발견,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발견 역시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둘째, 우리가 이 불안을 가꾸어야 할 곳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바로 ‘이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세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서 말입니다. 바로 이 사회 안에서 당신과 많은 이들이 더욱 인간적이고 더욱 충만한 삶, 하느님과의 만남과 신앙의 기쁨에 열린 삶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아무리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찾아내야 할 자리는 언제나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삶과 역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심지어 가장 힘겨워 보이는 순간 속에서도 침묵 중에 움직이시며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내적 불안을 가꾸고 그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외적인 리듬과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애쓰며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멈추어 서서 복음을 읽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꾸십시오. 그리고 이 내면의 여정을 다른 이들과 함께 걸어가며, 교회의 다양한 여정 안에서 동반을 받으며,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우리처럼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질문2]
교황 성하, 세상이 온통 소리 높여 외치는 이 시대에, 부끄러움 때문에 숨겨진 채 살아가는 삶의 단면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청년과 성인들을 괴롭히며 어둠과 고립, 거대한 고통을 몰고 오는 침묵의 질병, 바로 ‘우울증’입니다. 때로는 이 고통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사라져 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수년 동안 침묵 속에서 이 병과 싸우다, 어느 금요일 밤 결국 그 싸움에서 무너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제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며, 저는 그분께 영원히 감사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이 짙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마음을 다해 교황 성하께 여쭙고 싶습니다.

어둠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님 답변]
먼저, 오늘 당신의 그 아픈 고통의 경험을 나누어 주어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 우리 가운데 이 자리에 함께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이 두 번째 기회를 받아들일 힘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당신은 다시 일어섰고,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서의 수많은 인물에게서 보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길을 잃었다고 느꼈던 이들조차 삶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병에서 치유되어, 다시 살아가기 위해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속에서 먼저 우울증이라는 ‘침묵의 질병’을 언급했습니다. 스스로 선진국이라 여기는 사회 속에서 정신 건강이 갈수록 더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똑똑히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압박과 기대, 긴장을 가하여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균형을 무너뜨리는 어떤 성장 중심의 사고방식 안에 무엇인가 깊이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널리 퍼져 있는 이 고통, 특히 젊은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이 고통을 우선 과제로 삼는 보건 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에서도 고통이 우리의 신앙과,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의미를 얼마나 세차게 뒤흔드는지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어느 순간 질병의 시련을 겪어야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겪으셨던 그 어둠과 번민, 고통의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복음서는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니의 기도 장면을 전하며 저녁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음을 강조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도 “온 땅이 어두워졌다”(마태 27,45; 루카 23,44)고 전하지요. 그러나 사실 이는 그분 개인의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번민과 외로움, 고통을 당신의 몸으로 온전히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 어두운 시간,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고, 우리의 고통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함께 흘리시는, 사랑과 자비 가득한 현존으로 우리 곁을 지키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성경이 여러 번 증언하듯, 이러한 경험을 겪어내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둠과 고통의 순간들을 침묵 속에 묻어버리곤 합니다. 어떤 문화적 모델들은 우리가 언제나 승자여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요구하기에, 한계와 취약함, 고통은 지워져야 하고 외로움, 혹은 심지어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그 귀청이 터질 듯한 침묵 속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느님마저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머물러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물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우리 고통의 부르짖음을 귀담아 들으십니다. 그 부르짖음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고 외치시며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그 부르짖음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시간들에 대한 교리 교육에서, 그분의 고통이 기도와 부르짖음으로 승화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됩니다. 하느님이 부재하신 것처럼 느껴지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짐을 다시 한번 그분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께 부르짖고, 욥처럼 항변할지라도, 그분이 겉으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곁에 현존하시고 가까이 계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이 일을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는, 허락되는 한, 우리가 단순한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도와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 고통을 성급하게 설명하려 들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우리의 손을 잡고 그 절규에 갇혀 있지 않도록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 신앙인들, 곧 교회 전체에도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는 고통을 성급하게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그분의 신비로운 계획이라며 피상적으로 영성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그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침묵하게 만들어, 마음에 상처를 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짊어지시며, 흔들림 없이 당신을 신뢰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삶은 언제나 다시 태어납니다.”

 



[질문3]

교황 성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바르셀로나의 매우 가난한 지역에 있는 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해하려 하셨고, 어머니는 한 젊은이의 개입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 젊은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감옥에 가셨고, 어머니는 마약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사회복지기관은 저를 보호 대상으로 맡아 ‘산 호세 데 라 몬타냐’ (San José de la Montaña) 아동보호센터로 데려갔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벽을 쌓아 올렸고,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저는 처음으로 가족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고, 제 마음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저는 여러 번 하느님께 반항했습니다. 그러던 중 피정에 초대를 받았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저는 여전히 아버지를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교황 성하, 저를 어머니 없는 아이로 만들 뻔한 아버지를 저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까?


[교황님 답변]
당신의 가슴 아픈 증언에 감사드리며, 용서에 대한 그 무거운 질문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토록 깊은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를 지녔음에도, 상처를 준 이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묻는 그 용기야말로 참으로 하느님 은총의 표징입니다. 나 역시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조금 전 제가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의 하느님 현존에 관하여 말씀드린 내용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사실 당신 역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맥락은 우리에게 질문의 범위를 더 넓힐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가?”라고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인간과 인류에 대해 물어야 할까요? 우리는 왜 때때로 악의 포로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 왜 사랑을 키워 나가지 못하고 타인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지 못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수많은 강력범죄 사건들은 학대와 억압,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얼룩진 병든 가정 관계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불행하게도 자주 페미사이드(femminicidio, 여성 살해)로 이어지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개인으로서나 사회로서나 이 비극적인 현실에 맞서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모든 차원에서 이를 다루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 맡겨진 일들을 하느님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위에서 자동으로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시거나, 기적처럼 악의 발생을 막아주시리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지성과 의지를 주셨고, 양심을 주셨으며, 존엄과 자유를 입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삶이 온전히 인간다워지고 우리 사회에 정의와 평화, 형제애가 다스리도록,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러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우리 모든 인간관계의 열쇠가 되도록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폭력이 존재하고, 이기주의가 승리하며, 가족 간의 사랑마저 증오로 변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사회의 역동, 개인주의 문화, 폭력의 유혹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둘째는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 맞서는 강력한 치료제이며 우리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용서를 하나의 ‘과정’이자 ‘여정’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서를 지침이나 계명, 의무의 책으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커다란 좌절과 낙심을 겪을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고 초대하시지만 정작 우리는 그럴 능력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주님께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 입은 바로 그 자리에 주님께서 사랑의 공간을 넓혀 주시기를, 고통으로 가득 찬 우리 자신의 역사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망을 천천히 자비와 연민으로 바꾸어 주시기를—어쩌면 평생 동안—끊임없이 청해야 합니다. 그것은 긴 여정이며,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개인적으로나 혹은 내면의 화해와 동반을 돕는 다른 여정들을 통해 우리 자신 안에서 해 나가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는 아주 작은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사와 화해하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무엇보다, 용서가 언제나 그리고 모든 경우에 과거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거나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완벽한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이 수반되었던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 가능한 한 호의적인 마음을 유지하며, 모든 형태의 증오나 보복을 거부하며, 가능한 만큼 관계를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것이 우리가 용서의 역동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 하느님, 그리고 타인과 화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https://www.youtube.com/watch?v=Nctfn1kaxAM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6-06/papa-viaggio-spagna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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