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14.연중 제11주일
탈출19,2-6ㄱ 로마5,6-11 마태9,36-10,8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시편100,5)
옛 현자 다산의 말씀이 깊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오늘 내가 당당한 것은 어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가 있다. 바로 소일消日, 그럭저럭 한가롭게 보내는 세월이다."
레오 교황의 스페인 방문 중 마지막 카나리아 제도에서 한 강론 중 네 말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교회는 나라가 없는 곳에서도 존재한다.”
나라는 사라져도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영원합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그들의 존엄성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다.”
이민자들을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자비는 작은 몸짓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에 놓는 것이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작은 것부터 자비를 실천해야함을 배웁니다.
“여러분, ‘열린 성서처럼 되십시오(Be like an open Bible).’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얼굴, 삶, 사랑, 실로 모두가 편히 느낄 수 있는 말에서 발견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아니 우리는 성인들은 물론 주변에서 자주 열린 성서 같은 착한 형제들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 첫 대목에서 예수성심의 사랑이, 하느님의 자비하신 연민의 사랑이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자비의 성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예수님 삶의 요약이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불쌍하고 측은하고 가엾은 인간 현실은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의 제자들인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은 현실은 역시 영원한 현재 진행형입니다. 첫째 일꾼이 예수님입니다. 청할 것 없이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사야처럼, “제가 여기 있으니 저를 보내소서.”(이사6,8)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열두제자이자 사도들은 그대로 우리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유다의 랍비이자 신비가인 여호수아 헷쉘의 언급입니다. 이름 없는 무명의 존재에서 주님께 선택 받아 참으로 존재감 충만한 제자이자 사도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열두 사도가 다 다르듯 우리들 역시 다 다릅니다. 비교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각자 고유의 모습 그대로 주님을 따르면 다양성의 일치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성립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 해당된다 싶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민족들 가운데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처럼, 독수리 날개에 태워 오늘 지금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당신 계약의 파트너이자 당신 소유임을 확인하는, 또 우리의 귀한 성소를 새롭게 확인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부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 화해를 자랑하라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뤄진 것입니다.”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를 확인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우리의 제자이자 사도로서의 은혜로운 신원을, 그리고 우리의 고귀한 사명을 확인하는 우리들이며, 성령을 통해 더러운 영들에 관한 권한도 받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이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믿는 이들의 사명은 예나 이제나 똑같으며 우리들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넘어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1.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2.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3.나병환자들을 깨끗이 해주고, 4.마귀들을 쫓아내어라.”
우리가 하는 것 같으나 우리를 통해 주님 친히 하시는 일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시작되는 치유입니다. 도대체 이 4개 병든 현실에 해당되지 않는 온전한 자들은 몇이나 될까요? 죄도 많은 세상이기에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더불어 평화로운 공동체 삶 자체도 <산들은>이란 다음 시에서처럼 위로와 치유의 좋은 복음 선포가 될 수 있습니다.
“산들은
다투지 않는다
서로
등을 기대거나 바라보면서
늘 제자리에
평화롭고 고요히 머물러 있다”<1997.10.4.>
알게 모르게 앓는 병자들이요, 희망과 꿈, 길과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 있다하나 죽어 있는 자들, 죽어가는 자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며, 깨끗해져야할 영적나병환자들도 참 많을 것이며, 세속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양극단의 맹신과 광신의 이념등 헤아릴 수 없이 온갖 종류의 마귀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입니다. 오늘날은 범세계적으로 마귀들의 창궐시대라 함이 옳은 진단일 것입니다.
요즘 각광받는 AI시대! 종말을 앞당기지 않겠나하는 우려도 듭니다. 편리하고 신속할수록 바빠지고 복잡해지고 여유를 잃고 조급해지는 역설입니다. 느리고 불편하고 힘든 것이 사람에게는 득이자 약일 수 있습니다. 식자우환, 아는 것이 병입니다. AI시대와 더불어 자연이, 인간이 망가지면 미래도 없습니다. 깨어 분별력의 지혜를 지니고 진리의 연인이 되어 정진하면 AI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AI는 우상이나 사탄이 되어 인간을 조종하고 지배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수확할 밭의 주님의 참 좋은 일꾼이, 주님의 참 좋은 제자이자 사도가 되어 살 때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자비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ㄷ).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