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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이민자들에게 “여러분 앞에 고개 숙입니다. 바다에는 마피아와 인신매매범이라는 괴물이 존재합니다”

작성자코스모스|작성시간26.06.14|조회수38 목록 댓글 0

 

교황, 이민자들에게

 

“여러분 앞에 고개 숙입니다. 바다에는 마피아와 인신매매범이라는 괴물이 존재합니다”

스페인 사도 순방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일정으로 라스팔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를 찾은 레오 14세 교황이 아르기네긴 항구에서 이민자들과 그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을 만났다. 이곳은 비극적인 선박 입항의 현장이자 아낌없이 베푸는 따뜻한 환대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교황은 “인간의 존엄성에는 여권이 없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합법적이고 안전한 경로, 구조, 피해자 보호, 그리고 사회 통합”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을 향해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을 착취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교황은 바다에 화환을 헌화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스페인 사도 순방
(2026년 6월 6일 - 12일)


Santa Cruz de Tenerife, Meeting with Migrant Integration Organizations, June 12,2026
이민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과의 만남
교황 성하의 연설

아르기네긴 항구 (그란 카나리아 제도 라스팔마스)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방금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25장에 신자라면 그 누구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준엄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태 25,41-45 참조). 오늘, 이 바닷가에서 주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현실이 됩니다. 이곳에는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깊은 상처를 입은 수많은 이들이 도착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존엄성만큼은 결단코, 절대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복음은 우리를 구경꾼이라는 편안한 자리에서 끌어내려, 방금 도착한 형제자매들과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복음은 우리에게 사막과 밤과 바다를 거치며 두려움과 굶주림, 폭력에 휩싸인 채 배에서 내리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 묻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저는 제 손에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이 반지의 이름 자체가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며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라고 말씀하셨던 갈릴래아 호수로 인도합니다. 교회는 이 구절을 교회의 사명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이곳과 엘 이에로(El Hierro) 같은 장소에서, 그 사명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자 고통스러운 무게로 다가옵니다. 면적은 작지만 인간성만큼은 위대한 그 섬으로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쫓겨나 위태로운 ‘카유코’(cayuco,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타는 작은 나무배)에 몸을 맡긴 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바다에서 구조된 이들도 있지만, 물에서 건져 올린 생명 없는 시신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베드로의 후계자는 이러한 비극적인 입항을 결코 모른 체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바다를 외면할 수 없으며, 굶주림과 목마름, 폭력과 두려움, 혹은 유배가 인간의 존엄성을 계속해서 짓밟고 있는 그 어떤 곳도 모르는 척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두운 밤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결코 남의 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성경 언어에서 바다는 위협과 어둠, 그리고 혼돈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힘을 형상화한 레비아탄과, 하느님과 생명을 거슬러 일어나는 권력의 오만을 일깨우는 이름인 라합이 등장합니다(시편 74,13-14; 89,10-11; 이사 27,1; 51,9; 욥기 26,12 참조). 오늘날에도 이 바다를 배회하는 괴물들이 존재합니다. 절망을 거래하는 마피아, 여성과 아이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인신매매범,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착취와 망각 속으로 집어삼켜지도록 방치하는 수많은 이들의 무관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다의 거대한 힘 앞에서 마비된 채 서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돈을 굴복시키시고, 악에 한계를 설정하시며, 죽음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길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홍해를 건너며 이를 몸소 체험했습니다(탈출 14,21-31 참조). 또한 우리는 물 위를 걸으시며 풍랑을 향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 마태 14,25-27 참조)라는 권능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 관상합니다. 그 목소리는 오늘도 우리의 수많은 형제자매를 집어삼키고, 노예로 만들고, 내버리는 악의 세력들을 향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다를 향해 잠잠해지라고 명령하시는 바로 그곳에서, 교회는 바다에 버려진 이들을 보며 결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증언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어 고맙습니다. 카리타스와 여러 본당,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매일 실천하고 있는 일들을 기억하게 해 준 마리아 자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마리아 자매의 말은 우리 시선의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민자가 더 이상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 아니게 될 때, 하나의 범주나 숫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게 될 때 시작됩니다. 오직 그때야 우리는 저 어린아이가 내 딸일 수도 있으며, 저 얼굴들이 내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양심은 더 이상 변명할 핑계를 찾지 못합니다. 자비는 아주 작은 몸짓에서 출발합니다. 때로는 몇 조각의 과자와 우유 한 모금으로, 또 때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마태 14,17-21 참조)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이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 드리는 것이며, 인간이 고통받는 그 자리에,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통하는 언어가 없을지라도 몸짓으로 여전히 대화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와 환대, 그리고 동반의 여정에 함께하며 구체적인 자비가 인간의 삶을 구하고 바꿀 수 있음을 몸소 증언해 주시는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블레싱 자매, 비록 오늘 이 자리에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자매의 목소리는 이곳에 고스란히 닿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매의 이야기를 나눠주어 고맙습니다. 자매의 이름은 “축복”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모든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사거나, 팔거나, 이용하거나, 마음대로 내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 안에는 창조주의 모습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세 1,27 참조). 자매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고향 땅을 떠나야만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자매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가난과 전쟁, 위협과 착취로 인해 다른 모든 길이 막혀버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의 비극을 마음 깊이 느낍니다.

저는 이 메시지가 자매에게, 그리고 인신매매와 착취의 피해자가 된 수많은 여성에게 꼭 닿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이 자매의 몸에 값을 매겼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자매를 헤아릴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바라보기를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자매를 고통스러운 과거 속에 가두려 했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자매를 향해 미래의 약속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자매를 물건처럼 취급했을지라도, 오늘 교회는 자매에게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대는 딸이며, 자매이자, 축복입니다.’ 자매의 삶은 자매에게 상처준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자매의 몸은 자매를 착취한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자매의 나날들은 자매를 두려움에 사슬 채우려 했던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자매의 삶은 하느님의 것이며, 그 누구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존엄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리가 고통보다 더 강력하게 자매의 마음에 다시 울려 퍼질 때까지, 자매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민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말을 더 건네기에 앞서, 저는 여러분의 존엄성 앞에 고개 숙여 깊이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단지 숫자가 아니며, 서류 뭉치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뒤로 남겨두고 온 가족과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며, 그 누구도 감히 깎아내릴 권리가 없는 소중한 꿈을 품은 인격체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의 생명이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씀 또한 드리고 싶습니다. 돈으로 흥정하는 자들의 손에 여러분의 존재를 내맡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몸과 돈, 침묵, 혹은 여러분의 자유를 대가로 요구하며 손쉬운 낙원을 약속하는 자들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 거짓된 약속들은 파멸로 이끄는 “세이렌의 노래”이며, 죽음의 산업입니다.

여러분의 비극은 양심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발전의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출신 국가들을 위한 양심 성찰이어야 하며, 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범죄 조직의 손에 방치하지 말아야 하는 경유 국가들을 위한 양심 성찰이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지중해와 대서양이 비석 없는 무덤으로 변해가는 현실에 익숙해져 버린 유럽을 위한 양심 성찰이어야 하며, 실효성 있고 지속적인 협력을 펼쳐야 하는 국제사회 전체를 위한 양심 성찰이어야 합니다.

교회 또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민자를 환대하는 일은 결코 부차적인 사명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몇몇 자원봉사자들에게만 위임하고 끝낼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 위해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며, 그분으로부터 사랑의 삶을 살아갈 힘과 동기를 부여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카유코’(cayucos)와 ‘파테라스’(pateras, 이주민들이 타는 작은 뗏목 형태의 배)를 마주했을 때 결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봉사는 바로 기도에서 솟아나고, 모든 실천적 헌신은 다시 기도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루카 10,31-32 참조).

이 섬으로부터, 저는 오늘 목소리를 높인 이들의 외침이 결정적인 책임을 쥐고 있는 이들, 곧 시민 당국, 의회, 정부, 그리고 국제기구들에 닿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다른 종교 전통들, 그리고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이주민 유입을 관리하고, 인원을 분산시키며, 국경을 강화하거나, 이미 발생한 죽음을 보고 사후에 애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착하는 모든 배는 그저 이민자만 태우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가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무릅써야만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합법적이고 안전한 경로, 구조와 지원, 인신매매범들에 맞선 실질적인 협력, 피해자들을 향한 효과적인 보호, 진정성 있는 환대와 통합의 과정, 그리고 모든 이가 자신의 고향 땅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생명이 위협받을 때 피난처를 찾을 권리가 존재한다면, 이주하지 않을 권리 또한 존재합니다. 곧, 굶주림 없이, 전쟁 없이, 박해 없이, 폭력 없이, 삶의 터전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황폐해지는 일 없이, 부패가 가난한 이들의 빵을 훔쳐 가지 않고, 무기가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든 집을 떠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권리 말입니다. 우리는 죽어간 이들의 숫자를 세는 일에 결코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여권이 없으며, 국경을 넘어간다고 해서 그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삶의 황혼기에 우리를 사랑으로 심판하실”(십자가의 성 요한, 「영적 권고」, 57항 참조)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들 안에서 당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고,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나와 상관없는 일인 양 바라보는 냉담함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르멜산의 성모님께서 이곳에 도착한 이들과 함께하시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시며, 그들을 환대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시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비의 용기를 일깨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우리 해안가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로 전락시켜 버렸다는 죄목으로, 역사가 우리를 고발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바로 여기 이 바닷가에서, 도착하는 모든 생명은 우리에게 우리의 인간성 가운데 과연 무엇이 남아 있는지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우리가 이 인간성을 지켜낼 줄 알았는지, 아니면 무관심이 우리를 대신해 말하도록 방치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번역 이창욱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6-06/papa-viaggio-spagna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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