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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랑-2026.예수 성심의 딸 수녀회 로마 수도원 총장 마리아 조반나 수녀

작성자코스모스|작성시간26.06.17|조회수40 목록 댓글 0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랑


예수 성심의 딸 수녀회 로마 수도원에서 총장 마리아 조반나 수녀가 “하나의 마음, 곧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서 난 자녀”인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지닌 영적 의미를 묵상했다. 

이어 이 시선은 사랑과 일치, 그리고 선교 사명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현실로 향했다.


Antonio Tarallo - Città del Vaticano
2026년 6월 15일



침묵이 밀려와 마음을 뒤흔든다. 그렇지만 그 침묵은 소리 없는 침묵이다. 그러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오르간의 선율, 수도복이 스치는 소리, 바닥을 조용히 디디는 발걸음,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감미롭게 속삭이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복녀 마리 들뤼유 마르티니 수녀가 1873년 6월 20일 창립한 예수 성심의 딸 수녀회의 로마 수도원이자 총본부의 담장은 이렇듯 침묵을 품고 있다.

 

로마 도심의 교통 체증과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평온한 방과 형형색색 꽃이 만발한 정원, 그리고 수녀들이 성무일도와 성찬례 거행을 위해 모이는 작은 경당의 고요함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못한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수도원의 일상을 알려주는 시계 초침과도 같다. 수도회의 이름 안에는 이미 그들의 모든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 곧 “딸”과 “예수 성심”이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아, 우리는 이 수녀회의 총장인 예수 성심의 마리아 조반나 수녀를 만났다. “성심”이 오늘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중심 주제다.



일치된 두 성심
세상과의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향한 창이 되어 주는 수도원 창살 너머로, 수녀들의 수도복 한가운데에 붉은 두 성심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서로 가까이 맞닿아 거의 하나로 얽힌 듯한 모습이다. 이 두 성심은 화살에 꿰찔려 있고, 그 아래에는 가시관이 있으며, 그 위로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 개의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바로 전날인 6월 12일 금요일에 맞이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의 의미를 두고 마리아 조반나 총장 수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듯, 우리는 그 성심의 이미지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일치를 이룬 두 성심입니다. 하나의 마음, 곧 하느님 아버지의 그 마음에서 난 자녀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이 이미지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해부학적’ 삼위일체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오하게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또 다른 성심, 곧 동정 마리아의 성심에서 태어난 예수님의 성심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또한 그만큼 신비롭기도 합니다. 동정 마리아의 성심 곁에 있는 예수님의 성심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입니까! 얼마나 고운 선율입니까!

저는 가끔 그리스도의 어머니께서 당신 아드님의 심장 박동, 곧 태중에서 아기의 첫 심장 박동을 느끼셨을 때 어떤 심정이셨을지 자문해 보곤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곤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영적으로 너무나 숭고하면서도 동시에 지상적이기도 한순간이었습니다.”

 

1989년 10월 22일 전교 주일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된 창립자 마리 들뤼유 마르티니 수녀의 시집을 두 손에 꼭 쥔 채, 예수 성심의 딸 수녀회 총장 수녀는 이와 같이 설명했다.



세상 안에 선교사들
선교 정신과 예수 성심. 이 두 단어는 서로 그리 연관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아 조반나 총장 수녀는 이렇게 명확히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은 뇌와 정신과 더불어 우리 행동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마음이 나에게 하라고 귀띔하는 것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형제자매를 위해, 타인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지요. 성령의 이끄심 덕분에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속에 우리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 곧 하느님의 목소리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평신도든 수도자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성심의 선교사, 세상을 향한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하며 마리아 조반나 수녀는 복녀 마리 들뤼유 마르티니 수녀가 쓴 시집을 펼쳐 들고, 낮은 목소리로 몇 구절을 읊조렸다.

 

“당신을 헤아릴 수 없이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왜 저에게 이 두 성심을 주셨나이까?

당신의 위업 안에서, 간절히 청하오니

불타는 당신의 성심을 위해, 당신의 깊은 상처를 위해

오, 스승님이시여, 승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제가 죽으리이다!”

 

조금 전까지 흐르던 침묵은 이제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해간다. 이 시 구절들은 마치 하나의 노래 가사가 된 듯하다. 흘러간 먼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현재 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사랑의 문명
수녀와의 대화는 오늘날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한층 더 생기가 돈다. 수도원의 그 창살이 벌어지고, 확장되며, 활짝 열려 마치 전쟁과 야만적 행위, 권력의 남용, 그리고 인간의 이기주의가 담긴 화면을 송출하는 컴퓨터나 텔레비전의 모니터처럼 변해가는 듯하다. 마리아 조반나 수녀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동정 마리아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과 함께, 예수 성심이 승리할 때에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과 오늘날 레오 14세 교황님이 그토록 염원하신 사랑의 문명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문명은 오직 마음(성심)으로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번역 이창욱

https://www.vaticannews.va/ko/vatican-city/news/2026-06/vaticano-sacro-curo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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