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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하지 마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와 겸손뿐이다” -2026.6.22.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작성자코스모스|작성시간26.06.22|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6.22.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열왕17,5-8.13-15ㄱ.18 마태7,1-5

 

심판하지 마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와 겸손뿐이다”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말씀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입니다. 인간 대부분의 불행이나 비극은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인간>, 인간이라 정의할 만 합니다. 동방영성에서 배운 참 많이 인용하는 무지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부단한 회개와 겸손뿐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도 우리의 무지를 일깨웁니다.

 

“매일 자기 전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위대함은 확실하게 쌓여간다.”<다산>

“날마다 세 가지 점에서 나를 반성한다. 일을 할 때 불성실하지 않았는가? 벗의 신뢰를 저버린 일은 없는가? 배울 때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논어>

 

두 분 다 인류의 스승답습니다. 성찰과 회개의 일상화, 습관화, 생활화라 칭하고 싶습니다. 이 또한 무지에 대한 참 좋은 대안입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회개의 여정>에 충실한 이는 매일의 아침처럼 새롭습니다. 오래전, 무려 29년전 49세때 여기서의 <아침>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자연은 살아 있는 성경책

 아침의 자연은 늘 새롭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밤의 침묵과 휴식 때문이다

 

 ‘아침을 먹었느냐?’

  가 아닌 ‘아침을 보았느냐?’, 

 ‘아침을 들었느냐?’, ‘아침을 읽었느냐?’

  인사할 수는 없을까

 

  똑같은 사람, 환경, 말과 글도

  살아 있으면, 

  침묵의 밤이 있으면

  늘 새로운 아침일 수 있다”<1997.8.16.>

 

날마다 새 아침을 보며, 들으며, 읽으며, 동요를 부르며 산책하는 기쁨이 참 큽니다. 회개가 일상화될 때 참된 겸손이요 늘 새로운 시작의 아침일 수 있습니다. 요즘 꽤 많은 비가 내리니 흐르는 물이 맑습니다. 역시 예전 <혁명>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물론 혁명이 상징하는 바 늘 새로워지는 영적혁명입니다.

 

“이런 게 혁명이라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다

 바짝 마른 바닥에 잡초와 오물들 

 

 대책 없이 썩어 악취를 발하던 시내 

 폭우 내리니

 말끔히 씻겨 청소 정리되어

 

 하얀 백사장白沙場 모래위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물, 

 살아 노래하는 시내가 되었다

 이런 게 혁명이라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다”<2001.7. >

 

이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영적혁명의 <회개의 여정>에 충실한 <회개의 생활화>가 절실합니다. 참으로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앞에서의 회개와 겸손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자기를 몰라 무지해서 판단이요 심판이지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사람이라면 절대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이는 판단이나 심판이나 차별보다는, 구별과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선입견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도록 노력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점입가경, 무지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무지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이래서 “네가 뭔데?”, “너나 잘 해!” 상대방의 반격에 속수무책 당황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이 천둥처럼 우리의 무지를 일깨웁니다. 평생 지니고 살아야할 화두 같은 말씀입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참으로 회개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자기를 알아 날로 겸손해짐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이런 겸손한 지혜의 사랑만이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무지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임을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에서 배웁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 임금의 진격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니, 아시리아는 하느님 심판의 몽둥이였던 것입니다. 후반부 말씀이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하느님 탓이 아니라 무지의 교만으로, 회개와 겸손의 결핍으로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요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의 탐욕과 폭력의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요 역설적으로 문명의 야만시대 같습니다. 어느 때보다 영적혁명의 회개가, 생태적 회개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끝없는 진보, 성장, 발전 신화의 유혹에 빠질 때 더불어 펼쳐지는 지옥도입니다. 그러니 참된 회개가 없는 무지에 눈먼 끝없는 탐욕에 기반한 AI 문명이라면 십중팔구 사상누각의 바벨탑 쌓기요 지금도 계속되는 무지의 현실입니다. 무지의 답은 끊임없는, 한결같은 회개와 겸손의 수행뿐이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 아멘.

 

 

http://www.benedict.kr/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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