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둥그런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아이들이 한데 모여
연필을 끄적이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오빠가 주산 학원에 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저녁 시간이 되면 엄마는 으레 내 손에 뜨겁게 데운 보약 한봉지를 쥐어 줬는데
주산 학원에 다니는 3학년 오빠에게 보약 심부름을 하라는 뜻이었다.
약간 산동네에 위치하고 있던 학원까지...8살의 내 걸음으로 약 15분거리.
식기전에 갖다 줘야 하는 임무를 맡은 난....그 비탈진 고개를 종종 걸음으로 올라
학원문을 빼꼼히 열고 오빠를 찾았다.
물론 암산하라고 쥐어준 주판으로 친구들과 한창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오빠를 봤을땐
보약이고 뭐고 목을 짤짤 흔들어 주고 싶었지만,
그런 환경에도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주산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얼마 뒤, 여의치 않은 사정이었지만 집에서는 주산학원을 다니는것에 대해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어린것이 문 닫힌 학원 앞에서 알짱거리는게 안되보여서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산수에 돌대가리가 되어 가는 딸래미의 앞날이 걱정되어
급하게 회비를 챙겨주셨던것 같다.
전시되어 있는 '산아제한 기구'는 1972년 12월 제조된것으로 확인 되며
정부에서 무상으로 공급하니 팔지 말라 명시 되어 있다.
정부의 방해 공작에도, 일제의 고무 풍선에도 굴하지 않고 태어난 1970년도 초의 아가들아!!
당신들이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종이딱지와 고무풍선.
길게 찢어먹는 쫀드기와 라면땅 과자 뽀빠이.
유치원 시절. 할머니 동전 지갑에서 10원씩 꾸준히 빼돌려 100원이 되면
동네 슈퍼에 달려가 아폴로를 색깔별로 사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새끼 손가락만한 설탕을 사서
왠종일 쪽자 만드느라 혼자 바빴다.
서울에 와서야 뽑기 또는 달고나 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는 것을 알았는데
내가 살던 부산의 동네에서는 그것을 "쪽짜"라 불렀다.
뭔가 야릇하지 않은가............쪽~짜~베이베...
연탄불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시커먼 국자 안에 설탕을 들이 붓고
나무 젓가락으로 한참을 돌리면 찐득하게 녹은 설탕물이 되는데,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얼마나 적정량의 소다로 멋지게 쪽짜를 부풀리냐 하는거였다.
적게 넣으면 잘 부풀지 않고, 많이 넣으면 맛이 써진다.
그렇다. 쪽짜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과학이다!!!
벽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책방 전시물.
희뿌연 먼지를 닦아내어 가운데만 선명해진 창가.
그런 소소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연한 전시장측의 연출에 혀를 내둘렀다.
나보다 연세가 많은 만화책들은 두줄의 검은 고무줄에 고정되어 있고,
게중 하나를 집어 들어 살펴보니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의심의를마친책'
이라는 문구가 날 호흡곤란의 상태로 인도하였다.
만화는 현대의 기준으로 잘그렸다기 보다 익살스런 그림체로
내용 또한 어렵기 보다 가볍고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보는것만으로도 상당히 김 빠진 기분을 가지게 하는 코라~
그때 그 시절의 발로 그린 포스터와 군더더기 없는 문구들.
"인분을 준 채소를 먹으면 회충, 12지장충에 걸린다!"
사람 똥은 만물을 해롭게 하니 인간은 지구에서 괴멸하라는 뜻인가.
어둠이 서서히 깔리고 골목 구석구석에서 새어나오는 각각의 구수한 된장국 냄새.
푸싯푸싯 밥 짓는 소리와 깔깔거리며 흩어지는 동네 꼬마 아이들의
뽀얀 웃음소리로 가득한 좁은 골목.
컹컹 개 짓는 소리가 동네 어귀에서 부터 돌림노래 마냥 꼬리를 물고....
노란 빛을 토해내는 자그마한 창틀 사이로 복작거리는 그네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달동네라지만 게중에서 좀 사는것 같은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른 집과는 달리 작지만 마당도 있고 두평 남짓한 대청마루로 있었다.
역시 돈 좀 만진 이 집안에는 그 시대 흔하지 않던 테레비가 안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하고 돌려야 바뀌는 채널과 아무리 잘 차려 입고 출연해도
검은색과 흰색으로 발광할 뿐인 흑백 테레비.
그리고 뭔가 혼수상태의 세계로 떠나신 재연 마네킹들의 무료한 자세.
원래는 옛날에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틀어 놓는데
폐장시간이 가까워서 인지 아쉽게도
꺼진 텔레비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밖에 담을수 없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그림일기 코너.
시간적 여유만 있었더라면 피카소가 부럽지 않을 작품을 남겼을텐데,
폐장 5분전이라고 눈치 주는 관리인의 매정함에 황금색 크레파스만 죄다 훔쳐왔다.
유치원때의 도벽이 여직 고쳐지지 않았어.
그랜 난 또라이. 규범을 모르는 여자지.
꼬맹이들이 그려놓은 그림의 8분이 1이 '물지게를 든 내 모습' 이였고,
일기의 주된 내용은 "박물관에 와서 옛날 사람들을 보니 참 좋고 신기했다." 라는
뭐가 좋았고 뭐가 신기한지, 행방불명된 주어로 이뤄진 내용이 대다수 였다.
정말 쓰기 싫은데 억지로 꾸며 적은 개학전의 일기장 같았다고나 할까.
자라나는 꿈나무들. 자꾸 획일화 되어 갈텐가!!
그 밥에 그나물 마냥....꿈나물에서 안주 할텐가!!
내용 출처 - http://blog.naver.com/ddongpud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