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그 가벼운 고독>
요즘 부쩍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가족 형태의 점진적인 변화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늘어났고, 부부 중 한 사람만 남아 여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유행처럼 젊은 세대는 독립하여 일찍이 1인 가구를 이루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중장년층 중에서도 직장 때문에 부득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는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혼밥'이라는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 가보면 예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1인용 식탁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고, 홀로 식사하는 손님들의 모습도 이제는 거스르지 않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혼밥이 늘어나는 현상은 단순히 식습관의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에는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식구(食口)로서의 일체감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독립적인 생활 방식과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표적인 흐름의 하나가 ‘혼밥 문화’가 아닌가 한다. 이런 변화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홀로 삶을 꾸려가는 노년층이 늘어난 사회적 현실도 한몫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식사 시간을 누리려는 자발적 흐름도 있다. 그래서 이제 혼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자연스러운 생활 양식의 하나가 된 듯하다.
이런 사회적 흐름은 나 개인의 삶에도 건너와 스며들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집에서 아내가 어디로 며칠간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혼밥을 마주한다. 아내가 챙겨두고 간 음식을 데워 먹기도 하고, 때로는 집밥이 아닌 별미가 생각나면 홀로 식당을 찾는다. 평소 늘 곁에 있던 아내가 없으니 처음에는 집안이 조금 텅 빈 것처럼 낯설었지만, 그 고요한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꼭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을 아직 아내에게 말해 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똑같이 며칠간 집을 비울 때면 아마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한다.
어느 날 홀로 남은 집에 앉아 있으면,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세상의 소리들이 귀에 쏙 들어온다. 아파트 창밖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스치는 소리, 참새들이 재잘거리는 울음이 아파트 벽면에 부딪혀 되울리는 소리까지 새삼스레 선명하다. 늘 곁에 머물렀으나 바쁘게 살아오며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서정(抒情)이다. 그럴 때면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과 나무와 새들이 내 곁에 있고, 세상의 수많은 생명이 저마다의 모습과 소리로 나와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어느 순간 살아 있는 풍경으로 다가와 내 마음에 한 편의 시로 내려앉기도 한다.
'혼자 집에 있느데 햇빛이 창가로 와
창문을 두드린 뒤 거실로 들어온다
무심코 창가에 혼자 앉아 있으니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무슨 기척이 있어
아파트 정원으로 눈을 돌리면
날로 푸르름을 더해 가는 초목 사이로
바람이 곁눈질하며 지나가고
주문한 물건을 현관 앞에 두었다는
배달원의 벨 소리도 들리고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식구들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집에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네.'
집을 벗어나 식당에서 즐기는 혼밥에는 또 다른 멋이 있다. 혼밥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온전한 '자유로움'에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상대의 입맛을 배려할 필요도 없이 오롯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면 그만이다. 담백한 메밀국수를 먹고 싶으면 국숫집으로, 얼큰한 생선 매운탕이 그리우면 탕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선택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선택하는 결정과 그 과정에는 작은 행복과 여유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흔히 혼밥하는 모습을 외로움과 연결해서 바라보곤 한다. 물론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혼밥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잠시 복잡한 세상에서 걸어 나와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가깝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고, 평소 놓치고 살던 주변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독일 출신 미국 철학자, Kannah Arendt는 ‘외로움은 누구와도 함께 있지 못한 상태이지만 고독은 혼자 있지만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라 했다. 그래서 나는 혼밥의 시간을 '가벼운 고독'이라 부르고 싶다. 고독이란 단어에는 다소 서늘한 그늘이 배어있지만, 그 그늘이 반드시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은 가끔 의도적인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결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혼밥은 그런 은혜로운 틈새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혼자 먹는 한 끼의 밥상에서 삶의 쉼표를 발견하고, 그 여유 속에서 평소 보이지 않던 세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다시 만나기도 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그렇다고 언제나 혼밥족인 것은 아니다.
오늘도 나는 그 가벼운 고독을 즐기려 길을 나선다.
'가끔 점심을 혼밥하러 간다
서럽거나 외톨이라서가 아니다
엄마의 밥 냄새가 풍기는 곳이어서
누구와 함께하기엔 조금은 민망한 곳이어서
지하상가 낡은 간판의 비빔밥집
메뉴는 셀프 비빔밥 한 가지
찌그러진 양푼에 밥을 적당히 담고
가게 반찬과 나물을 취향대로 얹은 뒤
계란프라이 하나에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다
곁들임은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
무료함을 달래려 TV를 보다
꾸뻑꾸뻑 조는 주인 할머니
다진 쇠고기볶음은 없어도
빨, 주, 노, 초 색감이 어울려
소문난 고급 한식집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밥맛
'음식은 험하게 먹어도 잠은 가려 자라' 했던가
벗을 초대할 곳은 못 되어도
이 쑤시며 나올 곳은 못 되어도
서민의 소박한 삶과 사람 냄새가 배어있는 곳
그래서 가끔
나와 둘이서 먹는 이 밥이 좋다.'
혼밥은 외로움의 그림자가 아니라 삶이 선물하는 가장 호젓하고 가벼운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