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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작성자정익준|작성시간26.06.11|조회수29 목록 댓글 0

<붕어빵과 담장 뛰어넘기>

 

늦가을 저녁, 도심의 거리를 걷다 보면 붕어빵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라 온다. 오늘처럼 바람이 제법 부는 날, 은행잎이 노랗게 쌓인 인도 한쪽 포장마차 안에서 붕어빵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주인장의 숙련된 손놀림으로 붕어빵 틀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팥의 달콤한 향이 번져 나온다. 길가는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비비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갓 구운 붕어빵을 종이봉투에 받아들고 ‘후후’ 불며 먹는 모습은 세대가 달라도 이 풍경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인지 유난히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오는 것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붕어빵이 단연 선두주자다. 붕어빵은 중년들에게는 '추억의 먹거리'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간식거리가 되었다.

나도 길거리를 가다 붕어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냄새 속에는 나의 한 시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붕어빵은 시간을 거슬러 나를 어느 날의 교정(校庭)으로 데려가는 작은 문이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마치고 부산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먹고 나면 곧 배가 고픈 한창 성장기에 있었고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학교수업 3교시 종이 울리기도 무섭게 준비래 간 알루미늄 도시락을 비웠고, 때로는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의 도시락에 숟가락을 얹은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교내 매점에서는 도넛, 찐빵, 꽈배기 같은 먹거리를 팔고 있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것이 교문 밖 길모퉁이에서 붕어빵을 굽는 한 노점이었다.

 

문제는 일단 등교 후에는 특별한 사유가 아닌 한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당시의 학교 규칙이었다. 오랫동안 궁리 끝에 처벌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 몇 명과 학교 담장을 넘기로 했다. 그런 위험한 담장 넘기를 하지 않고 등교 시에 붕어빵을 사서 책가방에 넣어 오면 되지 않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고소한 붕어빵 냄새로 교실 내의 침략자들의 노림에 온전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실제로 벽돌 담장 앞에 서 보니 생각보다 높았고 발 디딜 틈도 마땅치 않았지만, 먼저 키가 큰 친구가 올라가 손을 아래로 쭉 내밀면 뒤따라 몸을 끌어올렸다. 담장을 넘는 그 짧은 순간, 내 심장은 자동차 엔진처럼 부릉거리며 뛰었고 교무실 창문 쪽을 힐끔거리며 숨을 삼켰다.

 

고생 끝에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내려서는 순간, 밖의 세상은 달라졌다. 교복 바지에 묻은 먼지도 혹시 선생님께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묘한 흥분 속에 뒤섞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노점 앞에 서면 틀에서 갓 꺼낸 붕어빵이 노릇하게 부풀어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붕어빵을 봉투에 담아 주었고, 종이봉투를 통해 손바닥으로 전해지던 따뜻했던 온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손이 먼저 녹았다.

 

받아 든 빵을 한입 베어 물면 얇은 껍질이 바삭하게 갈라지고 속의 팥이 뜨겁게 입가로 흘러나왔다. 우리는 입천장을 데어 가며 허겁지겁 먹었다. 그 달콤함은 단순한 맛이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였고 우리만이 느꼈던 작은 승리였다. 붕어빵을 먹고 난 후 다시 담장을 넘을 때는 배 속이 포만감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교실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으면 무엇인가 하나를 얻었다는 묘란 만족감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붕어빵 자체가 아니라 그때의 '뛰어넘기'인지도 모른다. 담장을 넘던 짜릿한 해방감,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났던 따뜻함. 붕어빵는 그 모든 기억을 묶어 준 매개체였다. 시린 기억만 남았을지도 모를 청소년기의 한쪽에, 붕어빵는 작은 난로처럼 놓여 있었다.

 

그 당시 모험심에서 행한 담장 넘기는 배고픔의 해결책이었다면,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다른 배고픔과 마주하고 있다. 육신의 허기보다 더 선명한 영혼의 허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산을 찾는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다리도 무겁지만, 신기하게도 몸이 힘들어질수록 머릿속은 점점 맑아진다. 도시에서 얽혀 있던 생각들이 땀과 함께 흘러내리고 마음속 매듭들이 하나씩 풀린다. 발아래 낙엽의 바삭거리는 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나를 다독인다.

 

한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능선이 나타나고 그 능선을 넘으면 시야가 확 트인다.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그제야 한눈에 들어온다. 삶의 문제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산은 무엇인가를 더해 주기보다 내 안의 욕심을 덜어내게 한다. 덜어낼수록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비워진 자리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리고 어린 시절 담장을 넘던 심장박동도 산길에서 살아난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이제는 들킬까 두려워 숨을 삼키는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며 숨을 고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오르고 내려오는 사이 내 안의 공허는 조금씩 잦아들고 허기를 견딜 힘도 생긴다.

 

잠시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함께 담장을 넘던 날들도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서로 손을 잡아끌어 올려 주었기에 우리는 그 담장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앞에 놓인 또 다른 담장은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도 외면하려는 마음의 담장이다. 그 담장은 예전처럼 짜릿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무겁게 넘어야 할 담장일 것이다.

 

늦가을 거리에서 붕어빵 하나를 손에 쥐고 잠시 식기를 기다린다. 김이 가시고 적당히 따뜻해질 때 한입 베어 문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뜨거울 때는 잠시 기다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설 때 비로소 그 안에 숨은 단맛을 알게 되는 것.

 

이제는 그 따뜻함을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산길을 오르듯 한 걸음씩 나를 넘어 타인의 얼굴 앞에 서는 삶. 그 담장을 넘어설 때 비로소 내 삶도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결국 저마다의 담장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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