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속의 무성한 가시나무숲을 비우며 ]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교수가 1988년에 발표한 노래「가시나무」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 안을 돌아보게 됩니다.
노래는 말합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밖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어쩌면 내 안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나 자신'일 수 있다고.
그 노랫말을 다시 읽어 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안에도 이런 가시나무숲이 있습니다.
주님보다 내가 더 크고,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크고, 이해보다 내 생각이 더 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점점 가시나무숲이 되어 갑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하고, 먼저 손 내밀기보다 기다립니다. 화해하고 싶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돌아서고,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내 고집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자존심은 참 영악합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은 자신도 아프게 하고 주변 사람들도 다치게 만듭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메마른 가시나무 가지들은 어쩌면 교만과 자존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어린 새들은 우리가 무심코 상처 입힌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부드러운 마음에 머무시지만, 가시로 가득한 마음에는 쉬이 머무시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무엇을 더 채우는 일이기보다, 무엇을 비워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 주장 하나 내려놓고,
* 내 고집 하나 꺾고,
* 내 자존심 하나 내려놓는 것.
그 비워진 자리만큼 주님이 머무실 공간이 생기고, 그 비워진 자리만큼 사람을 품을 여유도 생깁니다.
내가 작아질수록 주님은 더 크게 일하시고, 내가 낮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 안에 무성하게 자라난 가시들을 하나씩 잘라내고 싶습니다.
지쳐 날아온 작은 새 한 마리가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기꺼이 머무실 수 있도록,
내 마음 한편에 따뜻하고 평안한 빈자리 하나를 마련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