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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는다는 것

작성자All is well|작성시간26.06.11|조회수44 목록 댓글 0

[품는다는 것]
교회 주변을 산책하다가 문득 나무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오래된 나무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적어도 2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킨 큰 나무들에게는 어린 나무에 없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이끼’였습니다. 오래된 나무들은 나무 기둥에 어김없이 푸른 이끼를 품고 있더군요. 반면 어린 나무들은 매끄럽고 깨끗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고, 성장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큰 나무는 이끼만 품는 게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수많은 생물들을 품고 함께 살아갑니다. 뿌리 아래에는 지렁이, 개미, 굼벵이 같은 수많은 곤충들이 그 나무 한 그루 덕분에 집을 얻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름날 매미 허물이 유독 큰 나무 아래에 많이 붙어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성숙한 큰 나무는 많은 열매와 낙엽으로 주변의 생명들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J 권사님 댁 주방의 창은 통창입니다. 시야를 가르는 창살이나 구분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하나의 시선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통창처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라서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넉넉히 품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큰 나무처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를 품는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생명을 낳는 참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는 어미 닭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 날 동안 그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니까 결국 노란 병아리가 깨어납니다. 어머니가 뱃속에 태아를 품는 것도 그렇습니다. 열 달 동안 입덧을 하고 몸이 무거워도 힘들게 품어내기에 아기가 태어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머니가 품어주었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든, 혹은 누군가가 우리를 정성으로 품고 길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품어줌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죠.


어느 92세 노인과 60세 된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실에 마주 앉아 있는데 창가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까치예요, 아버지" 하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조금 뒤 아버지가 또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까치라니까요" 했습니다.
세 번째로 똑같이 묻자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치라고요!" 아들의 목소리엔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네 번째로 또 물으셨습니다. "저게 뭐냐?" 결국 아들은 화를 내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까치, 까치라고요! 왜 자꾸 똑같은 걸 물으세요?"


치매 증세로 정신이 가물가물한 아버지를, 아들은 차마 품어주지 못하고 짜증을 부린 것입니다.


며칠 뒤, 아들은 아버지 방을 청소하다가 서랍 속에서 때 묻은 옛날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 아기였을 때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똑같이 열 번을 연거푸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똑같은 대답을 열 번이나 하면서도 참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감사했고, 말을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배우며 자랐을까요? 부모님이 똑같은 단어를 서른 번, 마흔 번씩 반복해 주며 품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꽃이야, 이건 사과야, 저건 까치야..."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품어주었기에 이 자리에 있고, 이제는 우리 역시 자녀들을 품고, 곁에 있는 성도들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품는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겠지만,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통조차도 잘 품어내면 큰 유익이 됩니다.


조개가 몸속에 들어온 거친 모래알을 뱉어내지 못해 아프지만, 그것을 품고 또 품다 보면 결국 영롱한 진주가 되지 않습니까. 운동선수들이 땀 흘리며 그 힘든 훈련의 고통을 내버리지 않고 품으며 도전할 때, 그 고통이 진주처럼 빛을 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저 숲의 큰 나무처럼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품고, 또 나에게 찾아온 삶의 고통과 아픔까지 인내로 품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품어줄 때,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진주처럼 아름다운 일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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