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아귀까지 채우라]
갈릴리 가나의 한 혼인 잔칫집.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그곳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흥을 돋우던 포도주가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잔치의 기쁨이 탄식으로 변하려던 순간, 예수께서는 잔칫집 하인들에게 나지막이 명령하셨다.
"문 앞에 있는 돌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
하인들은 군말 없이 순종했고,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오르자 그 보잘것없던 물이 최고급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본래 이 돌 항아리 여섯 개는 유대인들의 '정결 예식'을 위한 도구였다. 밖에서 돌아온 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닦을 수 있도록 항상 문 앞에 묵묵히 놓여 있던 평범한 생활의 도구였다.
잔칫집의 화려한 주인공도, 귀한 손님도 아니었다. 그러나 돌 항아리들은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던 돌 항아리였지만,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가장 놀라운 기적의 통로가 되었다.
성경에서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등장한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유대 문화에서 '7'이 완전함을 뜻한다면, 하나가 부족한 '6'은 결핍과 모자람, 즉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잔칫집에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다는 것은, 그 풍요로워 보이는 인생의 잔치 뒤편에도 언제나 결핍과 불완전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흔히 '666'을 사탄의 숫자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완전수인 7에 하나 모자란 6이 세 번 반복되는 숫자이기도 하다. 물론 성경이 666을 직접 결핍의 숫자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면, 666은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인간의 모자람과 불완전함이 극대화된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즉, "없다", "부족하다", "왜 나에게는 이것뿐인가"라는 원망과 불평을 삶 속에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끊임없이 반복할 때, 우리의 마음은 사탄이 좋아하는 '666'의 상태, 즉 끝없는 결핍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기에 그렇다. 끊임없는 불평은 결국 우리 존재를 사탄의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감사'가 필요하다.
불평으로 가득 찬 결핍의 삶을 기적으로 바꾸는 열쇠는 다름 아닌 '감사의 순종'이다. 하인들이 돌 항아리의 아귀까지 물을 가득 채웠듯이, 우리의 불완전한 존재 속에도 감사를 찰랑거릴 때까지 채워 넣어야 한다.
손발을 닦던 허드레 물이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했듯, 감사가 우리 존재의 아귀까지 차오를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돌 항아리는 다름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며, 늘 무언가 부족하고 결핍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영성과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기적을 품는 통로가 된다.
우리가 조금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아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저 가나의 돌 항아리 여섯 개처럼, 현실의 자리에서 묵묵히 내게 주어진 빈자리를 채워갈 때,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그 나머지 온전한 부분은 주님께서 친히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결핍을 원망하기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아귀까지 감사를 채워 넣는 것.
그것이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