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2: 7 내 영혼이 피곤할 때 (1)
욘 2: 7 내 영혼이 피곤할 때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
또 그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믿음이요 생명의 줄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영은 신령한 생활을 하지 못하였을 때 피곤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님의 회고적 영감 역사에 의하여 여호와를 생각하게 되어 바른 기도를 드리게 되고, 그 기도가 상달되므로 주의 성전에서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 주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1]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1)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 영혼" [올-람](my soul){은 통}{단}[명] 영, 영원, 고대, 영세, 영원무궁, 규례, 대대, 옛날, 영원토록, 만세, 항상, 오랫동안, 한이 없음이란 단어로, 내 영혼이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 속에서"[알](within me)는 {불}[전] 위, 곁, 대하여, 에게, 인하여, 대로, 외에, 중에, 보다, 같이란 뜻이고,
"피곤할 때"[아-타프] (When-fainted)는 [수] 눌리다, [자] 상하다, 혼미하다, 피곤하다, [타] 돌이키다, 입다 란 뜻으로 내 속에서 피곤할 때란 자기 영혼이 자기 육체의 세력에 싸여서 힘을 쓰지 못하므로 피곤하다는 말이다.
'피곤할 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히트아테프'(*)는 문자적으로 '덮혔을 때', '압도되었을 때'라는 의미로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탈진된 상태를 나타낸다.
* 시 142: 3 -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 시 143: 4 -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이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를 생각했다는 사실은 구원을 얻은 자의 특성이기도 하다.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시 107: 5)라는 갈급한 마음이 넘쳐서 피곤하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요 4: 6)한 말씀은 영혼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였을 때 오는 피곤을 말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마 5: 6)에서 하신 말씀같이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지나쳐서 피곤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요나는 자기의 영혼이 피곤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영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할 때 영혼이 피곤하게 되는 것이며, 자기 속에서는 일하기를 원하는데 그 일을 하지 못하니 힘이 없고, 할 수도 없어서 피곤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피곤하다는 것은 힘이 약해졌다는 말도 되지만, 힘을 써야 할 기회에 쓰지 못했다는 말로서, 자기 속에서 영은 힘을 쓰고 싶은데, 육체의 세력이 그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막기에 영이 피곤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세력에 잡혀서 사는 자에게는 영의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영의 일을 하던 자가 그 일을 하지 못할 때는 피곤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사람의 육신이 과로하게 되면 피곤해 지기도 하나 사람에 따라서 일을 많이 함으로 건강한 사람도 있다. 즉, 자기가 하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피곤하지만, 반대로 기쁘게 일을 하는 사람은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힘은 쓸수록 강해진다.
한편 신앙적으로 신령한 길을 가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길인데, 자기의 본분을 다했는데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때 심령의 피곤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영적 피곤을 느낀다는 말은 신앙생활을 바로 해 본 사람이 느끼는 것이지, 바른 신앙생활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영적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깨닫고 보니 자기에 대해서 할 일이 많고, 니느웨에 가서 외칠 일도 많은데,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영이 피곤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처럼 심령이 의를 이루지 못하여 주리고 목마를 때 영이 피곤하다고 고백한다.
영혼의 피곤을 느끼는 우리도 신앙적인 대화를 통하여 영이 새 힘을 얻어서 우리의 본분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하면 영이 새 힘을 얻어서 영의 피곤이 풀어지게 된다.
(2)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생각하였더니"[자-카르](I remember ed)는 [자] 기억하다, 생각하다, 추억하다, 기념하다, 마음에 두다, 잊지 않다, 진술하다, 선포하다, 말하다, 부르다, 자랑하다 란 뜻으로 이는 약속 이행의 하나님으로 생각하였다는 말로서, 약속 이행에 신실하신 여호와께 소망을 두고 간구한다는 말이다.
또 하나님은 내게 어떤 언약을 주셨으며, 어떤 언약을 이행하고 계시는지 생각하여 보았다는 말이다.
또한 내 심령이 피곤할 때 내게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여 보았다는 말이며, 어려운 입장에 처했을 때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여호와를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힘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여호와의 약속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아 새 힘을 얻어야 한다.
2]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않을 정도로 새 힘을 공급받게 된다.
* 사 40: 31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영혼이 소생된다.
* 시 23: 3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특히 '주의 성전'(*, 헤이칼 카데쉐카)은 4절에서 지상의 성전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하늘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H. L. Ellison), 요나는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으로 한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므로 요나는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를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주신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는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회개하는 기도를 잘 들으신다.
(1)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내 기도"[트필-라](my prayer)는 기도, 기원,(기도하는 사람) 기도 의식이란 뜻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께"[엘](unto thee)는 {전} 에게, 으로, 에, 대하여, 곁에란 뜻이며,
"이르렀사오며"[보](and-came in)는 {자} 오다, 임하다, 이르다, {타} 데려오다, 가져오다 란 뜻으로 기도가 주께 이르렀다는 말이다.
이는 환난 중에서 간구하는 요나의 기도가 여호와께 상달됨으로 주님과 새로운 교통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다는 말은 주님이 들어주셨다는 말로서, 주님께서 기도를 듣고 내게 임하셔서 그 기도에 함께하여 주셨으며, 기도한 그 일에 주님이 함께하여 주심으로 그 일을 성취해 나갔다는 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세상 줄들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잡고있는 세상 줄을 끊어야 믿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기도한다고 하였을 때 기도하러 나가려 하니 직장에 일이 있어서 나갈 수 없다면 이는 직장이란 줄에 묶인 것이며, 집안에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하였으면 가정이란 줄에 묶이어 나가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자기를 묶고 있는 줄들이 많으면 나가지 못해서 기도할 수 없게 되지만 이 줄들을 끊고 나가서 기도하고 그 기도한 일이 성취되도록 계속 노력하면 언제가 그 기도의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기도에 주님이 함께하시므로 주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기도가 주께 이른 것이다.
(2)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주의 성"[코-데쉬](thine holy)은 {남}{단}[명] 신, 거룩함, 성소, 청결함, 신성함, 신전, 지성소란 뜻이며,
"전"[헤-칼](temple)은 {통}{단}[명] 성전, 전, 성소, 신당, 전각, 궁, 왕궁이란 뜻의 두 단어가 합하여 주의 성전에 미쳤다는 말은 요나의 기도가 주의 성전에 미쳤다는 말로서, 이는 기도 하는 중에 주님께 이끌리어 주의 성전까지 갔다는 말이며, 요나의 마음이 주님을 모시고 성전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기도는 신앙생활에 적용되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를 드릴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성전까지 가지 않아도 마음 속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섬기면 성전 생활이 되는 것이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주의 성전에 미쳤다는 것은 심령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요나의 몸은 물고기 뱃속에 있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미쳤나이다"[엘](into)는 [전] 으로, 에, 대하여, 곁에란 뜻으로 주님과의 새로운 교제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우리도 육신이 성전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하나님께 이끌리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나가면 성전 생활을 하는 것이며, 이 성전 생활을 함으로써 주님께 이끌리어 영혼의 피곤이 풀려서 주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넘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이끌린 성전 생활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하는 중에 모든 일들을 풀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3] 절망에서 믿음으로 ( 욘 2: 3-7 ) / 하늘 군대
서 론
0.1. 예 화
클로비스 채펄 목사의 간증 : 교회의 성도 중에 두 사람이 전문의의 진단에 불치병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모두 어려웠다.
그중에 한 젊은 환자는 마음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에 권총을 쏘아서 자살하고 말았다. 다른 한 환자는 젊은 부인이었는데 이 병과 끝까지 싸워서 20년이나 더 살면서 그 교회에 수많은 간증을 남기고서 저 세상으로 갔다.
0.2. 우리도 이런 경우를 당한다.
사실상 솔직한 심정으로 어려움 없이 세상 살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심정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삶 속에서 수없이 당하는 절망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실로 절망과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이때가 중요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가느냐? 하는 길과 또한 절망으로 가서 죽음에 당면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하는 인격적인 결단이다. 믿음으로 가면 우리는 승리와 축복을 맛보게 될 것이며, 또한 절망 속에 그냥 있으면 우리는 흐지부지한 생애가 될 것이다.
0.3. 요나를 보자!
절망할 수 밖에 없다. 바다에 빠지고 고기에게 먹혀서 뱃속에 있으니 이제는 끝장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승리했다.
우리는 자신을 보자! 우리도 절망 속에 있던지 혹은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요나의 본을 따라서 절망에서 믿음으로 가자! 그래서 절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우리는 오히려 승리와 능력과 축복의 길을 가도록 하자!
0.4. 그러면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절망에서 믿음으로 가는 길과 그 방법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I. 첫째대지 : 고통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다.
A. 원 리(v.v.3-4)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1.1. 요나가 바다에 빠졌을 때에 기도하는 모습과 내용을 담고 있다.
"주께서 나를 깊음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또한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고 하였다.
요나는 알았다. 또한 볼 수 있었다. 비록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지만, 나를 바다에 던지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큰 바다와 파도의 물결이 주님께서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1.2. 그래서 그는 말할 수가 있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소망과 믿음으로 자기를 채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나가 파도와 물결만을 보게 되었다면 그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키게골이란 철학자는 말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무엇인가? 바로 절망이다." 사람은 절망할 때에 죽게 된다. 그러면 생명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소망이 아닐까"한다.
1.3.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해서 그 환경만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환경에 있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소망속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B. 적 용
1.4.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절망 중에도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시각은 성경말씀을 올바로 볼 때만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요나는 이 귀절의 말씀을 시편에서 인용하여 암기하면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 42:7-8에서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1.5. 요나는 바다에 떨어져서 고기 뱃속에 있다. 아무것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때에 그는 시편의 말씀이 기억되었다. 시편 기자가 겪은 경험 중에 요나와 비슷한 일을 기억해 냈다.
"주의 물결... 주의 파도..." 내 경우와 같구나! 이럴 때에 시편의 기자는 어떻게 했지? 그렇구나!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은 인자를 베푸시고 밤에도 찬송하게 하시는구나! 그리고 기도했구나! 그렇다. "기도! 바로 기도다! 기도하자!"고 결심하고 기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절망에서 믿음으로 옮겨 간 것이다.
1.6. 우리도 이런 죽을 고비를 당한다. 그러나 이때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려움을 주는 환경만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살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고 한다면, 그리고 그런 형편을 보고서 같은 길을 취한다면 우리는 동일한 열매를 맛보게 될 것이다. 헤르만 리더보스는 "성경은 우리를 학자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신자로 만들려고 하신다"고 말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1.7.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고후 9:8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II. 둘째대지 : 채찍 속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이다.
A. 원 리(v.v.5-6)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2.1. 요나는 바다에 깊이 빠졌다. 그는 여기서 고백하고 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바다 속으로 깊이 내려가서 산이 시작되는 끝 부분까지 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상 요나는 내려가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내려갔다.
2) 태풍 속에서도 배 밑창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채찍질하셨다.
3) 그래서 배에서 바다로 내려갔다.
4) 그리고 본문에서는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게 된 것이다.
2.2. 요나는 내려갔고, 하나님의 채찍이 그에게 임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은 이렇게 요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같이 들린다. "내려 갈래? 좋아! 실컷 내려가 보아라!
아주 내려가려므나! 산의 뿌리,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려므나!" 그래서 바다 속까지 내려가서 여러가지를 겪게 된다. 그는 고백한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얼마나 기막힌 말인가?
2.3. 요나는 자기가 내려갔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을 보며 소망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믿음과 확신 속에서 말한다. 그의 믿음을 살펴보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이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채찍으로 때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이 아직도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B. 적 용
자녀 교육을 보라!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소망을 가진다. 좋은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공부도 시키고, 학원도 보내고, 야단도 치고, 때리고, 눈을 부릅뜨기도 한다. 언제까지 하는가? 고칠 때까지 한다. 부모가 소망을 가진 때까지 한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를 향하여서 가지신 하나님의 뜻에서 발견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지 않는가? 자식된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야단 치실때에도 아직도 나를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계심을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닌가?
내가 잘못했다해도 하나님이 나를 채찍질 하시면 아직도 나를 향하여 소망이 있으시고 고치시려는 뜻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을 알 때에 우리는 믿음을 갖는다. 절망에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III. 셋째대지 : 성전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다.
A. 원 리(v.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3.1. 여기서 요나가 말하는 것은 "주의 성전"은 물론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 일년에 3회 이상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인 언약궤가 있었고, 지성소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시고, 도와주신다고 믿었다.
3.2. 여기서 요나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여기서 피곤이란, 칼빈이라는 신학자는 "낙심"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요나는 여기서도 또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가 가진 신앙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3.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없는 것일수록 더욱 더 드려야 한다. 요나는 낙심할 때에 하나님을 묵상하셨다. 그가 처한 형편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이 낙심되어서 피곤했다. 이럴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고 찬양을 한다.
다니엘은 어려울 때에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이나 비가 오지 않게 했다. 이제는 비가 와야 하므로 제단을 쌓았다. 장작을 쌓고, 제물을 얹어놓고, 주위에 도량을 팠다. 그곳에 무엇을 부었나? 바로 물이다. 4년여의 가뭄뒤에 물이 얼마나 귀한가?
3.4. 돈이 귀한가? 돈을 드리라! 건강이 귀한가? 몸으로 봉사하라! 시간이 없는가? 시간을 드려서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