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베세진
열일곱의 첫사랑은 여름을 닮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아이를 떠올릴 때면 나는 항상 더웠다.
아주 가끔 그 아이의 세상이 차가워 보일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봄으로 너의 겨울을 살게.
너를 생각하면 나는 봄을 얻을 수 있으니.
아니, 사실 여름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니.
/ 하현, 초련
지금 창밖엔 귀뚜라미 울고
아직 여름의 얼룩은 남아
당신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 이준규, 얼룩
너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그늘은 물러나고 들꽃이 피고 햇볕이 번지고 나는 흔들리지
네가 웃는 소리에
왜 갑자기 바람에선 여름 향기가 나?
네가 살짝 미소 지었을 뿐인데 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피어나고 왜 푸르른 너의 입꼬리에서 이렇게 여름은 시작 되느냐고
/ 서덕준, 이렇게 여름은 시작된다
너의 언어
너의 노래
너의 이름을
나는 여름의 한 구절로 외웠던 적도 있었는데,
너는 왜 여름을 좋아해?
이 세상 온통이 여름인 것처럼?
아득한 질문은 나를 오래 살게 합니다.
/ 서윤후, 나나너너
여름의 끝은 언제나 모호했다.
끝날 것 같지만 더위가 여전했고,
더운가 싶으면 밤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퍼졌다.
가을이 오고 필요한 게 많아졌지만,
나는 여름 그대로였다.
/ 백가흠, 사십사
어쩌면 당신과 함께라 더욱 기뻤던 여름 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없었을 한 장의 이야기.
/ 백가희, 환상을 쓰는 일
당신 없는 여름은 갈취일 뿐이고
어떤 변명도 유치할 뿐이라고
자외선이 환청처럼 파고들고
파도가 발을 걸지만
당신을 내다버릴 생각에 골몰했지
맹목과 장롱, 서랍이 비워지고
서류의 칸이 비워져
마침내 우울도 비워지기를
/ 강신애, 재(災)의 여름
밤마다 자신 안의 암흑으로 잠수하려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 자여.
일정량의 어둠을 노역하는 이들이여.
빛나기 위해 깨어지는 것들이 낭자한 방.
감은 눈을 손으로 누르면 밤의 만화경(萬華鏡)이 천천히 돌아간다.
펄럭이던 여름의 창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둠이 회전하는 몸속으로 잠겨들며,
눈을 감고 더 캄캄한 쪽으로 품을 모은다.
호흡과 호흡 사이,
심장이 물드는 방향으로.
/ 이혜미, 창문 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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