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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시

영랑 - 물 보면 흐르고

작성자주정연|작성시간10.01.11|조회수59 목록 댓글 0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永朗 


 


     나와 동갑나기인 큰 매제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오랜동안 서남해 낙도 선생님을 해오는데 가는 데마다 물 좋은 생선을 먹어온 터라 식도락에도 어지간히 도가 트인 사람입니다. 꽃게어장에 있을 적에는 싱싱한 꽃게를 넉넉히 가져와 장인 장모님께 효도를 하기도하고 자연산 청둥오리를 잡아와 생피 한 대접을 내어 나를 마시게 한 적도 있었는데 그가 생선을 먹을 때에는 특이한 버릇이 있습니다.

     첫 젓가락이 생선의 배래기 즉 배 부분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생선의 기름진 자양분이 거기 다 모여 있다는 겁니다. 살을 취하는 게 보통사람들의 취향인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남이 싫어하는 그 배래기만을 먼저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둥실 나왔는지도 모릅니다만,

     남도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영람 김윤식 선생의 시를 나는 고향의 흙내음인듯 좋아했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도 좋고 오메 단풍 들겄네- 도 절창입니다. 그런데 위의 싯귀를 발견한 이후부터는 나의 식성이 자꾸 그쪽으로 쏠려가는 것이어서- 물 보면 흐르고 별 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느뇨,흰 날에 가슴만 여위어 간다- 는 구절 중에서도 그 배래기만을 취해 서예에 깊은 내 둘째 매제에게 써주기를 부탁했습니다.
물 흐르듯이 내려써준 두줄시를 표구하여 두고두고 글의 내용이며 운필의 묘를 지금껏 완상해 오는 중입니다.


     흐르는 물을 보면 흐르는 그것이 마음이요 또렷한 별을 보면 또렷해지는 것이 마음입니다. 불어가는 바람따라 불어가는 것이 마음이요 가는 계절 속에 함께 가는 것이 우리네 마음입니다. 악에 물들면 더러워지고 혼돈에 싸이면 어지러워지는 이 내 마음...

영랑 선생은 당신 마음을 노래했지만 그 마음은 내 마음이요 우리네 마음입니다. 깊은 땅 속 지하수가 이어달아 흐르듯이 우리네 마음 이어달아 詩心이 흐릅니다. 동서고금을 이어달아 그 마음 흐릅니다. 저 들녘에 흐르는 강물처럼, 저 하늘에 영롱한 은하수처럼 ..... 주정연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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