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라는 증거
당시의 재판관들은 악마의 부하가 되었다는 최대의 증거는 악마의 집회(사바스)에 참가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마녀 재판의 최대 목표는 사바스에 참가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종교재판이 열리던 시절에는 누가 보아도 확실한 흔적을 사탄이 새로운 추종자들에게 남겨놓았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없이 마술부리는 여자들을 고발 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날카로운 정의감을 지닌 사법관들은 때때로 다른증거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1. 밀고
15세기에는 혼자 외딴곳에서 산다거나 혹은 어떤동물을 특히 좋아한다는 것은 곧 그가 마법사이며 악마와 밀접한관련을 맺고 있다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2. 불완전한 묵주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떤 마녀의 묵주에서 알아하나이상 빠져있다면 그녀는 마녀일 가능성이 높다.
더더구나 묵주에 십자가가 달려있지 않다면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3. 사도신경을 잘 모를 때
고발당한 여자들에게 사도신경을 암송해보라고 요구했는데 잘 모를경우 (특히 몇몇단어들을 발음하지 못하고 우물거릴때)에는 의심을 갖고 보았다.
4. 울지 않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특징은 매우 확실한 증거로 간주되었다.
왜냐 하면<여자들이란 원래 시도때도없이 눈물을 쏟고 한숨을 내쉬는 인간들이 며>(보뎅), <눈물이라는 것은 속죄자들이 그들의 죄를 씻어내고 영횬을 깨 끗이하는데 주로 쓰였기 때문>(보귀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마법사가 눈물을 셋방울만, 딱 셋방울만 그것도 오른쪽 눈에서만 흘렸다는 점이다.
5. 고문을 당했는데도 입을 꼭 다물고 있을 때
이같은 침묵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비밀을 누설하도록 사탄이 걸어놓은 묵비의 주문에 의한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되었다.
그들의 혀는 마비되고, 성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례를 받지않은 어린아이의 간을 가루로 만든다음 기장을 섞어서 만든 흑빵을 먹어도 이처럼 입이 굳게 닫혀버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빵은 마녀집회에서 사용되었다.
6. 보기보다 몸무게가 덜 나갈 때
마녀들은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기때문에 그들의 몸무게보다 너무 많이 나가지 않도록 마왕이 미리 손을 써놓았다.
그렇기때문에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은 신명심판(神明新版)이라던가 수장(水葬)심판같은 확인단계를 거쳐야만했다.
1)신명심판(神明新版)
이것은 중세전기에 널리 유행하던 시험이었다.
먼저 사흘간 금식을 하고 그다음에는 마녀라고 추정되는여자의 유죄여부를 알려달라고 신에게 요청한다.
그런다음에 고발당한 여자의 손에 새빨갚게 달구어진 쇠를 쥐어주고 쇠와 손을 함께 천으로 둘러싼다.
사흘뒤에 붕대를 풀었을 때 화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면 그녀는 무죄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아예 그 여자를 통째로 불태워 버렸다.
물이 펄펄 끓는 작은 솥안에 고발된 여자의 팔을 집어넣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2) 수장심판
마녀는 몸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곤발을 끈으로 묶어서 강물속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곧장 물속으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만약 물속으로 곧장 가라앉을 경우 원칙적으로는 다시 건저주게 되어있었다.
원칙적으로는.....
17세기 네델란드의 우드워터라는 작은 도시는 유럽 각국에서 궁지에 몰리다 찾아온 마법사나 마녀들에게 그들의 몸무게게 타고난 체격과 일치 한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하지만 결국 따져보면 마녀라는 혐의를 받은 여성이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는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였다.
영국의 종교재판관들은 고발당한 여성의 눈이 지나치게 크고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든지, 아니면 그냥 손으로 시체를 만지기만 했는대 피가 흐를경우에는 마녀로 간주하였다.
본격적으로 사냥이 시작되기 이전의 마녀들은 사람들이 덮친 온갖 불행의 희생양들이었다.
늙은 여자, 못생긴 여자, .... 그리고 지나치게 예쁜 여자등 평판 나쁜 모든 여자들은 가장먼저 희생되었다.
그러나 종교재판으로 실제로 마녀사냥을 한 기간은 1484년에서 1520년까지 겨우 40여년정도에 불과하였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사법부가 바톤을이어받았던 것이다.
교회로서는 책임질 일이 없어진 이 탄압의 물결은 훨씬더 무자비하였다.
17세기 말까지 200여년간 이 상에 걸쳐서 공공장소에 설치된 수많은 화형대에 불이 붙었다.
주민들은 마술사라는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밀고하기도 하였고 린치를 가함으로써 직접 사람들의 손으로 판결을 내리기도 하는등 이 인간살육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많은여자들이 끌려가서 채찍질을 당한 다음 투석형이나 익사형을 당해 죽었다.
이때는 높은 지적수준을 갖춘 속인 재판관들이 악마학 개론서를 써서 큰 성공을 거든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해일이 밀어닥치듯 어느날 갑자기 시작되어서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이 마녀사냥초기부터 그들이 마술을 부린다고 믿은건 아니었다.
<마녀들이 회개할수있다고 믿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마녀 재판관들은 생각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파기가 불가능한 계약을 사탄과 맺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녀의 몸에 찍어놓은 낙인은 그녀가 회개하건 안하건 간에 다시는 지울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관대한 재판관들은 회개의 의지를 보이는 마녀들에게는 화형당하기 전에 교수형 당하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럼 최초의 마녀 혐의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그것은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람을 계략에 빠뜨리거나, 재해나 갑작스런 병이 들 때 일종의 액땜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결국 평소 미움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던 사람이 고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재난을 예방하는 조치로서 마녀 사냥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은 유럽에서만 30만~900만 명 정도였다.
주술이나 마술을 사용하는 '마법'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매우 오래되었으며, 어느 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녀 사냥은 16~17세기 서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국가들과 프랑스, 미국 일부에서만 나타났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성 존중과 합리주위를 부르짖은 르네상스, 양심의 자유를 강조한 종교 개혁의 시대에 학살과 미신으로 얼룩진 마녀 사냥의 회오리가 거세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러한 바람을 일으킨 것은 교황, 고위 성직자, 국왕, 귀족, 당대의 제일가는 학자, 재판관 등 '초일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조직적으로 마녀 사냥이 행해졌던 곳은 바로 기독교 국가였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행할 때일수록 기쁨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비약이라고 몰아부쳐 마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만일 비약이 발견되지 않으면 나체로 고문대에 쇠줄로 묶어놓고선 바늘 같은 것으로 몸을 사정없이 찌른다.
그것도 유방이나 허벅지 외에 눈꺼풀이나 혓바닥, 성기 속까지 찔러댔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마녀는 아니라고 했으나 대개는 살아있을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므로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마녀라고 판정을 내린다. -_-;;
그래도 고백을 하지 않으면 물고문을 당했다.
손발을 고정시키고 9리터나 되는 물을 마시게 하였다.
그것에도 견뎌내면 이번에는 발바닥이나 겨드랑이 밑, 성기에까지 기름이나 유황을 발라 불을 붙여 태웠다.
차례차례로 고문이 되풀이되면 여자들은 마침내 견디지를 못하고 완전히 신체감각을 잃게 마련, 말하는 대로 자백을 토하게 된다.
이같은 미신적 식별법에 따라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판정되어 화형을 당했다.
나체 위에다 유황을 바르고 불을 붙이는 것이 악마의 오?m을 정화시키고 그 힘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다는 구실로 이같은 잔혹 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는 크리스트 교가 정신계를 지배하고 모든 사상은 교회의 통제하에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옛날로부터의 미신이 휭행하여 농촌의 민중들은 주술이나 괴상한 기도에도 의지하고 있었다.
특히 약초의 지식을 갖고서 병을 고치는 사람이나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은 외경의 대상이었다.
본격적인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은 1486년 악명높은 (마녀의 망치)란 책이 출판된 뒤부터였다.
로마법왕 인노켄티우스8세가 교서를 냈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정당화되고 이 책은 악마사냥의 기본 메뉴얼로 계속 이용되었다.
당초 마녀로서 재판에 회부된 것은 약초를 사용하거나 주술을 행하는 여자들이었으나 얼마 후엔 농촌의 여늬 여자들에게까지 퍼져갔다.
교회의 밀정들이 마녀를 들춰내곤 죄를 주기 위하여 이마을 저 마을로 찾아나섰기 때문이다.
밀정들은 어떠한 여자에 대해서도 `수상하다`고 낙인만 찍게 되면, 어떠한 말이건 몸짓이건 그녀가 마녀와 어울리고 있다든가, 이전에 어울린 적이 있었다든가 하는 증거로 삼을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어떠한 여자에 대하여도 마녀가 될 수 있는 위험이 따랐던 것이다.
이유는 무엇이건 좋았다.
성행위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것뿐으로 쾌락을 위해서 행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성적으로 부도덕 하다든가 성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미약을 만들었다든가, 혹은 성교때 쾌감을 높이기 위하여 조금 변형된 체위를 가졌다든가 하는 것만으로도 악마의 소행으로 치부되었다.
또 고문을 할 때에는 사바토(교회의 휴식일)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심문사항으로 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바토는 공상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었으나 고문과정에서 이단심문관의 추구에 따라 그 상황이 과대하게 묘사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성적으로 억압돼 있던 승려들이 성에 대하여 비정상적으로 굴절된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권력을 믿고서 공공연하게 새디증에 빠져든 것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역설하지 않는가? 저 `노틀담의 꼽추~ 같은 문학작품도 그런 시대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세레나가 알고 있는 한가지 진실은...성적 정치적으로 문란한 때야말로 도덕적 규범이나 법이강해진다는 것이다. 온갖 범칙금이며 세금, 벌금의 횡포가 심해지면 역시 어딘가에 구린내가 나고 있다는 말씀....
출처:가을우주(다음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