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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땅 --- 더큰 문제는 ?

작성자삶의 길목|작성시간05.03.20|조회수150 목록 댓글 0
 

독도는 우리땅 ----더큰문제는?


1.북간도에는 우리민족이 약 200만이 살고 있다.


내가 어린시절 (1950년대말 초등학교 2-3학년) 우리마을에서 얼마 멀지않은 마을에서 한가족이 북간도로 이주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주한 가족의 가족사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해방전후의 세대들은 북간도를 우리땅으로 생각한듯합니다. 이들 세대는 단지 북간도로 이주했다고 생각했지 국경을 넘은 월경행위라고 생가은 하지 않은 듯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되어서.......

북간도는 만주(간도출신?) 출신의 누루하치가 청조를 건설 하면서 공백이 된 간도지방을 봉금 지역으로 선포하였다고 합니다. 누루하치는 자기의 고향인 장백산(백두산)줄기 간도지역을 매우 신성시하고,  신성한 조상의 땅에 누구도 살지 못하도록 봉금지역으로 선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멀리는 고구려시대, 고려조 윤관의 여진족정벌, 조선조의 태종 등으로 이어지면서 북간도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우리국민은 청조의 봉금지역의 선포와 관계없이 마음대로 이주할 수 있는 무주공산 또는 우리나라땅(?)이라고 생각한듯합니다.


봉금지역으로 공백이 된 땅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거 이동하여 간도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숙종조(1700년대)때는 조청영토 분쟁이 있었지요.

우리선조들은 압록강 일대의 남간도 보다는 기름진 땅인 북간도에 많이 이주한듯합니다.


이때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젔다고 합니다.

정계비내용은 토문강을 경계로하여 토문강 서쪽은 중국, 동쪽은 조성땅으로 음각된 비석이 백두산 정계비이지요.


토문강은 만주 현지어로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백주산에서 발원한 강줄기는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이있고, 중국측은 토문강을 두망강이라고 주장합니다.


1900년대초 일제강점기시대.....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만주철도 부설권을 따내면서 간도를 청조로 넘기는 기밀조약(간도밀약)을 맺게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에서는 북간도의 연고권을 주장 할수 없게 되었읍니다.


얼마전 우리 정부에서는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정리한바 있읍니다. 국내용인듯합니다. 가감하게 국제사회에 선언하지는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해도 어느정도 수긍은 갑니다.


만약 간도 밀약을 우리정부가 무효라고 선언하면 간도지역은 영토분쟁지역으로 될 수 있겠지요.


중국은 이런연유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결론

1.일본이 만주철도 부설권을 따내면서 간도가 원래부터 완전한 중국땅이라면 중국과 밀약을 할 필요가 없다. 만약 필요했다면 공개적인 조약을 체결 했을 것이다.


2.밀약 체결 당시 중국인의 보편적인 생각은 간도지역은 적어도 조청간의 분쟁지역으로 인식 하고 있었다고 추정 할 수 있다.


3.간도밀약을 뒤집어보면 적어도 간도는 우리가 연고권을 주장 할수 있다.


4.토문강의 해석에 따라서 북간도는 우리나라 또는 중국으로 귀속 될수 있다. 그르나 이 부분은 간도밀약을 뒤집어 생각하면 토문강 = 송화강이러고 말 할수 있다. 


2.독도 문제.


1985년경(약 20년전) 어느 정부 인사로부터 울릉도  대륙붕 밑에는 프로즌 하이드로제네이트가 무진장 매장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렀다.


우리나라는 지질학적으로 석유가 없으나 우주생성기에 수소개스가 얼음형태로 울릉도 대륙붕밑에 매장 되어 있다고 했다.


원래 수소는 너무가벼워서 지구생성과 함게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극히 희박하게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희박한 수소깨스가 독도근해에 매장되어 있다합니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은 간파하고 반세기 이상을 연구하여 결론을 내리고 집요하게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우선은 일본해라고 해야 독도의 연고권을 주장 할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정부는 무었을 했을까?

이승만시대 - 이승만라인을 설정하고 라인을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무조건 나포 하였다.

박정희시대 - 한일국교 정상화의 걸림돌이 되면 폭파 해버리겠다.

전두환시대 - 독도에 관해서 말도 못하게 하였다.(독도는 우리땅이 금지곡)

김영삼시대 - 일본놈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

김대중시대 - 어업협정 때문에 말도 끄내지 못하게 하였다.

노무현시대 - 이제야 독도의 중요성을 깨닳은듯. 프로즌 하이드레이트 운운....


일본에 비교하면 100년은 뒤진듯....



3.관개토대왕비

  한국 - 광개토대왕비

  일본 - 호태왕비

  중국 - 대왕비(?) 아리까리함.

적어도 광개토대왕은 한중일 삼국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출중한 인물임을 알수 있다.


일본인이 한때는 광개토대왕비를 폭파 또는 일본으로 수송을 검토 한바가 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의 근거가 흔들리고, 현실적으로 북간도에 실존하고 있으므로 간도밀약의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야사이므로 믿을바는 못된다.


일본서기(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사기와 같은 유명한사서임)에는 신라와 백제 사이 남쪽에 일본부가 설치되어 조선을 통치하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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