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호설, 성악설, 성선설 중 무엇을 지지하는가?
-나는 성기호설을 지지한다. 성기호설은 영지의 기호와 형구의 기호로 나뉘며 이 둘은 선을 실천한 뒤에 따라오는 본성이다. 여기서 영지의 기호는 선을 기뻐하고 악을 꺼리는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기질, 유전을 제외하면 선을 좋아하고 악을 꺼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성선설의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다는 뜻인데, 이건 성선설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 성기호설은 악으로 가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성선설은 오직 선함을 추구하는, 악으로 가지 않는 투지를 나타내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기호설이 성선설과의 다른점이자, 성기호설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맹점이다.
또한 성기호설은 선한 인간의 '인간성'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이 선하지만 그 선함 속에 형구의 기호도 올라와 선한 인간이 그것을 채택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할 수 있음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을 인간성이라고 표명하기로 했다. 인간은 다들 선하게 살도록 교육받고 선한 본성을 확충하자는 이념 아래에 도덕 교육 등을 하였지만, 인간만의 고유의 감각적 쾌락을 느끼려는 형구의 기호가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감각 쾌락을 인정한 정약용의 성기호설이 인간적인 본성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삶을 살면서 악한 길로도 빠지고 싶어하지만 자꾸만 선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 도덕적인 세상을 개개는 만들고 산다. 만약 소위말하는 악의 본성을 지녔다면, 혹은 악을 선호하는 본성을 지녔다면 우리는 개인을 도와주거나, 노약자를 배려하는 행위와 같이 선함이 조금은 뭍어나오는 행위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악설 비판) 그러나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양심이 발동이 된다. 설령 그 선한 본성이 성악설이 주장하는 칠정, 오욕과 같은 짗은 먼지에 덥혀 악한 행위를 하더라도 속마음은 '이러면 안 되는데.'하며 노심초사 하다 도덕적 행동을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성을 보인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행위는 형구의 기호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선설은 결국 전국시대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선한 마음을 확충하자는 의도 및 시도에서 나온 설이다. 그러나 인간이 오직 선하기만 하다면 본성적으로 악한 행동을 하는 행동패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이 시기에 나온 성선설의 이론은 결국 역설적으로 인간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그 폐단을 타개하려고 나온 이론 아닌가? 성선설은 여기까지만 반론하고 싶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선해도 그것을 해석하고 보기에 따라 달린 것이기도 하며, 선은 악을 낳기도 한다는 점에서 성선설의 주장은 조금 힘이 없다. 성선설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 정치적 폐단 등을 보면 그러하다.
따라서 나는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모습과 감각 쾌락을 좋아하는 인간의 다면적 모습을 볼 줄 아는 정약용의 성기호설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