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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학과 기철학

14주차-유가철학에서 이로움과 의로움의 문제

작성자한건희(조대19)|작성시간26.06.17|조회수16 목록 댓글 0

2. 주희는 인간의 욕망과 사적인 이익 추구를 ‘인욕(人欲)’으로 보고, 이를 절제하고 극복해야 사회의 질서와 공공의 의로움이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왕부지는 인간의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욕망은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억압이 아니라 올바른 조율이라고 보았다. 과소비, 환경 위기, 물질만능주의, 과도한 경쟁,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주희의 입장이 더 타당한가, 아니면 욕망을 인정하되 사회적으로 조율해야 한다는 왕부지의 입장이 더 타당한가?

 

인욕은 사적인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합니다. 사적인 이익추구가 과연 나쁜가? 라는 질문은 . 사실 대개 이러한 질문 자체가 상황의 제약에 따라서 나뉘게 됩니다. 사적인 이익이 곧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고 개인이 외친다면 그것은 정말 사적인 이익일까요? 또한 자신이 잘될 때 주위의 친근한 사람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리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오롯이 사적인 개인"만을 위한 인욕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깁니다. 본질은 "타인에게 해를 가하면서 까지 그렇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고의이냐, 사고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사적인 인욕 추구 자체는 따라서 만일 해를 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 행위한다면 질서와 공공의 의로움을 해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여 주희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좋겠지요. 게임이론이라는 행동과학분야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죄수A와 죄수B가 존재하며 이 둘이 서로를 믿고 침묵할 시에는 6개월, A나 B가 상대를 믿지 않고 자백할 때 침묵한 반대편은 10년형을 받습니다. 그리고 둘 다 자백할 때 둘다 5년형을 받는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이 둘이 서로 믿지 않을 때 즉, 협력하지 않으면 문제는 발생합니다. 사실 협력을 통해서 둘 다 6개월의 형량만을 마치고 나온다면 그것은 참으로 괜찮은 그들만의 "공공선"을 의로움을 실현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사익을 추구하고 감옥을 안가겠다며 자백을 하면 반대편이 큰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 선택이랍시고 계산적으로 인욕을 추구할 때 사회는 훨씬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모두가 결국 인욕을 추구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에 놓이는 딜레마입니다.

 

따라서 공동체가 협력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믿으면 공공선, 즉 의로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지요. 물론 제가 주희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하면 이것은 관념론이기에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증명이 안되니까요. 따라서 주희의 입장을 사람들이 믿게 끔 만들어서 의로움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사회 공공선 실현에 더 부합할 것입니다. 또한 고위직들은 왕부지의 입장을 수긍하여 개인들이 가진 인욕의 위험성을 직시는 하되, 자신들 역시 경계하며, 사회문제의 원인등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논점이 되겠습니다.

 

결국 믿음과 따뜻함, 정의, 공정, 사랑, 공공선, 그것을 실현한 개인들의 승승장구와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신뢰를 보내고 범죄자는 마땅한 대가를 치르고 , 봉사하거나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끊임없이 칭송될 때. 사회는 그러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휩쓸리며 대중들은 동요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강한 것은 감정의 힘으로 인욕보다는 의로움을 실현한 사람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고 그에 따라서 선한 사람들이 보상받는 사회를 만든다면 자연스레 모두가 따라가게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모두"는 아니고 대부분 또는 과반수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 믿음이 없을 때 사람들은 타인에게 의로움을 행하는 것이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는 위험을 짊어져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욕을 추구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신은 희생되더라도 타인을 위해서 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은 위인으로 칭송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 승자로 서있는 것이 인욕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사리사욕을 위해서 손에 피까지 묻혀가며 착취해온 자들이 권력을 쥐고 부를 쥐고, 또 대대손손 번영한다면, 그러한 세계에서 의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모두 인식하고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의로움과 이로움을 추구하고 배신에는 배신, 협력에는 협력으로 "티포텟"전략을 사용할 때 비로소 시중의 이로움과 의로움이 공존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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