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주제: 공부의 방식에 대해 주희와 왕부지는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주희는 조용히 앉아 책 속의 진리를 탐구하는 정적인 공부를 중시했다. 그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성현의 뜻을 밝히고, 본래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학문의 궁극적 목표라고 보았다. 반면 왕부지는 세상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익히는 동적인 공부를 강조했다. 그는 배움과 익힘을 분리하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매일 새롭게 본성을 형 성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의 학습에서 더 중요한 것은 주희처럼 책상 앞에서 깊이 탐구하는 정적인 공부 일까요, 아니면 왕부지처럼 세상 속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동적인 공부일까요?
학문이나 공부같은 무언가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을 것을 갖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문을 하는 이유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기존의 무언가를 유지 혹은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 생애에 할 수 있는 경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경험의 한계를 없애고 시대를 뛰어넘기 위해 학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문을 통한 공부가 아닌 현실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 배우는 공부는 앞서 말한 한계에 맞닿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동적인 공부만으로 오늘날의 방대한 학습의 내용들을 공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정적인 공부를 통하여 먼저 탐구한 이후에야 학습을 통한 내용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