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견고한 기초는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이 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여깁니다. 몸이 죽은 게 아니라 몸의 행실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이 해방의 체험은 세 가지 중요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해방의 시작으로서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과정 가운데서 실제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주님의 재림 시 부활을 통해 우리 육신의 몸으로부터 궁극적으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영혼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것은 영적인 자유로, 이것 없이는 주님을 섬기거나 또 예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실제적인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영적 자유와 삶에서의 능력은 해방의 체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이것은 우리 영혼이 거듭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로마서 7장에 나타난 사람의 경우는 아직 해방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자연인, 육신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입니다.
로마서 7장은 육신적인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거듭난 일이 없는 자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령한 사람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연인에 대해 말하면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라고 선언했습니다. 3장에서는 영적이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들도 분명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영적인 수준이 낮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령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광대함을 알 뿐 아니라 육신의 혐오스러운 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과 또 자신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기에 부적합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은혜를 통해서 균형을 잘 잡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범죄한 사람을 책망하지만 그 영혼을 은혜로 회복시킵니다. 영적인 사람은 드물고 다만 육신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을 소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령을 좇아 행하거나 또는 성령의 생각으로 살지는 않습니다. 성령님의 내주 자체가 신자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내 안에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경험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과 거듭난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사로잡힌 삶을 사는 것은 별개입니다.
-'해방의 체험'(윌리암 켈리) 중에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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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외치는소리 나단 작성시간 14.12.01 자연인? 궁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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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금인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1 구원받지 않은 사람 그냥 아담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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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외치는소리 나단 작성시간 14.12.01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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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금인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1 그리스도인은 두부류로 구분합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이 성숙한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는 구분됩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자연인, 또는 성경에 육에 속한 자라고 나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