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자유, 누가 어떻게 얻는가? (조지 커팅)
세 부류의 신자
자유와 해방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지 못한 부류
말씀의 비침을 받아 지적으로만 아는 부류
영적 자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부류 : 이러한 신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어떤 분은 오랜 세월을 혼란 가운데 지내왔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세가지 중대한 사실을 조만간 발견하게 됩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불순종했다는 사실
2) 악을 행했을 뿐 아니라 진정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
3)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하는 참된 열망은 있지만,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며, 최선을 의도한 때조차 자주 최악을 행한다는 사실
첫 번째 어려움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해결됩니다. 즉 복되신 하나님의 아드님이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롬4:25)다는 것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벧전2:24) 그리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5,26)라는 성경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사53:5)습니다. 또한 “그 아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일1:7)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귀한 피가 우리 죄에 대한 정당한 평안을 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족하시고, 신자는 죄 없는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경험적 내적 투쟁
로마서 7장 후반부에는 해방을 경험하지 못한 신자들이 겪는 내적 투쟁과 어려움이 심각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겪던 사람이 해방을 맛봄으로 하나님 은혜의 완전한 자유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 있는 사람은 두 방향을 주시하기 마련입니다.
한 방향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를 바라보는 것으로 율법이 그 기능을 합니다.
또 다른 방향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성찰과 율법의 역사로 말미암아 심각하고 비참한 심연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듭니다.
기대하면 낙심하게 됩니다.
절망 1. 우리가 타락한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거듭남이 우리 심령에 일으키는 역사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믿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본성(혹은 성품)은 우리 속의 옛 본성과는 다릅니다. 거듭난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과 인간 본성과 니신의 성품, 둘 다 거듭난 사람 속에 있지만 둘은 서로 다릅니다.
옛 성품은 조금도 개선되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혹시라도 거듭난 후에 육신이 개선된다거나 육신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면, 그로 말미암은 영적 비참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거듭남은 육신을 개선하거나, 그 존재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속에서 변화되지 않는 육신을 발견할 때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이처럼 회심은 육신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즉 내재하는 악을 미워하는 새롭게 거듭난 생명으로 연결된 “내”가 있어 여전히 존속하는 악의 역사를 한탄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는 악한 본성, 즉 내주하는 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거절하고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사람에게선 모든 희망이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나무를 찾아내셨습니다. 곧 참으로 아름다우시며 영원한 열매를 맺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육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쳐 놓으시고, 이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전적으로 새로운 질서, 곧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셨습니다.
절망 2. 무엇이 선인지 알지만 그것을 행할 능력은 없기에 낙심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에 대해선 철저한 파산자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원하신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후에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연약을 깨닫게 하시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능력을 발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한편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말했습니다.
즉 참된 능력은 우리 마음을 옥죄는 여러 번 낙심을 통해 내게는 아무런 능력 없음을 발견하고, 유일한 능력의 근원이신 주님을 바라볼 때에만 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5) 우리 영혼의 해방은 승리를 향한 투쟁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옵니다.
자신이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이제 더는 하나님 앞에서 육신에 있지 않음을 믿을 때 오게 됩니다. 신자는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신자를 승리 가운데 둡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와 해방에 이르렀습니다. 매일 삶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전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함을 배웁니다. 이러한 행복한 의뢰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곧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충만을 발견합니다.
옛 습관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유, 어떻게 얻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렇다면 자유를 어떻게 얻을까요?
하나님께 배우라.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라.
하나님께 드리라(롬6:11,16)
1. 하나님께 배우라(알라)
악한 것의 심판, 육신은 이미 정죄 받았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롬8:3)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을 때, 죄에 대한 완전한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나는 죄에 대한 심판에서는 나의 생명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므로 내 생명은 심판을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 엄청난 사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때, 로마서 6장 6절 말씀은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담당하신 모든 일이 우리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배우는 사실이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2. 하나님처럼 생각하라(여기라)
로마서 6장 6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옛 사람”이 단순히 죄에서 벗어났다던가, 또는 죄사함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물론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지만),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임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따라서 내가 할 일이란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하나님 앞에는 그리스도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은 없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향해 살든지(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아니면 심판 아래 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누구라도 정죄를 벗어나려면 자아 중심의 삶을 끝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믿음으로 하나님처럼 생각하는(여기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주님과 하나로 여기시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자로 보십니다. 바로 여기서 로마서 6장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으며, 이 둘은 함께 가야 합니다.
1)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
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
우리의 죄만 십자가에서 처리된 게 아니라, 육신 가운데 있는 우리의 신분 역시 해결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며 자유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롬6:11)입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빚을 다 갚았을 뿐 아니라 아들을 동업자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아들과 연합해 산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죄함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가 됩니다.
3. 하나님께 헌신하라(드리라)
우리의 옛 주인은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지만 우리를 해방할 분이 순전한 은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6:18) 이는 죄 자체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죄의 통치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애굽 소년이 옛 주인이 자유로워진 것과 같습니다. 나는 죽음을 통해 자유를 얻습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이제 우리는 자유를 얻으려고 우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드리라!”라는 권면은 이미 우리가 자유를 얻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드릴 때에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고 또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됩니다.(롬6:22)
죽음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이 복된 상황은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지, 율법을 지킨 우리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의 생명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때, 나의 전적인 무기력함 대신 그분이 큰 승리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지속적인 헌신은 거룩한 산제사가 됩니다.
해방의 축복을 얻고자 우리 자신을 드리라는 말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서 이 축복이 이미 우리 것이 되었기에 드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12:2)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실제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우리 영혼이 이 일에 힘쓸수록 우리 육체 또한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과 같이 변화하는 그 날을 기쁨으로 더욱 바라보게 됩니다. 그날에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나 자신이 이제는 새로운 본성과 온전히 연결되었다고 여기며, 이제는 “예전의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생명으로 사시며, 성령께서 그리스도로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시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또한 나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을 때에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는 내가 행한 일의 심판자가 아니시며, 나를 그리스도의 자리에 두시어 아들로 대우하시고,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다함 없는 은혜! 주님께서 왜 나를 축복하시는지 도무지 알 순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쏟아 부으시는 모든 축복을 생각할 때, 자유를 경험합니다.
복되신 구원자이신 주 예수님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드님이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는 날까지 사랑에 강권되어 섬길 때, 우리는 자유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