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편//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작성자앙겔로스|작성시간15.02.14|조회수243 목록 댓글 0

 

 

시편 91편 집회자료 06/08/27

 

 

시91:1-16-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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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편도 시편 90과 같은 맥락의 기도(祈禱)의 시가(詩歌)로서 주 안에 거하는 자가 드리는 기도와 찬송입니다.

 

사람이 자신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지존자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인 하나님의 품에 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참다운 행복인지를 노래한 시인은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거처인 지존자-전능자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를 내 영혼의 피난처로 삼아 그 안에 거하는 것이 곧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救援)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보는 것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계시해주는 사람에게만 보여 지는 하늘의 계시요 완전한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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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지존자(히//엘레온) - 직역하면 가장 높은, 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 즉 그 성품과 인격에 있어서 가장 고결하고 온전하시며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 은밀한 곳(히//세테르)의 문자적인 뜻은 비밀 장소, 로서 누구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곳인 성전의 지성소를 암시하는 말인데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마음을 의미하며 그 영으로 거듭난 자신의 영과 변화 된 생각 감정 의지의 새 마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니 주와 연합 된 영과 마음이 곧 지존자의 은밀한 곳입니다.

 

신약의 표현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주 안에 거하는 자, 영에 있는 자 라는 표현으로서 넓게 적용할 때는 주의 몸에 붙은 자이며 실제적으로는 지존자-전능자-완전한 피난처이신 주님을 머리로 삼고 붙드는 주님의 몸 안에 있는 자요 주의 몸에 붙은 각 지체들입니다.

 

거하는(히//야솨브)를 왕좌에 앉은 뜻으로 볼 수도 있으며 본문에서는 구속받은 영혼의 완전하고도 안전한 보호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에 거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개로 덮는 어미 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표현인데 지성소의 속죄소를 덮는 그룹의 날개를 염두에 둔 표현이며 구약성경에서는 독수리의 두 날개라고도 하였고 주님은 자신의 품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암탉의 두 날개로도 표현하였습니다.

 

거하리로다(히//이틀로난)는 영원히 머무는 상태의 의미도 있고 일반적인 의미로는 밤을 지새우다, 라는 뜻이니 성경이 정작 말하려는 낮의 무더위나 밤의 두려움들은 인생사의 혹독한 고난으로 나타나는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해서 지치고 피곤한 영혼의 머리를 기대고 쉼을 얻을 수 있는 피난처-안식처에 안주하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이 구절은 시인의 확고한 믿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시인이 신앙하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소개할 때 저는 나의 피난처-위기 때 도망할 수 있는 안전한 보호처, 나의 요새-대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시는 완전한 진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내 자신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맡기고 부탁드릴 수 있는 창조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

 

사냥군의 올무 - 이런 표현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단에게 쓰이는 악한 인간이 계획한 음모, 위협 따위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서(시124:7, 시141:9, 잠6:5, 호 9:8 등등) 여러 가지의 방법들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려고 술수를 부리는 경우들입니다.

 

극한 염병(히//데베르 후오트) - 치명적인 염병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파괴적인 말을 특히 염두에 둔 표현으로서 예수님을 중상, 모략, 음모, 거짓 고소함으로 결국의 죽음에까지 내몰리는 곤욕을 당하게 한 것과 연관됩니다.

 

시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여호와의 깃-날개는 그분이 보내신 종들이며 그 종들의 나팔소리와 가르침을 따른 인도를 받는 것 등은 주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에 대한 실제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하실 때 우리가 전파하는 구원의 말씀, 우리가 증거한 믿음의 말씀 등으로 표현하였습니다(롬10:8, 벧전1:23-25).

 

성경은 하나님을 그 어린 새끼를 보호하며 인도하고 양육하는 독수리에 비유하기도 하며(출19:4, 신32:11)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과 성령의 일하심을 그룹이나 스랍의 날개의 움직임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런 비유들은 주의 증인들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그의 진실함(히//아미토)은 그분의 말씀으로 죄인들과 맺은 언약에 대한 그분 자신의 신실함-미쁘심을 의미합니다.

 

손 방패(히//소헤라)는 담으로 둘러쌈을 의미하는 시리아어 사하르타, 에서 유래한 말로서 탈굼역(Targum) 등에 의하여 둥근 방패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구속하신 성도들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패로 지키듯이 보호하시되 두루 두루 보호하려고 행하시는 여러 행사들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입니다.

 

시91:5-6-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밤에 놀램(히//파하드 라옐라) - 밤에 의한 공포-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신자들이 이생에 사는 동안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두려운 일들을 만나게 마련인데 성경에서 밤이란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육적인 곤고와 재난에 처해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낮에 흐르는 살(히//메헤츠 야우프 요맘)- 직역하면 낮에 날으는 화살이라는 용어로서 간조한 땅을 걷는 광야 길의 성도들에게 임하는 극한 상황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서 낮에 비치는 태양의 뜨거움으로 빗대어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도 손상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신다는 뜻의 문맥 중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불뱀들이 곤고한 광야 길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땅을 바라보던 자들을 물어서 죽게 했다는 기록과 저희 주께서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표현을 대조해보면 주님의 인도와 보호를 말하는 문장 중에 나오는 낮에 나는 화살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 -본문의 흑암 중에, 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캄캄한 가운데라는 뜻보다 갑자기 닥친 곤경 가운데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성도들이 예기치 않게 몰아닥친 육신적인 사건들을 의미하니 욥의 경험과 같이 먼저는 재산이나 육적 자녀들을 거두어 가시는 것, 혹은 자신에게 임한 육신적인 질병 등이 연거푸 몰아닥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염병은 문자 그대로 보면 온역이나 전염병이라는 뜻이나 욥의 경우로 본다면 대적 혹은 그 대적의 살의를 품은 독설과 비아냥거림과 대적하는 말들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자신의 곤경에 대하여 소문이 쉽게 퍼지고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번진다는 뜻입니다.

 

흑암중의 염병이라는 특별한 표현은 어둠(육신)의 일들이 갑자기 번져나간다는 뜻입니다.

 

백주(白晝)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 대낮에 초래되는 파멸이라는 표현은 가시적이고 공개적으로 발생하는 파멸을 가리키는데 파멸(히//케테브)은 휩쓸어 버리는 것, 잘라서 내버리는 것, 등을 의미하며(사28:2), 폭풍, 전쟁, 온역 혹은 기근 따위와 같이 일정한 대상을 완전히 휩쓸어버려 멸망시키는 악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시인이 노래한 이란 표현들은 언제 어떤 형태로 대적이 일어나 훼방과 대적행위를 하여 여러 종류의 재앙들이 밀어닥친다고 하여도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는 성도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91:7-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이런 표현은 광야 길을 걷는 신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대적의 공격을 당하고 실족할 것이라는 경고가 되기도 하고 기자와 같이 신실한 신앙(信仰)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자 소수만 끝까지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 교회생활을 해오면서 우리 주변에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날아다니는 불 뱀들의 공격을 받고 실족하여 넘어진 수많은 신자들을 보게 되는데 저들 중의 많은 수는 신앙지도를 잘못 받은 경우도 많고 자기 자신의 교만한 아집 때문에 공중권세를 잡은 악의 세력들에게 그 혼이 큰 상처를 받아 치유가 어려운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매우 독선적인 자기주장에 사로잡혀 주께서 보내신 증인들을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듯이 주장하나 사실은 마귀의 자녀인 것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시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악인이 하나님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자신의 악행에 대하여 보응을 받는 것, 징벌 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인데 인생사에서 모든 악인이 당장 현실적 징벌을 받지는 않는 듯해도 그의 자여손에게 임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따른 징벌입니다.

 

여러 방법으로 나타나는 악인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의 공의가 엄존(儼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이 입증되는 것을 목격하면 성도는 더 큰 믿음과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게 됩니다.

 

시대적인 경륜으로도 모든 악인들의 종교조직인 큰 성 바벨론이 징벌 받을 때가 반드시 오게 되며 또한 불신자들의 세상에도 반드시 공의로우신 심판은 집행되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님이 먼저 그분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여 세상나라에 다시 오시어 그분의 왕국을 실현하는 궁극적인 재림의 때입니다.

 

시91:9-11-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 마치 아버지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듯이 하나님과 함께 살고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 동행하였다는 뜻이니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생활을 간단하게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화와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표현은 구약백성들이 유목민의 생활을 하면서 광야 길을 걷던 것을 상기하는 표현인데 이는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자들인 주님의 양들 개개인의 거처인 몸을 의미하기도 하고 단체적으로 각 가정을 의미하기도 더 광의적인 의미로는 이스라엘 전체가 단체적인 하나님의 장막-성막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 장막을 지켜주신다는 이런 표현은 성도들 각자와 그가 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지역의 어떤 모임과 주님의 몸 된 우주적인 교회에 각각 적용할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우주적인 교회보다는 각자의 삶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아들을 위해서 부리시는 사자들인 천사들을 명하여 일생적인 삶을 지켜주실 뿐 아니라 올곧은 신앙 양심과 건전한 정신을 같도록 돕는 영들인 천사들을 보내어 지켜주십니다.

 

사자들(히//믈라킴)은 보내다, 라는 뜻을 가진 (히//라카흐)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수7:22) 혹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출23:20)이나 대언자(학1:13) 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본문에서는 신실한 신앙인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천사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마4:11, 눅22:43, 히1:14).

 

저희가(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 독수리 날개로 너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출19:4, 룻2:12, 계12:14-16) 등과 같이 주님께서 신실한 신앙을 고수하는 성도를 각별히 돌보신다는 뜻을 강조하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 실족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키심을 받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인데(시37:31, 잠2:23) 본절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에 의해서 미혹하는 말로 인용된 말이니 결국 마귀는 육적인 안전과 보호를(마4:5-6) 해주는 신으로 오인시키는 간교한 자임을 보여줍니다.

 

주께서 부리시는 천사들을 보내어 신실한 성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것은 구속하신 사람의 영과 마음을 지키시는 것이니 양심과 마음의 생각이 천사들의 지킴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호를 받는 것이 진정한 보호이며 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91:13-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 사자와 독사는 모든 들짐승들의 대표하는 짐승들인데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협적인 마귀의 사자들이나 마귀 자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서 사자는 주로 정치적인 권세자를 상징하고 뱀은 영적인 권세자를 상징합니다.

 

다니엘은 사자의 굴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바울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이런 표현들은 정치적으로 그의 신앙을 핍박할 때도 끝까지 신앙을 변절하지 않고 신앙심을 지키심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뱀을 밟거나 누른다는 표현은 세상교계의 유명한 자들이 어떤 간교하고 그럴듯한 이론으로 미혹하여 진리의 신앙을 혼잡시키려 해도 이미 속에서 성령의 분별을 통해서 영과 마음이 혼잡되지 않도록 명쾌한 분별력을 주시므로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로 미혹의 영들을 대적하여 사단을 발아래 상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자나 뱀과 전갈 등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큰 권세를 행사하므로 세상나라에서는 큰 자로 드러나고 사람들의 민심을 자신에게 이끌어 자기가 마치 신(神)인체 하는 자들입니다.

 

뱀(히//타닌)- 출7:9-10, 12 등에서는 뱀으로 표기했으며 창1:21,-에서는 큰 물고기로 표기되었고 시74:13, 시148:7, 사27:1, 사51:9,

 

렘51:34-등에서는 용으로 표기 되었으며 애4:3,-에서는 들개로 각각 번역되고 있는데 뱀으로 번역이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사자와 뱀은 마귀에 대한 표현이니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온갖 곤경들을 보내는 역사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마귀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의 신앙인들은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진리를 장비하여야 하고 삶 가운데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통해서 더 온전케 되어지는 기회로 삼아서 능히 원수들을 발아래 밟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91:14-16-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오래 살게 하여-영생을 주어)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사랑한즉(히//하솨크)는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용어로서 사랑(창34:8, 신21: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신7:7, 신10:15) 혹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나실인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분을 계시하여 알게 하시고 그분의 사랑을 받은 결과로 그분을 행한 사랑이 불타게 하여 나실인으로 일생을 헌신하게 하십니다.

 

본문서는 신실한 신앙인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 대한 나실인의 사랑(헌신)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진실하신 성품과 인격을 체험하고 깨닫는 것 곧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는 결국 많은 죄를 사하심 받은 자임을 알 수 있는데 많은 죄를 사하심 받은 자는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눅7:47).

 

주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는 주님의 이름을 알게 되니 자연히 주의 이름-신성한 성품과 인격으로 주님께 간구하게 되고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를 아시니 그의 간구에 응답하여 환난 날에 도우신다고 하십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로 안다는 것 이것이 곧 영생의 구원이니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장수(長壽)로 만족케 하고 구원으로 보이리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은 결과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심을 입은 성도가 올린 기도에 응답하사 그가 당하는 어떤 종류의 환난 중에서도 그와 동행하시고 위경에서 건져내어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는데 영화롭게 하는 것은 환난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케 되므로 성품과 인격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수(長壽)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장수의 복이 곧 궁극적인 구원임을 나타내는 이런 표현은 육신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구원은 아니니 이생에서의 일들에 관한 말씀들이 아니고 영에 속한 표현임을 확정해줍니다.

 

(베다니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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