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역사>정화의 원정

작성자KESLL|작성시간14.10.29|조회수250 목록 댓글 1

 

정화의 원정 

 

중국의 해안선은 1만4천키로 해안선을, 한국은 3면이 바다이다.

두 나라 해상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한국은 신라시대 장보고, 명나라의 정화(鄭和)의 원정뿐이다.

바다가 있다고 해양활동이 활발한 것은 아니다. 명나라 때 1402년 정화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큰 해양 활동 기록을 세웠다.

운남성 곤명에서 출생하여 연왕에게 바쳐진 환관이었다. 연왕은 건문제를 폐위시키는 정난의 변(靜難之變)을 일으켰다.

정화는 연왕을 도와 남경을 함락에 일등 공신이었다. 연왕은 영락제가 되었다. 황제의 명을 받아 정화는 바다 원정을 떠났다.

엄청난 규모의 선단을 준비하였다, 강소성 소주에서 출발하였다. 남경에는 명나라 때의 거대한 조선소 자리가 발굴되기도 했다.

 

정화의 선단은 배 62척, 2만8천명의 병력이었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모선은 길이 44장(137m) 폭 18장(56m) 대형 돛대가 9개였다.

8천 톤급 배이다. 축구장 크기이다. 콜럼부스의 대서양 항해, 바스코다가마의 인도양 항해 90년 전의 일이다.

실제로 그 정도의 크기의 배를 건조 할 수 있었는가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90년 후, 1492년 콜럼부스의 1차 항해 때의 배는 250톤 급, 3척의 배, 승무원은 88명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이다.

정화는 7차례 원정을 다녀왔다.

1차 항해: 베트남 – 말라카 해협 - 스리랑카 - 인도에 도착하였다.

2차 항해: 팔렘방 – 자바 – 타이 – 인도 코친 -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1911년 스리랑카 갈레에서 비석이 발견되었다.

 한문, 타밀어, 페르시아어로 된 정화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차 항해: 자바 – 말라카 – 스마트라 – 스리랑카 – 인도 (쿠이론) - 인도(코친) - 인도(캘리컷)를 다녀왔다.

4차 항해: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 해를 건너 호르무즈 해협, 아덴만 까지 나가 아라비아의 무수카트, 아프리카의 모가디슈를 방문했다.

5차 항해 돌아오는 길에 사자, 기린, 얼룩말, 낙타, 타조를 가져왔다. 지금의 케냐 탄자니아 고원지대에 사는 포유동물이다.

7차 항해: 7명의 선원이 메카를 방문하고 마호멧의 묘지를 방문하고, 회교사원의 기둥이 467개까지 기술하였다.

7차 원정을 마치고 돌아와 그해 1435년 남경에서 죽었다.

 

캐빈 지멘스는 정화의 선단이 호주와 남극 아메리카까지도 갔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공인되지는 않았다.

아메리카를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 먼저 갔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남북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2만년 전에 건너가 현재의 원주민이 되었고, 태평양 폴리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뉴질랜드, 호주에 살고 있는 원주민도 아시아대륙에서 1만년 전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인간 DNA의 조사에 의하면 하나의 종이다. 한사람의 어머니로 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정화원정의 공식문서는 없고, 동행했던 마환(馬歡)의 ‘하서양(下西洋)’, 비신(費信)의 ‘성차승람(星蹉勝覽)’, 공진(鞏珍)의 ‘서양번국기(西洋藩國記)’를

통하여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정화의 선단은 남중국해를 지나, 벵골만, 아덴만, 인도양을 지나 동 아프리카 까지 진출하였다.

다녀간 곳은 곳곳에서 유물로서 정화의 초상화, 중국 도자기와 칠기, 비문이 발견되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원정을 7차례나 감행했다.

당시 세계는 중국의 명(明)보다 강한 나라는 없었다. 왜 이 엄청난 원정을 감행했느냐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영락제는 제대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세조처럼 조카의 황제 자리를 정난의 변을 일으켜 찬탈하였다.

남경을 함락하고 황제를 찾았으나 없었다. 승려의 복장을 하고 탈출했다는 소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조카를 잡으러 원정을 보냈다.

인도에는 무굴제국이 건설되어 중국 침략을 막기 위하여 원정대를 보냈다. 셋째 명의 세력을 과시하고 각국의 조공을 받기 위하여 라고 말한다.

어느 것도 원정의 절실함을 말해 주지는 못한다. 정화의 대원정이 세계사는 중국내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바다의 원정은 동남아시아의 군소국가에 조공을 바치게 했고, 중국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영락제의 허영을 만족시키는데 그쳤다고 평하고 있다.

콜럼부스의 항해와는 달랐다는 말이다. 국력의 낭비라고 유학자들은 비난했다. 엄청난 해양활동에도 불구하고 그 원정은 전설처럼 사라졌다.

정화의 모험은 대단한 것이었다. 18만5천km를 항해 했다.

라이프 잡지지는 지난 2천년동안 세계사를 빛낸 위대한 100인중의 한 사람으로 14번째 정화를 꼽았다.

 

 

그림 1,   정화의 원정도

 

출처 : http://www.cyworld.com/chansukpark/5829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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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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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토브 | 작성시간 14.10.29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의 원정이 있었던 것으로 위키에서 기록하고 있네요. 세종대왕보다 약간 빠르고 컬럼버스보다 80년 정도 빠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한 것은 성령님의 인류 역사에 대한 섭리하심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이유들이 더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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