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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비아 형제단과 WCC

작성자엘리야후| 작성시간20.04.20| 조회수23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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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5시 작성시간20.04.20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4.21 모라비아 형제단의 발생지 헤른후트의 많은 도서들은 2차대전 무렵 ( 아마 직후) 서부독일에 있는 비데니스트 성경학교로 옮겨왔습니다. 공산권에 있기 때문에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1993년쯤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도서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한국 형제모임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괜찮은 성경학교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독일 학교들은 무료이기 때문에 다니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4.21 이 비데니스트 성경학교 교장으로 오래 봉직했던 분이 바로 에릭 사우어이고 한국에는 그가 저술한 책으로 세계구속의 여명, 십자가의 승리, 영원에서 영원까지, 라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앞의 두권은 권할만 합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는 세대주의 입장에서 쓴 환난전 휴거에 관한 것이므로 저는 권하지 않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신약성경을 암송한 3 사람들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시력이 좋지 않은 그는 성경을 읽지 못할까봐 신약성경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다른 한분은 해리 아이언사이드로 알고 있습니다. 소련의 후르시쵸프는 4복음서만 암송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25시 작성시간20.04.21 엘리야후 멋지네요
  • 작성자 느디님 작성시간20.05.04 1415년 얀 후스의 화형은, 100년 후 152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선구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천주교의 전횡이 엄혹했던 그 시절 독일 사람 진젠돌프 백작의 후원으로 한 때 모라비안 신도들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산지사방 흩어지는 가운데 요한 웨슬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감리교가 탄생에 기여하기도 하고, 또 존 넬슨 다비 계열(?)의 플리머스 형제 모임과도 연합하는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런가 하면 영국의 형제모임은 중국 워치만 니 목사의 '적은 무리'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편, '예수가정' 운동에도 좀 다르긴하지만 그 쪽의 영향이 아니였나 합니다. 아무튼 기독교라는 종교의 틀을 벗어나 순수 복음주의 모임의 여러 흐름이 있으나 제 지식의 한계로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나 가가와 도요히코 같은 분의 공부는 못하였습니다. 형제모임의 대강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4 작년 11월에 프라하와 모라비아 지역을 다니기는 했는데 그 신앙유적지 들은 다녀보지 못했습니다. 모라비아지역은 열차에서 보았을 때 매우 평화로운 농촌들이었고 간혹 큰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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