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내려갔는가?
제가 한국에 사는 동안 자주 의문했던 질문은 왜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내려갔는가?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이집트로부터 올라와서 다시 카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었는데 그냥 카나안에 남아서 잘 교육받으며 율법도 받고 지키고 지냈더라면 어떠했을까?
또 그 거대했던 여리고 성은 야곱의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등등의 의문이었습니다.
다만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충만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창 15:16) 이 있고,
강대한 민족을 이루어 나오게 하신 다음 카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경험하며 홍해바다를 건넘으로서 민족적 침례를 받게하시며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도 생각하였습니다.(고전 10:2-4).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이 왜 이스라엘이 카나안 땅에 있으면 안되고 왜 이집트 땅에서는 살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캐나다에 와서야 이 의문은 차츰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삶의 많은 고리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 안믿고도,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웬만큼 평안히 지내기에 늘 충분했고 저는 별로 하나님을 의지함이 지냈던 사실을 한국을 떠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캐나다 사회에서 한국에서의 학력이나 직장 경력은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능력과 신뢰들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차츰 이 문제를 깨닫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창세기 38장에서부터 였습니다. 38장은 37장과 39장 사이에 끼어있는 장입니다. 37장은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기까지를 설명하며, 39장은 이집트에서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창 37장과 39장은 이어져 있어야 할 장이며, 계속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38장이 그 두 장 사이에 끼어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38장이 37장과 39장 사이에 끼어들어간 이유는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38장을 두 장 사이에 끼어넣으신데에는 분명히 긴급하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 긴급동의! 잠깐만요!”
그것은 마치, “ 긴급동의! 잠깐만요!” 하는 음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38장의 내용 전체에 관하여는 제가 설명드릴 말씀이 너무 길기 때문에 저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다만 타말이라는 여인은 카나안인이 아니었으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만을 설명합니다.
38장이 37장 앞에도 안나오고 갑자기 중간에 끼어든 이유는 바로 다음의 구절 내용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창세기 38장
1 바로 그 시기에 예후다가 그의 형제들로부터 내려가 아둘람인 한 남자에게까지 펼치니 그의 이름은 히라라. 2 예후다가 거기서 어떤 카나안인 남자의 딸을 보았으니 그의 이름은 수아였으며 그가 그녀을 취하고 그녀에게 들어가니라.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자신을 본받아 거룩하도록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에클레시아)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분리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의 아비집에서 떠나게 하시고, 롯으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엘리에셀에게서 떠나게 하시고, 이스마엘에게서 떠나게 하시고, 심지어 그의 아들인 이삭에게서도 떠나도록, 그를 번제드리라고 명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세상으로부터 성별되도록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보면 야곱의 아들 예후다(유다)가 카나안인 친구를 사귀고, 카나안인의 딸을 취하여 결혼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도전이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분리시키시며, 성별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속화시키는 과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큰 반역이었으며 많은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카나안으로부터 분리해내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이 사건에서만 나타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쉐켐 함몰의 강간 사건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창세기 34장
21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평화로우니 그들로 이 땅에서 거하게 하고 거기서 거래하게 하자 보라 이 땅이 그들 앞에 광대한 규모이니라. 그들의 딸들을 우리가 우리를 위해 아내들로 취하고 우리의 딸들을 그들에게 주자. 22 다만 이것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와 더불어 한 백성이 되도록 거할 것을 우리에게 동의하리니 저희가 할례받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받는 조건이라. 23 그들의 가축과 그들의 소유와 그들의 모든 짐승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 다만 우리가 그들에게 동의하여 그들로 우리와 함께 거하게 하자.
즉 카나안인들은 언제든지 이스라엘인들과 화목하며 화합하여 잘 지낼수 있는 처지에 있었으며 그들은 쉽게 카나안인들과 통혼하며 동화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큰 염려였으며, 지금까지 일해오신 모든 역사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을 카나안인들로부터 분리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내려가면 이집트인들과 동화되어 한 민족이 되어버릴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46장
33 파로가 당신들을 불러 말하기를 “ 너희 직업이 무엇이냐” 하거든 34 당신들은 말하기를 ‘당신의 종들은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목축의 사람들이었아오니 우리도 우리 아비들도 그러했습니다.’ 하여 당신들이 고쉔땅에서 거할 수 있도록 하시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에게는 양떼의 모든 목자들이 혐오스러움이기 때문이오”하니라.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농경민족이었으며 목축업을 싫어하고 목축인들을 더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에 반해 카나안인들은 목축민족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목민끼리는 쉽게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카나안에 이스라엘이 계속 살았더라면 서로 통혼하며, 화합하고 한민족으로 살아가기 쉬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많은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사건이 될 뻔한 추세였습니다. 따라서 동일한 유목민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꺼내어 유목민을 혐오하는 농경민족인 이집트로 내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은 목축업자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런 정신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인들로부터 분리시키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시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세상 어느 민족과도 동화되거나 그들과 화합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으며,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기 원하셨는데 반해, 카나안인들은 이스라엘민족처럼 동일한 유목민족으로서 이스라엘과 동화되기에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카나안으로부터 분리시켜 이집트로 내려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동화될 가능성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박해받는 위치에 처하게 되었으나 그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연단되고 강대한 민족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고린도 후서 6장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로부터 나와서 떨어져 있으라. >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또한 너희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에게 아들들과 딸들이 될 것이니라, 전능하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와 같으니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세상과 섞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세상 사람과 그분의 백성이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카나안인이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종말 이후에 여호와의집에도 그리할 것입니다.
스카랴 14장 21
과연 예루살렘과 예후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예호와께 거룩함이 될 것이며, 그것들로부터 취하며, 그것들 안에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집에 카나안인들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 번역을 만군의 여호와의 집에 장삿꾼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하리라로 번역되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별도로 생각할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참 이스라엘 된 하나님의 사람과 장삿꾼인 세속의 사람이 함께 유업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수시로
고난당하게 하시며,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목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은 유목민족이었던 카나안족속들과 쉽게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경민족이었던 이집트인들과 유목민족이던 이스라엘이 동화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민족 사이에는 뚜렷한 구분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품고 있기에는 이스라엘이 너무 커져 버린 상황에서 드디어 심각한 민족갈등이 발생하여 마침내 세상으로부터의 결별을 이스라엘이 감행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던 것이 바로 엑소더스였던 것입니다.
세상밖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떠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의 삶에서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010. 10. 12 하토브
2019. 7. 5 엘리야후
http://cafe.daum.net/Eliyahu?t__nil_cafemy=item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희망 작성시간 19.07.06 우리의 모든 인생길에는
우리의거룩함을 위하여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거룩한 뜻 가운데 있음을인하여
감사찬송을 올려드림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돌아온 탕자 작성시간 19.07.07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처생각지도 못한 길로 인도 하시며
감당할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서 그분의 능력으로 새로운 길을 내실때
그분과의 영원한 기념이 되며 설령 그분의 음성이 없을지라도
그분만을 신뢰할수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희망 작성시간 19.07.0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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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음눈 작성시간 19.07.08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