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 고려국의 패기

작성자KESLL|작성시간17.06.27|조회수425 목록 댓글 1

1. 고려 사신이 송나라에 도착함. 송나라 황제에게 글을 올림

근데 송나라 연호 안 씀. 갑자를 씀.
소동파가 ㅈㄹ함. 명목상 조공국인데
고려사신도 짜증내다가 당나라 연호 쓰고 땡처리..;;(응? 당나라 연호라니??)
"ㅅㅂ 졸라 떽떽거리네"가 고려의 공식 반응

 

2. 고려 사신이 송나라 황제한테 받은 선물을 깨부숨

 

송나라에서 하사한 금은 중 가짜가 있다는 첩보가 들어옴
면전에서 금은으로 된 알을 모조리 깨봄.
송나라 아무말 못하고 쩔쩔
결론 "다 진짠데요!"

 

 

3. 고려 사신이 개봉에 도착함

조공품을 가져왔는데, 영 허접함.
근데 하사품은 10배 이상. 대규모 사절단이 다 들고 가지 못할 정도로 많았음.
그래서 고려 사신은 황제의 하사품(그 중에서는 황실에서만 쓴다는 물건도 포함)을 즉각 개봉과 항주에서 팔아버리고
금과 은으로 바꾸어 가져감. ㅡㅡ;;
오늘날로 치자면 백악관에서 뭐 물건 줬는데, 이베이에 올리고, 달러로 바꿔가져가는..;;

 

 

4. 고려 사신이 뭔가를 요구함

송나라 봉역도. 송나라의 최신 서적 모조리 ㅡㅡ;
심지어 황실 도서관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희귀 서적도 달라고 그럼
근데 줌.

 

 

5. 그러던 중 고려가 요나라의 연호를 쓰는 일이 생김

고려에서 거란의 연호를 썼다는 소식.
송나라 사신이 따져물음.
근데 욕 얻어먹음
"ㅅㅂ 우리 덕에 전쟁 안 하고 살면 됐지...어디서 기어오르냐? 그리고 우리가 요나라 연호 쓰면 그쪽에서 물건 갑절로 사준다고 했어 그래서 한거야. 그리고 우리도 요나라 봉역도랑 몇개 가져왔는데, 니들 그 혜택 안 보냐?" 라고 답을 함.

 

 

6. 고려 사신이 항주에 도착

근데 대놓고 항주의 관청 창고를 둘러봄(원칙적으로는 중앙에 올라가는 물건이라 중앙 관리만 검열권이 있음). 웃긴건 항주의 송나라 관료들이 기어다니면서 고려 사신들을 접대함. 항주는 이슬람 등 무역 중심지였기 때문에 각 국의 주요 물품을 둘러볼 수 있었음.

 

그거 다 헤집어놓고 나중에 되돌아갈 때 가져갈거니 예약해놓는다고 말해놓고 개봉으로 떠남. 이걸 소동파가 보고...저거 어느나라 관리냐? ㅅㅂ 오랑캐한테 기어다녀?" 라고 한탄해함. 그리고 황제에게 이걸 상소할꺼라 협박함. 근데 상소는 안 올림 ㅡㅡ; 고려 사신의 답 "그러시든지."

 

 

 

7. 요나라 사신 능욕1

귀주 대첩 이후 고려 사신이 송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상하게도 일본국 사절단, 그외의 남만 여러 국가의 사신들과 함께 들어옴.

그때 요나라 사신도 옴.(판관 포청천에서 묘사된 것처럼 요나라 사신들은 거만했음)
그 요나라 사신을 계속 능욕한게 고려 사신. 술을 주고 받으면서 요나라 예절에는 절대 해선 안 될 일을 계속 함.
요나라 사신 꿀먹은 벙어리...

그리고 일본, 여진, 서하, 안남 사신이랑 개봉 시내에서 승전 자축 파티 염.
송나라 반응 "이거 뭥미!! 남의 집 안방에서"

분명 송나라 수도 개봉부인데...
고려 사신이 묵는 여곽에 다른 나라 사신들이 몰려서 먼저 접대한 후 황제를 보러 감.
물론 진상품의 질도 차이가 남.

 

 

 


8. 거란과 국지전을 벌이던 중에 송나라 교섭단이 거란 군막에 도착함.

 

근데 거기에 고려 사신이 뙇!
으잉?? 니들이 왜 여기있어?
"구경 왔어"
그 자리에서 요나라 사령관이 보는 앞에서

 

"걱정마 우리 임금은 너네 황제를 더 좋아해!" 라고 답함.
우리가 여기 온건 무역 때문이니 오해하지 마라고;

 

 

9. 그리고 송나라에 간 외교단은 양반이었음. 요나라를 고려가 귀주대첩으로 개바름.

요나라에 들어온 고려 사신들은 기분나쁘면 요나라 관리의 머리채를 잡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있음.

 

 

10. 요나라 기록에서 보여진 고려의 삥뜯기

고려랑 수교한지 50년이 넘었는데 저새끼들 공물바친다고 백성들이 뒤져나감. 고려에게 전쟁에서 패하고 나서는 아주 그냥 작정하고

쥐꼬리만한 공물을 우리한테 바치고 수십 갑절을 하사 명목으로 뜯어가니 미쳐버리겠다 ㅅㅂ

 

 

11. 요나라 사신 능욕2

고려왕 선종의 생일파티를 위해 각국의 축하사절단들이 고려에 모여서 파티를 열었는데 요나라 사절단만 늦게옴.

그러니까 고려신하들이 "요나라 사신의 이름은 가급(可及)인데 어찌하여 불급(不及)이 되었는가?" 라고 조롱했다.

이말은 즉슨 요나라 사절단 대표 이름은 '김빠름인데 하는 짓은 김늦장이네 병.신새끼 ㅋㅋㅋ' 라는 거.

 

 

 

 

12.금나라 vs 고려

 

나라 망하고 금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금나라 사냥꾼들이 고려 국경침입했다가 사로잡혀서 모가지가 잘리는 사태가 벌어짐.

당시 고려에는 소드마스터 척준경이 살아있던 시기.

 

 당시 금나라는 북송도 멸망시키고 국력도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었고 고려왕에 본때를 보여줘야한다. 라고

신하들이 상소문 날리는데

 

당시 북송 정복전에 참가한 금나라의 장수들 대부분은 금나라의 성장 초기부터 활약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 시기에 인간 흉기 소드마스터 척준경 및 고려군에게 한 번씩 크게 패한 경험이 있었음. 그 경험은 금태종도 겪은지라 '전쟁은 무슨 ㅅㅂ 우리가 이길것 같에?' 라며 다시는

고려국경은 넘지말아라고 명령함.. 실제로 국경 한번도 안넘음.

 

이렇게 고려에 대해 필요이상의 공포를 가지고 있던 금나라는 고려와의 국경분쟁에서 요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성을 그냥 고려에게 넘겨야만 했고

(척준경 만세!) 그후 금나라는 고려에게 여진족의 영역을 교섭을 통해서 뺏겼다는 경험까지 겹치면서 금나라는 중원을 장악한 이후에도 고려와 관계된 문제는 외교적 타협으로 해결한다는 자세를 일관하게 됨.

 

 

이는 중국 역사 속의 정복왕조로서는 유일무이하게 무력이 아니라 외교로 근린국가와의 문제를 처리한 사례

 



7-8번은 송사에 있는거고

1~6번은 소동파가 직접 쓴 고려해악론, 고려금수론의 일부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동란섭필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아무튼 소동파는 고려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던지..
평생을 고려를 까는데 세월을 보냄.

실제 송나라는 고려에 그토록 저자세를 취하며 떡고물을 얻어먹으려했지만

고려는 송이 멸망할때까지 송에게 좋은일 하나해준적이 없음.(호구왕 송나라ㅋㅋㅋ)

10~11은 송사 외국열전 고려편에 있는거


고려가 잘못했네요

 

 

출처. 루리웹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etc/2078/read?articleId=22643713&objCate1=497&bbsId=G005&itemId=143&pageIndex=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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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엘리야후 | 작성시간 17.06.28 약간 과장들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흥미롭습니다.

    요나라의 소손녕이 침략한 사건들을 볼때 요나라가 기독교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사적이었음을 이해할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려는 불교국가였고 그것이 국가 세력과 관련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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