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Easter) 인가? 부활절인가?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이스터도 아니고 부활절도 아닙니다!
이스터란 이쉬타, 아스타롯에서 나온 말이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아세라, 로 불리우던 여신의 이름이었습니다. 바빌론 여신 이스터의 축제를 그리스도인들이 행사해야 하겠습니까?
부활절은 어떻습니까?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였다는 말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만찬 행사입니다(고전 11:26) 성경은 항상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또한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만찬을 행사하였지, 그분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였다는 말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모이기로 바뀌었다는 말은 로마 카톨릭이 예배일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꾸기 위해 퍼뜨리고 강요한 수법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면 그 행사 명칭으로 무엇이 합당할까요?
성경은 그에 대한 해답을 말해줍니다.
고전 5장
7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그리하여 너희가 누룩없는 자들인 것같이, 신선한 반죽덩이가 되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리스도 곧, 우리의 유월절 양이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어지셨기 때문이라. 8 그러므로 우리는 명절을 지키도록 하자, 묵은 누룩으로도 아니요, 나쁘고 악한 누룩으로도 아니요, 누룩없는 떡들로 신실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명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예호와의 7절기 모두가 해당됩니다만 여기서는 특별히 유월절 명절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을 행사해야지 다른 명분으로 다른날을 행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터(Easter) 나 부활절이라는 이름의 축제를 행사할 것이 아니라 바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피흘리고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유월절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고전 5장에서 가르치는 바임이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고전 11장
26 이는 너희가 자주 이 떡을 먹으며 (자주)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전파하는 것임이라.
우리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주님의 만찬을 매주일 행사합니다.그분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님의 만찬을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유월절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증거하고 전파해야 하기 때문에 바울은 고전 5장에서 유월절을 지킵시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을 무시하고 폐기하는 영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그들은 바빌론 종교의 여신 이스터를 기념하는 행사를 일요일에 갖기 위한 술수에 불과합니다. 바빌론의 여신 이스터는 아들 담무스를 위하여 40일간 애곡하는 사순절을 거쳐서 드디어 부활하였다고 춘분이 지난 보름날 다음의 일요일에 그 행사를 부활절로 행사하였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없는 부활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재주를 사탄은 고대 바빌론에서부터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터 행사가 사도행전 12장 4절에서도 나타났다고 분별됩니다만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흘림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 대신에 이스터로 바뀐 사건은 언제 있었을까요?
(1) 부활절 (이스터)의 시초
유월절 대신에 부활절을 행사한 사람들의 시조는 120 AD 무렵의 로마 감독 식스투스 1세로 알려졌으며 그후 부유하였고 선박들을 소유하였던 마르치온(Marcion) 이 로마로 이주해오면서 더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터키의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로마로 방문하여 로마 교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음을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로마 교회들은 이미 주후 100년 이 지나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분별함이 옳다고 믿어집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폴리캅은 마르치온을 만나자 < 사탄에게 속한 자> 라고 비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터는 소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Easter and Polycarp
Easter per se was not observed by the second century Christians in Asia Minor, such as Polycarp. He and others observed Passover.
However, beginning with possibly the Roman Bishop Sixtus (there are no contemporaneous records, only a report 5-6 decades later written by Irenaeus), what is now called Easter began to be observed. First, it was apparently a change in date of Passover from the 14th of Nisan to a Sunday (other changes happened over time). This is believed to have originally happened in Rome because there was a rebellion by Jews and that any distancing between Jews and Christians seemed physically advantageous (at least to some in Rome).
Irenaeus claimed that Anicetus of Rome (who argued with Polycarp) was simply following previous Roman bishops, beginning with Sixtus, as Irenaeus around 180 A.D. wrote:
And the presbyters preceding Sorer in the government of the Church which thou dost now rule--I mean, Anicetus and Pius, Hyginus and Telesphorus, and Sixtus--did neither themselves observe it [after that fashion], nor permit those with them to do so (Irenaeus. FRAGMENTS FROM THE LOST WRITINGS OF IRENAEUS. Translated by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xcerpted from Volume I of The Ante-Nicene Fathers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ditors); American Edition copyright © 1885. Electronic version copyright © 1997 by New Advent, Inc).
Around 155 A.D. Polycarp of Smyrna went to Rome to deal with various heretics there and he tried to persuade the bishop not to switch Passover to Easter Sunday. Irenaeus records this:
And when the blessed Polycarp was sojourning in Rome in the time of Anicetus, although a slight controversy had arisen among them as to certain other points…For neither could Anicetus persuade Polycarp to forego the observance [in his own way], inasmuch as these things had been always observed by John the disciple of our Lord, and by other apostles with whom he had been conversant; nor, on the other hand, could Polycarp succeed in persuading Anicetus to keep [the observance in his way], for he maintained that he was bound to adhere to the usage of the presbyters who preceded him. And in this state of affairs they held fellowship with each other; and Anicetus conceded to Polycarp in the Church the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by way of showing him respect (Irenaeus. FRAGMENTS FROM THE LOST WRITINGS OF IRENAEUS. Translated by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xcerpted from Volume I of The Ante-Nicene Fathers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ditors); American Edition copyright © 1885. Electronic version copyright © 1997 by New Advent, Inc).
Polycarp told what many now consider to have been “the pope” no. This also shows that Rome did not have dominion over the faithful as many now act like that it did. And while this also shows that Anicetus would not accept the authority of Polycarp who was appointed as Christian leader by the apostles, we in the Continuing Church of God do not consider that Anicetus was a saint, yet we and the Church of Rome do consider that Polycarp was one.
Over time, instead of being a holy day in memorial to Christ's sacrifice, the Greco-Roman Easter became a resurrection holiday for the Romans and those who followed their lead.
But Easter-Sunday was simply not part of the faith of the true second century Christians in Asia Minor, including Polycarp, as Polycrates testified. The last words of his response to Roman bishop Victor about changing the date of Passover to what became Easter Sunday was:
http://www.cogwriter.com/polycarp.htm
( 2) 안티옥 공의회 341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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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AD |
—Council of Antioch, convened by Roman Emperor Constantius, presided over by Eusebius of Constantinople (New Rome), and attended by 120 fathers all together. It reinforces the rule of Nicea for the common celebration of Pascha, establishes regulations regarding the organization of local (regional) churches, and the use of canonical letters by travelers for verification of their canonical standing in the Church. |
http://prophecyhistory.com/book/export/html/307
The Council of Antioch (341 CE) prohibited Christians from celebrating Passover with the Jews. The Council of Laodicea in the same century forbade Christians from observing the Jewish (and biblical) Sabbath. (Prior to this time, Christianity was somewhat divided, with some Christians observing the Sabbath, some observing Sunday, and some observing both!) Christians were also forbidden from receiving gifts from Jews or matzo[1] from Jewish festivals as well as other “impieties.” [2]
341년의 안티옥 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라오디게아 공의회(363AD) 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 시점에 앞서서 기독교계는 어느 정도 분열되었는데 안식일을 준행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일요일을 준수하는기독교인들과 둘다를 기념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에게서 선물이나 무교병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부활절이라는 명칭으로 이스터라는 잡신 이름을 피해가는 한편 그 내용상으로는 이스터 축제일인 일요일을 택하여 행사하는 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으며 그것은 교묘히 이스터 축제일을 유지하려는 술수에 불과합니다. 또한 성경은 명시적으로 유월절을 지킵시다 하였는데
그러한 성경적 명절을 없애야만 잡신교의 여러 축제일이 기독교 안으로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유월절을 없애고, 이스터라는 여신 축제일을 들여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스터도 아니고 부활절도 아닌 유월절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2014. 4. 15일 하토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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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토기그릇 작성시간 14.04.15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바벨론 여신을 기리는 이교풍습이라 아무리 외쳐도
진리를 좇는 들을 귀 있는 사람들만 듣게될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곳의 회원들 중에서도 여전히 부활절이라 이름하는 이번 일요일
교회건물에서 "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 하셨네~~♪" 이렇게 목청 돋구워 노래 하고 있을것입니다.ㅎ -
작성자희망 작성시간 14.04.15 예수님의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만은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유월절의 어린양되신 우리의 대속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성경대로 자주 기념하는
하나님자녀가 돼야 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갖게 되는군요.
하토브님께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4.17 제가 부활을 부정하거나 부활의 의미를 축소시키려 하는 것이 아님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어집니다. 성경은 부활을 기념하여 모이라거나 부활을 기념하여 떡과 잔으로 나를 기억하라 하시지 않고 그분의 피흘림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신 것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행사의 촛점은 유월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