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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큰믿음교회를 통한 여섯가지 패러다임의 변화들

작성자ykmoseskim|작성시간13.09.23|조회수40 목록 댓글 0

지난 번  "우리가 부흥총회 교단으로 교단을 옮기는 이유"를 쓴 후

몇몇 분이 자신의 고민을 쪽지로 보내셨고

심지어 정말 합동측 목사 사모가 맞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셨고

지금껏 교회 안에서는 내 이름은 물론이고

내 존재도 드러내놓지 않고 살아왔던 사모로서 너무나 조심스러운 마음임에도

교단들의 이단시비과 불의한 결정으로 인해 사랑하는 큰믿음교회에 대해 갈등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난 3년간 합동측 목회자인 우리가 큰믿음교회를 통해

어떠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함께 나누는 것에

주님이 강한 마음을 주셔서 조심스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몇가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1. 제일먼저 천국과 지옥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큰믿음교회를 알기 직 전 주로 은혜를 받았던 저자 중 한분이 존 파이퍼 목사님이셨고

특히 "하나님이 복음이다" 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그분이 최고의 즐거움이 되실

천국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여기에 익숙하지 않다면 천국에 가기나 하겠는가?

천국을 위해 더 많이 준비되는 것만큼

이 땅에서 한 인간을 쓸모있게 하는 것은 없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천국을 준비하는 내용에 관해 읽으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간다는 확신은 있는데

왜 천국에 대한 기대감이나 사모함이 전혀 없을까~?

내가 그러한데 어떻게 성도들을 천국을 위해 준비하도록 할 수 있을까~"

 

천국은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나 싫으나~ 좋으나~ 어차피 갈 곳이라 여겼고

천국의 기쁨이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영원한 연합이라고 볼 때

사모함이 없는 내 자신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큰믿음교회를 처음 알게 되면서

제일 먼저 읽게 된 책이 바로 변승우 목사님의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이였지요.

예수믿는 사람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천국과 지옥의 사실성에 대한 많은 책과 간증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생각들이 거의 피상적이고 관념적이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될 때

우리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부분도 기독교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저를 비롯해 많은 성도들은 그저 단순히 교리적인 내용으로

지적 동의 정도로만 받아들일 뿐

또 천국과 지옥을 설교하고 말하는 것은

마치 교양없고 무식한 원색적인 내용으로 간주되어

실제로 수많은 강단에서 천국과 지옥이 외쳐지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변목사님께서 책과 설교를 통해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강력한 선포를 하실 때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요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저희 남편 목사님도 그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강력하게 설교하기 시작했고

예수믿는 사람도 지옥에 갈 수 있다고 외쳤으며

역시나 종교적인 성도들은 불쾌한 거부감을 나타내었고

저 역시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곤 해서

그때마다 주님께 저의 종교적인 교만함과 인간의 고상한 지식을 더 귀히 여겼던 것을 회개하며 간절히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릭조이너 목사님을 비롯해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는 귀한 책들을 통해 천국을 사모하게 되어

"횃불과 검"에서 릭조이너 목사님이 하신 말씀처럼 저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동기에는 두가지 목표가 있다.

 그 첫째는 내가 하는 모든 생각까지도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고

둘째는 나에게 있어 천국의 현실이 이땅의 현실보다 더 익숙하기를 윈하는 것이다.

더 위대한 현실의 삶, 그것은 천국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

우리의 왕이 만유 위의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삶이다."

라는 고백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또한 변목사님의 설교 "부르심 위의 부르심, 보좌로의 부르심"은 제 가슴 깊은 곳에 새겨놓았습니다.

 

2. "진정한 말씀사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변화였습니다.

 

처음 3년 전 큰믿음교회를 알게되었을 때는 큰믿음교회가 굉장한 영성사역과 은사사역을 하는 교회로 보였습니다.

기도원이 아닌 교회 안에서 예언은사을 사역화 하는 모습은 정말 상상도 못했기에 아마 더 그랬겠지요.

워낙 한국은 기도원도 많고 은사사역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주로 보수적이라는 합동측 교회 안에서만 부교역자의 아내로 살다보니

교회에서 방언을 허용하면 엄청나게 열린 것이고

심지어 십여년을 교회 안에서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병은 치유될 지어다~" 하는

그런 유의 선포를 단 한번 들어본 적도 해 본적도 없는 저로서는

큰믿음교회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혹 그런 이단이 아닐까~ 하는 순간적인 두려움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변목사님 설교는 은혜 가운데 들을 수 있었는데^^

영적인 책들이나 외국인 사역자들의 집회 때면

당시만 해도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누구는 차로 몇일 걸리는 거리를 단 몇시간만에 순간이동했다고 하고(중간에 천국에 들렸다 가면서^^)

누구는 창조적 기적이라며 하늘에서 다리가 한짝 또 팔이 한짝 내려오고 있다 그러고

누구는 지금 이자리에 천사들이 반짝~반짝~ 거리며 돌아댕기고 있다 그러고^^

 

그럴때마다 속으로

"지금 내가 나의 왕이요 구주로 믿는 예수님이 예전에 내가 섬겼던 바로 그 주님이시오니이까~?"

싶은 질문이 얼마나 절실하던지요.^^

 

마치 사람은 눈이 두 개이며 자신이 눈 둘인 정상인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눈이 하나뿐인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막~불안해지면서 원래 사람이 눈이 하나였던가 둘이였던가 헷갈리기 시작하듯이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을 눈이 하나뿐인 일단(이단이 아닌^^) 안에 머물며 살아와서 그런지

순간 순간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꺼떡하면 남편에게

"여보~ 우리가 지금 제대로 와 앉아있는걸까 아님 뭔가에 홀려 엉뚱한 곳에 와 있는걸까~

여보~ 우리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님 잘~ 가다가 갑자기 옆길로 빠진걸까~?" 그렇게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저에게 가장 크게 확신을 주었던 것은

같은 복음주의 입장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은 "예언사역의 여정"에 쓰여진  마이크 비클 목사님의 간증과

복음주의 보다 더 보수적이고 은사중단론이라는 확고한 교리적 입장을 가진 세대주의 신학대 달라스의 교수님이셨던  

잭 디어 목사님의 "놀라운 예언의 은사"에서 밝힌 개인적인 간증이였습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점점 더 큰믿음교회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그동안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영성사역과 은사사역에 관심이 생겨

나름 영성계를 한번 둘러볼 요량으로 ^^ 몇몇 다른 집회를 참석해 보았는데

아마 2년 전 꽤 유명한 미국의 여성사역자 집회였던 것 같아요.

 

언제가 말씀시간이고 언제가 사역시간인지~

여기 저기 불은 떨어지고 사방에 콩들이 튀는지 타는지 알수 없는 그 와중에

완전 쌩도토리 하나 끼어있는 듯한 그 황당한 이질감은 둘째 치고라고

변목사님이 늘 외치시듯이 회개하고 행함있는 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촛점을 맟추고

늘 말씀을 상고하며 거룩과 정결과 겸손을 추구하는 삶을 병행하지 않은 채

그저  가서 기도받고 쓰러지고 또 가서 기도받고 쓰러지고...

그 영혼들의 공허함은

성령의 역사 보다는 그저 말씀을 주님의 유지로 받들어 어떻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설교들을 들을 때 느껴지는 매마르고 답답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추구해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시간들이였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 후로는 집회는 단지 큰믿음교회 집회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큰믿음교회는 남들이 말하는 성령사역 영성사역, 은사사역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사역 굳이 표현을 하자면 "강력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라는 사실이였습니다.

 

만약 누구든 영성사역 혹은 다양한 은사사역을 추구하고 그 이유로 큰믿음교회에 온다면

아마도 갑갑하고 답답해서 적응이 안된다 할 것 같았습니다.^^

 

장로교단에서는 마치 큰믿음교회가 성경에서 벗어난 듯이 말을 하지만

사실 한국 기독교 안에 다양한 은사사역이 있어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순복음 교단과 기도원들을 통해)

큰믿음교회는 영성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으로 더 깊이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대로 각 은사들을 인정하고

그 은사의 범위들도 말씀 안에서,  또 선포된 진리의 말씀의 정도 만큼만 철저히 분별하여 인정하는

말씀과 은사사역의 병행이 아닌 말씀을 철저하게 뒤따라가는 사역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안에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은사를 풀어놓는 교회가 없어서

오중사역을 인정하는 신사도적인 흐름을 타는 교회가 없어서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는 교회가 전혀 없어서

큰믿음교회가 모델교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은 바로 모든 은사와 영적인 사역들을 인정하되  철저한 말씀의 분별 가운데 나아가며

오직 성경적인 진리와 예수님께만 촛점을 맞추어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제가 알기로 "진정한 말씀사역" 그것이 모델교회가 되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지금 일부 목사들이 신율법주의니 행위구원이니 하는 말들은 일말의 거론할 가치도 없구요.

지금의 기독교가 값싼 은혜, 값싼 복음에 너무나 익숙하고 길들여져 있어 그렇지

목사님이 외치시는 행함있는 산 믿음은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을 비롯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했 왔던  당연한 진리였습니다.)

 

3. 주님의 평가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평가가 이 세상 신이 사로잡은 세상 정신과 정 반대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가 기독교 안에서의 평가와 다르다는 것은 제게 큰 충격이였습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이 기독교 안에 들어와 그것이 마치 기독교적인 기준처럼 당연시 여겨지는 세대. 

세상에서 자녀의 학벌이 자녀양육의 최우선 동기이자 목표이듯이 

목회자 자녀를 비롯해 신앙인 역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면 자녀양육에 성공으로 여기며

목사들 역시 지적 능력과 학벌과 심지어 교단 배경이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역자의 최우선 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요

교인이 많아질수록 그 자체로 성공하고 부흥한 것으로 간주되는 교회 문화.

저 역시 그런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릭조이너 목사님의 책이나 샨볼츠의 책에서 본 환상에 의하면

 제가 추구했던 것을 같이 추구했던 위대한 믿음의 대 선배님들은

대부분 천국의 가장자리, 변두리에서 그것도 감지덕지 하며 계셨습니다.

 

천국의 바깥들에 계신 선배님은

"나는 예수님보다 내 사역을 더 사랑했어요.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내 사역과 더 시간을 많이 보냈지요." 라고 고백했고

 

안뜰에 계신 선배님은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도 이해와 지혜를 더 중시했어요.

내 삶이 그분과의 관계보다는 지적인 이해에 치중했어요." 라고 고백했으며

 

그리고 주님의 보좌옆에 있던 그 이름모를 여인의 고백은 나를 더 놀라게 했지요.

"나는 그저 그분을 사랑할 따름입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통해 나는 그분만을 사랑했습니다."

 

대학 2학년때 억지로 선배따라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러 가서

저런 훌륭하신 분이 믿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믿는다 하는것은

내 자신이 너무 교만한 것이다 싶어 믿음에 귀 귀울인 후

일년만에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또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하며

일생을 주님앞에 헌신하고 풀타임 사역자로 내 자신을 드렸지요.

그러나 막상 이십대 중반부터 사역자의 자리에 들어서면서 주님과의 관계 보다는

바깥뜰 안뜰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 추구하며 열심히 산 세월이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당시 지금 만약 내가 천국에 간다고 상상해 보면

큰믿음교회 성도들이 서로 앞다투어 주님을 향해 달려나갈 때

저 뒤에서 앞으로도 뒤로도 못가고 뻘쭘히 서서 계면적인 웃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제 모습을 상상하니...

주님이 저를, 제 중심을 아시니 차마 모르신다 하시지는 않겟지만

분명 내가 잘못 살아온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사랑의 관계로, 제자로 시작해서

나름 주님을 향한 사랑이라 착각하며 목회자의 삶을 마치 전문 직업인으로 추구하며 살아온 듯한 세월이엿습니다.

 

더구나 개척한 이후

사역자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무능함 좌절감 무가치함

그리고 그 무엇보다 힘든 건

 내 안에 영혼을 사랑함이 너무도 적음과

그것이 주님을 더 깊이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라는 자책감이였습니다.

그 긴 부교역자 사모 시절 여러가지로 너무나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꿈에서도 단 한번 사역자의 길을

후회도 내려놓을 생각도 상상조차 못해 보았건만

개척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래도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귀한 남편 목사님과 달리

 저는 점 점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 사역을 내려놓아도 마음에 아무 미련이 없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그 힘든 시간동안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때그때의 변목사님의 설교들과 예언의 말씀들과 릭조이너 목사님의  "그릇된 겸손함이라는 교만"이라는 글이였습니다.

 

"너는 미약하지만 그런 네  자신을 보지말고 나의 임재안에 거하기를 배워야 한다.

자기를 보게되면 내 말을 듣지도 내게 말하지도 못하게 된다.

너는 항상 부족할 수 밖에 없고 내가 너를 부른 목적에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사용하려는 것은 너의 능력 때문도 아니고 가치 때문도 아니다.

네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말고 나의 온전함을 바라보아라

자신의 무가치함을 보지말고 나의 의를 바라보아라.

네가 쓰임을 받는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네게서 난 것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기 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곧 내 백성중에 내가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가 극히 적은 주된 원인이다.

너는 결코 네 자신을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는 믿어야 한다."

 

거의 암송하다시피 이 말씀을 되뇌이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시간들이였습니다.

언젠가 변목사님께서 설교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오랜세월을 20명 목회할 때 '주님~ 정말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줄 몰랐습니다. 정말 주님의 약속을 현실처럼 믿었습니다~'

그땐 내 꿈이, 내 비전이 내게 한이 되고 상처가 되고 아픔과 고통이였다" 고 

하신 말씀을 들으며 대성통곡하며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 자신이 산산히 가루처럼 부서지며  주님께서 저를 안밖으로 새롭게 만지고 고쳐주셨습니다.

내게 고난이 유익이였으며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주의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이니이다." 라는 시편 119편 75절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의 평가와 판단만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4. 내가 객관적이라고 알고 있던 사실들이

실은 부분적이고 상당히 편파적인 사실들이라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책속에 파뭍혀 살아 왔기에 신앙인이 된 이후로

그래도 나름 왠만한 기독교 서적은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변목사님이 추천하신 책들을 보면서 정말  놀랍게도 오분의 일도 겹치는 책이 없이 다 생소한 책들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복음주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들이였던 것 같고

대각성 이후 기독교 역사들 중에 성령의 역사나 오순절 계통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웨슬리에 대해서는 감리교의 창시자 정도로 상식선에서만 알고 있었고

챨스 피니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흥의 역사를 인간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일으키려했던

교회사에 큰 해악을 끼친 인물로 배웠기에 읽을 생각도 못해봤고

스미스 위글스워즈나 쟌 지레이크나 아주사 부흥을 이끌었던  윌리엄 세이모어 같은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지요.

 

기독교안에 이렇게 전혀 다른 신앙의 세계가 존재해 왔다는 사실과

그런 세계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사실 자체도 다 놀라운 일이였습니다.

더불어 대부분 많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신앙적인 배경과 테두리 안에서만 알고 배워왔으며

대부분 그 교리적인 입장을  진리라고 여기며 주장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처음으로 감신쪽에서 쓰여진 웨슬레의 전기나 챨스피니의 자서전을 읽으며

오순절 배경이 아닌 장로교 목사님이신 변목사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실까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그야말로 베뢰아 사람들의 정신을 가지고 공정한 마음으로 들으려 할 때만이

주님은 우리에게 바른 진리를 보고 알게 하신다는 것은

큰믿음교회의 흐름을 타면서 얻게 된 큰 변화중 하나입니다.

 

5.  큰믿음교회를 알기 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속을 드러내시기 위해 혼을 공격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부분으로

이 제목은 마이크 비클의 "예언사역의 여정" 5 단원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언제부턴가 세상에서  좋은 가치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기독교적인 가치로 덧입혀져 버려서

예수님의 성품을 덧입고 거룩과 정결을 추구하고 항상 겸손의 겉옷을 입는 것과

교양있고 고상하고 품위있고 세련되고 나이스 한 것이

때론 같은 모습일 수도 때로는 전혀 상반된 영과 혼 사이의 강력한 대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 알게된 변화입니다.

 

저의 심령이 녹아지고 갈망하고 목마를 때 저는 큰믿음 교회의 말씀을 통해 생수을 얻어마셨습니다.

그래서 큰믿음교회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렸을때의 반응은

정말 놀랍게도 그들의 심령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게 너무 달랐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갈함을 얻었으나

대부분은 사소한 언어선택의 문제나 용어의 생소함이나 익숙하지 않은 교리의 문제로 걸려 넘어졌습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려면

최소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선포된 말씀이 정말 참된 진리의 말씀을 담고 있는가 충분히 들어보아야 함에도

성도고 목사고 한두번 까페에 들어와 올려진 글의 한두토막만 보고 걸려 넘어지고

적어도 한 6개월 혹은 일년이상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야 제대로 흐름을 파악함에도

채 한두번도 끝까지 들어보지 않은 듯한 상태에서 공정하고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닌

부분적 지식과 고정관념과 개인적인  편견들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모습들...

 

"예언사역의 여정"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혼적인 부분을 상하게 하시거나 심지어 분개시키기도 하신다.

주님은 사람들의 혼을 상하게 하심으로 그들의 마음 속에서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드러내신다.

걸려 넘어지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과 겸손함이 부족하다.

우리가 하나님께 굶주려 마음을 겸손케 한다면,

이러한 거친 돌들은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목적으로 한층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여서 늘 교만하기 쉬운 저와 같은 자가 어찌 이렇게 큰믿음 교회의 흐름을 탈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이제 저희는 겸손의 겉옷,

아니 차라리 겸손의 담요로 꽁꽁 묶어달라는 간절한 고백과 함께 주님께만 촛점을 맞추고 나아갑니다.

 

몇년 전 제 자신이 합동측 목사 사모로 오랜 세월을 드러냄 없이 조용히 살면서

사역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와이셔츠 칼처럼  다리고 남편의 몸에서 광채나게 해드리는 "내조의 여왕" 전형적인 사모도 못되고

저의 삶에 주신 부르심이 너무 힘들어 주님께 너무나도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순종하겠습니다.

저는 누구이며 어떻게 제 부르심대로 살 수 있을까요~" 기도했을 때

주님은 제게 "나는 너를 장교로 불렀다" 하셨지요.

그게 무슨 뜻인지 어쩌라는 말씀이신지 도무지 그 다음은 말씀이 없으셔서

어차피 단순히 무슨 호칭이나 지위를 원한 것이 아니였기에

"네 주님~ 알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이모습 이대로 백의종군 하겠습니다." 했던 적이 있었어요.^^

 

큰믿음교회의 흐름을 타면서 비로서 주님은 제게 군사된 삶을 다시금 설레는 마음으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큰믿음교회는 단순한 성도들이 아닌

이 나라에 만연한 강력한 종교의 영을 대적하여 싸우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요 군사들을 불러 일으키는 사명으로 세워진 진리의 군대이기에

자신의 삶에 얽매이지 않는 군사의 삶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조차 내려놓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마음이 아닌 진리로 움직여야 할 군사들로서

주님께서 그 마음의 심령 깊은 곳을 드러내시며 합당한 자들을 불러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더욱 더 많은 자들의 혼을 공격했으며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단과 신학교 설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설교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목회자의 양심을 가지고 바른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늘 애썼습니다.

저희 부부가 초년병이였던 당시에는

대부분 설교들이 다양한 예화들과 주어진 본문과는 상관없는 세상적인 말이 강단에 난무하여

강해설교가 그래도 가장 본문에 충실한 성경적인 설교로 알았었지요.

저는 제 남편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기를 바라고 늘 기도하며 정말 책값은 아낌없이 지불했었답니다.

그러나 저희가 몰랐던 것,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던 것이 있었습니다.

 

변목사님의 심령을 쪼개는 강력한 말씀선포와 즉흥설교들 듣고 보는 가운데

 

말씀에 기름부으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설교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레마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

 

저희 부부는 이제 말씀을 잘한다 못한다의 개념을 버렸습니다.

그저 늘 주님의 음성,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강력한 레마의 말씀

오직 올바른 진리의 말씀만을 전하기 원하며 기도합니다.

 

지금 큰믿음교회를 향한 많은 이단 시비들은

자신과의 의견이 다르면 대부분 적으로 간주하는

흑백논리가 만연한 우리의 민족적인 정서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제사장과 같은 성직자라는 기득권과 자만으로 가득한 많은 목사들의 굳어진 심령과

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으면 마치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당한 듯이 감정이 상하여 적이 되어버리는

정적인 우리의 정서등 여러가지로  결합된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단"이라는 그 무서운 단어를 그에 합당한 절차나 성경적인 연유를 충분히 알아보지도

누구든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은 채

단순히 교리적인 이견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너무나 쉽게 이단으로  정죄하는 경솔하고 편협한 우리 장로교단들의 모습은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저희가 보수적인 합동교단에서 부흥총회로 미련없이 가고자 하는 것은

목회자 세계에도 세상과 다름 없이 난무한

학벌 추구와 명예과 명성과 지식을 추구함과 교단 배경들이

허울좋은 이름 뿐

주를 섬기는데 너무나 허망된 시간을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

그 원인이 진리를 진리대로 알지 못했던 저희 당사자의 어리석음이겠지만

그럼에도 "메뚜기가 먹어버린" 햇수를 회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바른 곳에서 바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릭조이너 목사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온전히 진리를 추구하고 전하고자 함입니다.

 

변목사님이 요즘 기독교 신문을 통해 더 유명해 지시면서^^

기독교 안에서만 살아온 우리도 앞으로 인간관계 참 많이 힘들어 지겠다 싶지만^^

서늘한 가슴 뒤로하고 성령님 모시고 주님과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남들이 많은 목사들이 이단이라고 말하기에 이단인가 고민하기 보다는

베뢰아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공정하게 들어보고 알아보고 살펴 본다면

주님이 주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며 진정한 생수로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대부흥과 대추수를 위해 준비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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