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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눈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성령강림후2주일,평신도주일/민14,20-24)

작성자충무공|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Theme 눈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Text Nmb 14,20-24

(2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1. 벌써 6월 첫 주일이 됐습니다. 늘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요즘은 정말 매일이 새로운 뉴스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뉴스를 보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지난 주에 지방 선거가 있었는데, 같은 결과를 두고 해석은 제각각입니다. 누군가는 박수하고 환호하는 결과이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의 눈물을 흘리는 결과일 것입니다. 당선자들이 자기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당선자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보는 세상사는 늘 자기 생각에 따라 환호와 한탄이 교차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세상은 누가 뭐라든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같은 시대,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달라져야 합니다. 요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기독교는 지나치게 정치 선동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누구든 잘 하는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지, 여당 혹은 야당 편을 들어 무조건 내 편이 이기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내 편이든 아니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사람이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눈이 있습니까?

  오늘 성령강림후 제2주일과 평신도주일을 맞아 본문에 나오는 갈렙 이야기를 통해 눈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왕도 지도자도 아니었던 평신도 갈렙처럼 훌륭한 평신도들이 되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20-22절을 봅니다. “(2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13-19절에서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말씀입니다. 열두 명의 가나안 땅 정탐꾼들이 하는 정탐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열 명의 다른 정탐꾼들과 다른 말을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하는 순간, 회막에 하나님이 영광이 나타나 온 회중에게 보였습니다. 영광과 함께 모세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는데, 하나님을 멸시하는 그들을 전염병으로 쳐서 멸하고 모세에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시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14,17)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라고. 20-22절은 바로 이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말씀입니다.

  22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이라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적으로 말하는 열 명의 정탐꾼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9)라고 하는 말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서도 열 번이나 하나님을 불신하는 짓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해 앞에서 그랬고,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3일밖에 안 됐을 때, 마라에서 마실 물이 없다며 원망했었습니다. 죽일 데가 없어서 홍해 바다 속에 빠져 죽이려 하느냐고 했고, 광야까지 끌고 와 죽이려 하느냐고도 했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셔서 마시기도 하였으며, 만나를 주었더니, 나중에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했으며, 메추라기를 먹게 해줬더니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어서 지겹다고 또 원망을 했습니다.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라 하였지만 욕심과 의심으로 이틀치 삼일치를 거두었다가 벌레가 나서 썩는 일이 있었고,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치를 거두어도 벌레가 나지 않는다 했건만, 또 믿지 못하고 안식일 날 거두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적을 체험했지만 많은 기적 체험 후에는 거의 매번 하나님을 원망하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늘 육신의 눈으로 현실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정확히 말하면, 틀린 정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거대한 성읍, 강한 사람들, 견고한 방어 등은 현실이었습니다.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육신의 눈으로 보기만 하면, 그 해석도 당연한 해석이 맞습니다. 육신의 눈은 언제나 이렇게 작동합니다. 문제는 크게 보고, 자신은 작게 보고, 하나님은 아예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이 무너집니다. 거인 앞의 메뚜기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같은 것을 보았는데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보았고, 열 명의 정탐꾼도 같은 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왜입니까? 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눈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그러면, 우리의 눈은 바뀌었습니까? 현실을 넘어, 믿음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눈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바뀌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그런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후4,6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으로 눈에 보이는 이상의 것을 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24a을 봅니다.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하나님은 갈렙을 내 종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갈렙은 내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을 멀리서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르는 사람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 종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또한 소유관계를 말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신뢰의 선언입니다. 성경에서 은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불신의 보고를 했을 때, 갈렙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렙을 그렇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내 말을 믿고 대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종의 의미입니다.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이라고 했습니다. 갈렙의 눈은 현실보다 하나님을 먼저 보았습니다. 같은 땅이지만 결론이 달랐습니다. 열 명의 눈에는 거인이 보였는데, 갈렙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눈이 바뀝니다. 믿음의 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은 자기 자신도 바로 보게 합니다. 갈렙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않았고, 과소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믿음의 눈은 이렇게 바꿉니다. ‘나는 충분하다에서 나는 부족하다내가 한다에서 하나님이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16,17에서 자신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후12,9-10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은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숱한 기적을 경험할 때, 기적 그 자체에만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기적을 통하여 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구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탁으로 잠시 자신의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육지에서 약간 떨어지게 한 다음 모여든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신 후에 배를 빌려준 베드로에게 사례를 할 양으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더니 밤새 수고하였어도 고기 구경도 못했었는데 그물에 가득차 혼자 끌어 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 기적 앞에서 많이 잡힌 물고기, 그 물고기로 인하여 벌게 될 큰돈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돈과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알아 과장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같은 땅을 보았지만 다른 결론을 내렸던 갈렙처럼 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갈렙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함께 하신다.’라는 사실을 믿게 해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 신앙의 출발점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두려움보다 약속이 크게 보입니다. 갈렙처럼, 믿음도 있었지만 무모하지도 않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거인도 보고, 전쟁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종이 되십시오. ‘내가 강해서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눈이 하나님을 향하면 현실이 두려움이 아니라 약속이 되고, 눈이 자신을 향하면 삶이 불신앙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제 눈을 바꾸어 주옵소서.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여 우리의 삶도 갈렙처럼 바뀌는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아멘.

 

4. 마지막으로 24b를 봅니다.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가 갔던 땅은 갈렙이 정탐꾼으로 가서 보고 하나님이 주시면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땅입니다. 그 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들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성경은 들어가리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여 들이리니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내 믿음으로 내가 강하여져서 나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주님의 도우심, 성령의 인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갈렙이 들어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한순간 울컥하는 어떤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갈렙은 가나안을 향하는 험한 길을 끝까지 걸었습니다. 갈렙의 가장 위대한 점은 시작이 아니라 끝에 있습니다. 정탐 사건 이후 광야 생활이 시작됩니다. 무려 40년입니다. 갈렙은 하루아침에 약속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기다려야 했습니다. 견뎌야 했습니다. 분투해야 했습니다.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성도의 싸움도 비슷합니다. 하루의 승리가 아니라 평생의 충성이 중요합니다. 좁은 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순례길입니다.

  여러분, 갈렙은 훌륭한 평신도의 모델입니다. 갈렙은 특별한 직분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믿음 때문에 기억됩니다. 성경은 그의 학력이나 재산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합니다그가 온전히 여호와를 따랐더라.” 훌륭한 평신도는 직분보다 충성이 중요하고 능력보다 순종이 중요하며 자리보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갈렙 같은 성도를 통해 세워집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평신도란 어떤 성도입니까? 상황보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또한 맡겨진 자리에서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해, 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갈렙처럼 훌륭한 평신도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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