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 |||||
| 글쓴이 | 이동민 | 날짜 | 2011-01-13 | 조회수 | 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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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비평이라 하면 결점을 찾아내어 비난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비평하다(criticize)라는 말의 어원은 판별하다 또는 선별하다,라는 의미이다. 판별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 ‘비평하다’라고 하면 대상물의 가치 판별을 말한다. 따라서 예술비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은 가치 판정 즉 평가이다. 가치 평가는 작품이 미적으로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하려는 본능도 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읽고 관심과 태도를 표명하는 행위가 바로 비평적 행위이다. 우리가 수필을 읽으면 독자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와 없다, 또는 잘 쓴 글이다. 시시하다, 등의 태도를 보인다. 비평은 바로 독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 독서 행위가 시작인 것이다. 태도의 표명에는 ‘왜’라는 질문이 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따른다. 이렇게 질문함으로 시작한다. 대답에는 독자로서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 그리고 분석하고, 판단한 것이 내용이 된다. 그렇다면 비평의 기능은 해석과 판단이 되고, 비평하는 일은 평가적 활동이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야 하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비평에는 ‘지적 독서’가 필수적이다. 다음에는 의미의 내용을 독자를 위해서 진술해야 한다. 평가와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용을 언어나 문서로 나타내야 함으로 평가는 또 하나의 언어 행위이다. 비평가가 의미를 해석할 때는 해석의 기준이 되는 ‘예술적’이라든지, ‘미적’이라고 하는 것의 개념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개념은 비평의 핵심이 된다. 문학 비평도 말할 필요도 없이 미학이나 문예학의 이론들이 규준이 되어야 한다. 예로서 작가의 행위가 비도덕적이라는 판단 때문에 작품 자체를 나쁘게 평가하는 것은 비평의 오류이다. 작가의 비도덕성과 작품의 의미를 미적 혹은 예술적 개념으로 해석하여야만이 비평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수필 읽기에서 자주 만나는 문제가 작가 = 화자 = 주인공이라는 도식으로 작가의 인격을 거론하는 일이 종종 있다. 가치 판단에서 작품과 작가를 구분하여야 한다. 독서를 좀 더 근본적인 이유로 따진다면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이다. 우리에게 유해하지 않는 오락으로서 즐기기를 하는 것이지만 세련된 태도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글을 읽고 작품의 가치를 따지는 일은 다분히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비평은 작품의 가치를 해명하는 작업이다. 비평은 가설적인 개념을 근거로 함으로 수정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왜냐면 비평의 근거가 되는 가설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평가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면 가치는 증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평가 가치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우리가 작품을 평가할 때는 지적 접근을 하여야 한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의 평가는 작가에는 자극이 되고 일반 독자에게는 작품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 우리 수필의 문제점으로 비평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신재기) 비평을 할 때는 학문적 원리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수필 비평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전문 비평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소위 수필 대가라는 원로 수필가들이 비평을 담당하고 잇는 것의 우리 수필계의 현실이다. 비평가가 아닌 원로 수필가가 하고 있는 수필 비평은 거의가 감상 비평이다. 문학은 단순히 정보 전달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고 감동을 주는 예술 행위이다. 감동적 언술을 구사함으로 독자가 감상을 하도록 한다. 감상은 작품을 이해하고, 즐긴다는 뜻이다. 감상은 작품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총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낀다. 감상은 작가가 체험한 세계를 독자의 입장에서 체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상은 논리적인 분석이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체험한 미적인 경험을 함께 이해하고 감동하는 문학의 기능에 충실하게 따르는 행위이다. 비평이란 감상의 단계를 거치고 난 뒤에 평가에 이르러야 한다. 감상주의 비평은 독자의 주관주의 감상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가에 이르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로 수필가들이 하고 있는 감상 비평은 극히 주관적인 감정에 의존함으로 적절한 원칙에 의하여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러므로 수필 비평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오류를 저지르므로 유해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감상은 작품을 직관에 의하여 전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비평은 부분적인 요소들을 분석하여 전체 가치를 추론해 낸다. 비평가는 부분을 분석할 때도 전체라는 맥락에서 고려해야 한다. 수필을 예로 들면 단락들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면서 전체를 형성한다. 비평을 전체와 연관시키지 않고 세부 사항만 지루하게 나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평이란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분석하고 판단할 때는 반드시 가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비전문가인 사람들에 의한 감상 비평이 비난 받는 이유는 작품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의 평가에 관한 비어즐리의 주장을 들어보자. 문학에는 일반적으로 인식적 가치와 미적 가치가 있다. 문학에서는 미적 가치보다는 인식적 가치를 좀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식적 가치와 미적 가치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고, 이 둘은 전체로서 통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감동을 주는 동시에 의미도 담고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것에 관심을 유도하여 깨닫게 한다. 깨달음을 통하여 흥미롭고 가치 있는 진실을 의식하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의미가 있는 반성을 함으로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식별력을 길러 준다. 결과로서 독자는 자신의 현실을 연장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한다. 수필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면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이때의 감동은 주관적이다. 내가 감동을 받았다 하여 다른 사람도 감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경험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반응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글을 읽고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 하였더라도 미리 정해져 있는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도 있다. 이런 경우도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평가할 때는 주관적인 관점을 벗어날 수 없지만 보편성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문학 작품을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잣대로 삼는 원칙은 진실성의 문제, 효용성의 문제, 독창성의 문제, 그리고 통일성의 문제를 꼽는다. 특히 수필에서 진실성이란 가장 중요할뿐더러 대표적인 명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진실의 기분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는 평가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다. 진실성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독자가 체험으로 습득한 진실의 개념이 수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이상적인 가치만을 잣대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진실이라는 잣대도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이상적인 가치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진실 속에는 추한 면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적으로 아름답다는 것과 진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미를 추구하는 수필에서 추를 진실로 표현하였을 때의 평가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하는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는 뜻이다.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문학 작품의 효용성이란 바로 쾌락과 교훈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감동을 느꼈을 때는 독자들은 재미있다고 말한다. 독서를 하고 감동을 받게 되면 독자는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독창성은 작가만이 지니는 특징적인 요소가 된다. 독창성은 개성적이고, 창조성이며, 다른 작가와 변별성이 된다. 작품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필 읽기에서 이 사람의 작품이나, 저 사람의 작품이나 구분이 안 될 때는 독창성으로 평가할 수 없다. 수필은 전체적으로 하나로 통합되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주는 것은 주제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