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 생의 지문
“이거 들고 있어.”
만조 아재의 말은 짧았다. 명령이라기보다 거역할 수 없는 생의 당위에 가까웠다. 고깃덩이가 지푸라기에 뱅뱅이 동여매진 채 아이의 손으로 넘어왔다. 뜨뜻 미적지근했다. 그것은 생명의 열기가 막 빠져나가기 시작한 묵직한 허물이었다. 지푸라기 매듭 사이로 배어 나온 핏방울이 아이의 손가락 마디를 넘어 손등 위로 눅진하게 번졌다. 아이는 무서움보다 그 생경한 무게에 눌려 손을 뺄 수가 없었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으로 지푸라기에 엉겨 붙은 핏기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죽은 짐승이 산 아이에게 건네는 마지막 박동, 세상이 건넨 첫 번째 악수였다.
일행들과 함께 삶의 비린내가 왁자하게 끼치는 대폿집으로 들어선다. 시장의 저녁은 안개처럼 밀려든다.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온 희뿌연 수증기가 골목의 비릿한 냄새와 뒤섞여 낮게 깔린다. 붉은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맡기고서야 비로소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녹아든다.
“여기 막걸리 두어 병 주소, 돼지머리 한 접시하고.”
투박한 주문 소리가 술청 안의 소음 위로 툭 떨어진다. 주모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핏기 가시지 않은 수육을 수북이 담아 내온다. 반세기도 훌쩍 지난 그 핏기가 세월을 관통하여 지금 양은 쟁반 위에서 다시 김을 올리고 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린 육향 속에 아재의 목소리가 다시 세월을 건너온다.
“무서워 마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잉께.”
아재의 칼날은 살과 뼈 사이를 갈랐다. 쇠붙이는 차갑고 고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그의 손길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짐승의 몸속에 나 있는 길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칼은 결을 헤치는 대신, 이미 나 있는 길을 달구치며 더듬어 나아갔다. 소멸을 집도하는 능숙한 손길이었다. 그것은 비정함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자의 정직한 노동이었다. 그 칼끝에서 생명은 해체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분절은 누군가의 생을 연장하는 숭고한 성찬이 되었다.
자신을 허물어 누군가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 그것은 죽어가는 존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뜨겁고도 정직한 마지막 헌사다. 그 숙명적 희생 앞에서, 다른 생의 주검을 삼켜야만 유지되는 나라는 존재는 과연 정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결국 혀와 식도다. 숨탄것들은 서로의 몸을 빌려 지탱하는 지독하고도 정직한 순환이기 때문이다.
안방 윗목에서는 흑백 영정 속 할아버지가 잠잠히 내려다보고 있고, 처마 끝에서는 어미 제비가 새끼들의 노란 입속으로 벌레를 밀어 넣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보지 않은 채 각자의 보폭으로 가지만, 결국 같은 공기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고샅 대문을 타고 넘어온 고모의 통곡이 낮은 마당을 무겁게 휘감았다.
"애고 오빠, 이리 가불면 어쩔꼬... 애고 어쩔꺼나."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곡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목청이 낮게 끼어들었다.
"산 사람은 그래도 배를 채워야 하는겨. 가서 뭐 좀 먹어라잉."
애상을 뚫고 나오는 허기, 그것은 생존의 가장 솔직한 선언이었다. 죽음의 비애조차 허기를 이기지 못하는 그 민망한 생명력이 외려 눈물겨웠다. 그때 마당 가의 이팝나무 꽃잎 몇 점이 핏물 위로 하르르 떨어졌다. 하얗게 질려 있던 꽃잎이 짐승의 붉은 피를 머금고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꽃은 비로소 허공의 가벼움을 지우고, 고기의 무게와 피의 기운을 입은 채 핏물 속에 발목을 담갔다.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뿌리의 수고보다 눈앞의 화려한 꽃잎에만 매달리는가. 나의 내면에도 누군가의 핏물로 붉게 물든 꽃잎 한 장이 가라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사람아, 고기 다 식네그려. 뭐 해?”
일행의 핀잔이 묵은 세월을 툭 깨운다. 수육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기름진 고소함이 입안에 번진다. 속이 뭉근하게 데워지며, 오래전 아재가 내밀었던 그 미적지근한 핏물의 기억도 함께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고기 한 점의 무게가 저릿하게 엄숙하다. 모든 생명에게 빚진 채 살아야 한다는 자각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빛바랜 양은 술잔을 부딪친다. 잔을 쥔 손등에는 세월이 남긴 검버섯과 굵은 마디가 서럽게 투박하다. 핏덩이를 움켜쥐느라 하얗게 질렸던 아이의 작은 손가락은 이제 비린 생을 단단히 움켜쥐는 거친 손이 되어 있다. 아재가 칼끝으로 읽어냈던 생의 길을, 이젠 내가 이 거친 손등의 주름으로 읽어내고 있다. 마디마다 들어앉은 굳은살은 그 너덜한 세월이 눌러쓴 생의 무늬일 테다.
대폿집 문을 나선다. 시장통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무심하게 감싼다. 입술에 남아 있는 끈질긴 잔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살아낸다는 게 다 이런 비린내 아니겠어.”
일행의 농에 설핏한 웃음이 세월의 골을 타고 번진다. 이제 생의 복판을 피하지 않겠다. 꽃은 제자리에서 가벼운 향기를 내뿜으며 고결함을 지킨다. 그러나 사람은 그와 달리, 고기 한 점의 무게를 버티며 내일이라는 길을 향해 걸어간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가 허공에서 바스러지는 마른 기억이라면, 폐부에 고인 이 비릿한 진액은 세월의 밑바닥에 눌어붙은 생의 인장이다. 세상은 이를 비린내라 부르겠지만, 생의 한복판을 정직하게 관통해 온 이들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체취다. 이제 이 비릿함을 기꺼이 수긍하련다. 이것이 흙을 움켜쥔 뿌리가 끝내 밀어 올린 생의 얼굴이자, 내 거친 손등에 새겨진 정직한 지문이기 때문이다. 입술에 남은 이 질척한 기척을 삼켜, 내 생의 남은 허기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