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이 견고한 세상이 어느 날 아침,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공상 말이다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그 막연한 공포를 기발하고도 서글픈 상상력으로 현실화한다.
우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지구가 단 10분 만에 철거되는 순간, 외계인 친구 포드는 당황하는 아서에게 맥주 3000cc를 시키며 말을 툭 던진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야." 이 말은 냉소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우리가 아등바등 지켜온 시간과 역사가 우주적 관점에서는 한낱 우회로를 만들기 위한 행정 절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 앞에서 인간의 실존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는다. 대신 세 개의 장면을 차례로 펼쳐 보이며, 우리 스스로 그 답의 윤곽을 더듬게 만든다.
첫 번째 장면은 의미의 붕괴다.
우주 어딘가에 행성을 주문 제작하는 노련한 사업가가 살고 있다. 히말라야의 능선을 만들고 노르웨이의 해안선을 디자인하는 신과 같은 존재지만, 정작 자신의 삶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고백한다.
"인생의 참 의미를 알아낼 가능성은 희박해요. 그래서 난 현명해지기보다 행복해지기로 했죠."
하지만 그조차 "행복하신가요?"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라고 외치며 괴로워한다.
이는 우주 최고의 슈퍼컴퓨터 '심오한 생각'이 수백만 년을 계산해 내놓은 삶의 정답이 '42'라는 어처구니 없는 숫자였던 것과 맞닿아 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가장 위대한 지성도, 가장 신적인 존재도, 의미라는 질문 앞에서는 결국 손을 들고 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 장면은 감각의 복권이다.
지구가 소멸할 때, 아서가 간절히 복원하고 싶었던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었다. 그저 집 앞의 낡은 정원이었다.
은하수를 떠돌던 우주선 안에서 그를 울게 만든 것도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 잔의 홍차 맛이었다. 외계인 포드 역시 지구의 평범한 음식들이 주는 풍미에 감격해 눈시울을 붉힌다.
지구가 통째로 사라진 마당에 고작 홍차와 음식에 감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처음엔 어이없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어이없음이 진실을 건드린다.
삶의 본질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미각과 촉각'에 있다는 것. 의미를 찾는 일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면, 감각은 우리를 다시 살아있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감각만으로는 아직 무언가 빠져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사랑의 선택이다.
안내서에는 "사랑은 너무 복잡하니 가능하면 피하라"고 적혀 있다. 효율과 논리가 지배하는 관료주의적 우주에서, 사랑만큼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서는 그 복잡한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
"내 머리는 질문으로 가득 찼지만, 그 답 중 어느 것도 행복을 주진 못했다. 단 하나, '그녀가 내 사랑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 빼고.“
수많은 철학적 질문에 '42'라는 허무한 답을 내놓는 우주에서, 이 질문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답을 가진다. 우주의 기원을 아는 것보다 내 곁의 존재가 내 사랑인지를 확인하는 것. 그 대답 하나가 우리를 살게 한다.
세 장면은 이렇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의미는 붕괴하고, 감각이 우리를 깨우며, 사랑이 우리를 붙잡는다. 이것이 영화가 'Don't Panic(당황하지 마라)'이라는 다정한 문구를 표지에 내건 이유다. 우주라는 거대한 무작위성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단 하나의 좌표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아서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우주 저 끝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 시간의 종말 앞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홍차 한 잔에 눈물 흘릴 줄 아는 그 사소한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예술미가 아닐까.
인생의 의미를 찾느라 지쳐버린 히치하이커들이여, 너무 당황하지 마시라. 정답을 몰라도 홍차는 따뜻하고, 사랑하는 이의 손은 잡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