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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금, 금, 금 / 김정옥

작성자이혜연|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금, 금, 금

 

 

 

 

 

 

 

 아파트 주변 샛길이 새 단장을 했다. 울퉁불퉁하던 길을 평평하게 고르더니 덩치 큰 차가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아스콘 한 더미를 부려 놓았다. 며칠 뜨겁게 달구었던 길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새카만 바닥에 반듯반듯하게 금이 새로 그어졌다. 직선으로 쭉 뻗어 가다가 사이사이에 점선이 나타나더니 두 줄짜리 겹 금도, 삐쭉삐쭉한 번개 모양 금도 보였다. 금뿐이 아니었다. 흰빛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세모, 네모에 오른쪽, 왼쪽으로 목이 꺾인 화살표도 있었다. 검정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이 두드러져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눈에 확 뜨였다.

 

 검은색 종이에 도로 위의 갖가지 금을 한자리에 모아 놓는다면, 목만 뎅강 있는 피카소의 뿔 달린 <염소 머리>처럼 요상하지 않을까. 도로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교통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니 삼가고 지켜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어릴 때 땅바닥 위에 금을 그어 놓고 사방치기하던 생각이 난다. 납작한 돌멩이를 던져 그어진 금 안에 넣고 외발로 팔짝팔짝 뛰어 던져 놓았던 돌멩이를 도로 집어 오는 놀이이다. 깨금발로 콩콩 뛰어넘다가 금을 살짝 밟아도 친구들이 죽었다!’ 하며 난리다. 놀이에 지고, 이기는 것이 삶에 전부였던 그때, 땅바닥에 그어 놓은 금이 친구보다도 중요하다. 금이 게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고 약속이다. 마치 오늘날 도로 위의 금처럼.

 

 땅바닥에 친 금의 힘이 대단하다. ‘제한 속도를 넘지 말라, 앞지르지 말라, 이곳에 차 세우지 마라.’ 색깔로, 모양으로 주의를 주고 경고한다. 미처 신경 쓰지 않고 넘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이 금인 이유이다. 지난번에, 지방경찰청에서 내게 날아온 과태료도 그랬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분명히 바닥에 금으로 표시해 놓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가라고 일렀건만 정신이 어디에 팔렸는지 그걸 어겼다. 금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현금 손실을 가져왔다. 일반 도로의 과태료보다 두 배나 비싼 큰돈을 생으로 날리고 며칠 동안 부글부글 생배를 앓았다.

 

 사람살이에서 대부분 언짢음과 불편함은 금을 넘는 일로 일어난다. 누구는 이쯤에서 넘어와도 좋다는 점선이 누구에게는 넘어서면 안 된다는 실선과 부딪히는 마찰 때문이다. 실금을 긋든 점금을 긋든 본인의 마음이다. 하지만 가끔은 실금이었다가도 슬며시 점금으로 바뀌고, 점금이었다가 실금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슬몃슬몃 여유로움을 부리면 쓸데없이 실랑이하고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을 텐데.

 

 금을 밟았다. 아니, 한 발이나 불쑥 내밀었나 보다. 처음엔 금이 처져 있는 줄 몰랐다. 도로 위의 금처럼 눈에 확 뜨이면 밟을 일이 있겠는가. 금을 밟고 나서야 그 사람이 몹시 언짢아하는 것을 알았다. 아차 싶어 들이밀었던 발을 얼른 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 전으로 시계 초침을 돌려놓고 싶었다. 금을 넘은 내 잘못이었다. 도로 위에 금을 넘은 건 금전으로 해결되었지만, 마음의 금을 넘으면 상처가 되었고 돌이키기가 쉽지 않았다. 길 위에 그어 놓은 금처럼 마음의 금을 넘지 말라고 알려 주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이에선 곧잘 금을 넘는다. 도덕경에 다언삭궁多言數窮이면 불여수중不如守中이니라.’는 구절이 있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는 뜻이다. 사람이 친 금을 넘지 않으려면 말을 금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우선이리라.

 

 교차로에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진하게 그어 놓은 굵은 금이 보인다. 금을 잘 따라오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안내 금이다. 이렇게 친절히 유도하는 금 덕분에 복잡한 도로에서의 사고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내 삶의 길에도 형광빛 굵은 금 하나 그어져 있으면 우왕좌왕 헤매지 않을 텐데.

 

 내 마음에 금을 친다. 급하게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지그재그 금을 긋는다. 메마른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로 넘나들도록 이곳저곳에 넉넉하게 점금을 부려놓는다. 이기심과 삿된 마음은 꽁꽁 여며 찐한 실금을 두른다. 가장 두려워야 할 탐심에는 더욱 강력한 이중 실금을 긋는다.

 

 선명했던 땅바닥 위의 금이 따가운 햇살과 데굴데굴 굴러간 차바퀴와 사람들의 자국으로 점점 흐릿해진다. 짙은 녹색으로 쳤던 내 마음에 금도 시금치 데쳐낸 물색처럼 점차 연해진다. 새로 단장한 도로 위에 금을 새로 긋듯 내 마음의 금도 다시 긋고 잼처 마음을 다잡는다.

 

 사거리 교차로 교통신호에 걸려 정지선 앞에 섰다. 보행 신호가 켜지자, 사람들이 금을 따라 걷는다. 금이 보이는 길을 건너며 금이 보이지 않는 세상 속으로 걸어간다. 나도 성큼성큼 들어간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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