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삶은 모래색:
영화《아름다운 것은 먼 곳에 있다 (Everything Beautiful is Far Away)》
인간은 늘 ‘여기’가 아닌 ‘저기’를 갈망하며 산다. 지금 발 딛고 선 자리가 비루할수록, 가보지 못한 낙원의 신기루를 쫒는다.
영화《아름다운 것은 먼 곳에 있다(Everything Beautiful is Far Away)》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 미니멀 SF 판타지이자, 그 신기루를 쫓는 영혼들을 향한 시각적 은유와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레너트는 외딴 사막 행성에서 로봇 머리 수잔과 함께 낙원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우연히 수정 호수를 찾아가는 여자 롤라를 만나 동행하게 된다.
물 한 모금조차 귀한, 사막이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두 젊은 남녀와 로봇이 나누는 인생관은 기묘하면서도 서글픈 공명을 일으킨다.
특히 인간의 불완전함과 상처는 수리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라고 충고하는 로봇 수잔의 말은 전류처럼 온몸을 훑어 내린다. 로봇이 인간에게 던지는 충고가 서늘하다.
그들은 비어 있는 사막에서 역설적인 진리를 논하기도 한다.
“때로는 잃어버린 것만이 우리를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한다”거나, “먼 곳을 보느라 발밑의 모래알이 반짝이는 걸 잊고 있었다”는 자각들.
이는 거창한 목표에 매몰되어 일상의 섬세한 감각을 놓치고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길을 안내하던 로봇 수잔의 배터리가 방전되자 두 사람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는다.
목이 타고 모래바람과 태양열에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고집하며 충돌한다. 가파른 모래언덕 앞에서 우회할 것인지, 곧장 넘을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다툼은, 목숨 지닌 존재들이 일으키는 실존의 소음이다.
수많은 모래언덕을 넘고 넘어 마침내 마주한 수정 호수는 경이롭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듯한 몽환적인 푸른 빛. 수만 마리의 백마 떼처럼 하얀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파도.
영화 내내 건조하고 황량한 ‘모래색’에 갇혀 있던 관객에게 이 푸른 빛은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자아가 해체되는 듯한 환각을 선사한다.
죽음과 고독을 상징하던 갈색이 생명의 푸른색으로 무한 확장되는 찰나, 레너트와 롤라의 내면적 갈증은 비로소 해소된다. 그곳이 그들이 찾던 실제 낙원인지, 아니면 그들의 마음 상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금 도시로 돌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그들이 만난 또 다른 남자. 이전의 자기가 싫어 무작정 사막으로 떠나온 그 유랑객은 수정 호수와 반대로 길을 떠났다. 함께 가자는 권유를 뿌리치고 홀로 걸어간 그 남자와, 호수를 찾은 레너트와 롤라. 그들 모두 완벽한 무언가를 찾아 가장 먼 곳을 헤매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가장 가까운 ‘서로’의 존재였다.
“인생의 빛깔을 말한다면, 모래색”이라는 레너트의 대사는 풍파에 부서지고 깎인 결과물로서의, 풍화된 자아가 내뱉는 자기 고백이 아닐까. 그토록 애타게 쫓던 욕망이 비워진 허허로운 내면의 소리랄까.
신기루는 우리를 계속 걷게 만드는 추동력이지만,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모래알의 꺼끌거리는 촉감과 곁에서 함께 숨 쉬는 동행자의 온기다.
아름다운 것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삶이 모래색인 이유는 그것이 척박해서가 아니라,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생의 순간들이 우리 발밑에서 이미 반짝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