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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사랑이라는 부정의 변증법 / 황경원

작성자이혜연|작성시간26.06.18|조회수20 목록 댓글 0

 영화 에세이

 

 

사랑이라는 부정의 변증법: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

 

 

 

 

 

 ‘나를 붙잡아줘요, 난 조금 흔들리고 있으니까요... Hold on to me, 'cause I'm a little unsteady...’

  - ‘Unsteady’ / X-Ambassadors

 

 흔들리는 생의 한복판에서 누군가 건네는 나를 붙잡아달라(Hold on to me)는 절규는,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지독한 부정의 암시인지도 모른다.

 

 파도 소리에 젖은 야자수가 열을 지어 서있는 모리셔스 해변의 밤. 낭만적인 밤바다를 배경으로 윌과 루이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루이자는 휠체어에 앉은 윌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댄 채,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 한다.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요. 파리의 한밤중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같은 대단한 인생은 아닐지 몰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루이자의 목소리는 따사롭고 평이했지만, 그것은 사랑의 고백이자, 윌이 결심한 죽음을 되돌리려는 간절한 청원(請願)이었다.

 그러자 한껏 밝은 모습의 윌의 눈빛이 돌연 차갑게 변했다.

 “아뇨, .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아니에요. 난 예전의 내 인생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고통과 피곤함이 지겹고, 아침마다 죽기를 바라며 깨어나는 것도 싫어요. 난 더 나아지지 않아요.”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화두를 던진다.

 

 런던의 유능한 사업가이자 만능 스포츠맨으로, 30대 초반에 모든 것을 가졌던 남자 윌 트레이너. 어느 날 그는 예고 없이 들이닥친 오토바이 사고로 전동 휠체어 없이는 한 뼘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잔혹한 운명은 단 한순간에 그의 삶의 지평을 무너뜨렸다.

 

 루이자는 윌의 요양보호사로 취직했지만,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고 거부하는 윌은 다가갈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새벽마다 마비된 육체의 통증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윌은 오로지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만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부모의 사랑과 루이자의 관심은 자신을 옭아매는 밧줄일 뿐이었다.

 

 루이자는 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클래식 음악회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모리셔스로의 여행까지 촘촘한 여정을 차례대로 실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윌의 결심은 더욱 더 견고해진다.

 루이자가 윌을 살리려 애쓸수록, 윌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부정당하는 또 다른 구속으로 여겨졌던 것일까...?

 여기서 나는 미궁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신이 부여한 생()을 인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진정 죄악인가? 만약 그렇다면, 신은 왜 우리에게 이 위태로운 자유의지를 허락한 것일까?

 운명은 신의 영역이지만, 그 앞에서 참나를 지키려는 인간의 주체성이야말로 신이 준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닐까?

어쩌면 진정한 신의 뜻은 무기력한 인내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쉼표와 마침표를 찍을 권리를 우리 의지 속에 숨겨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윌은 스위스로 떠난다. 슬픔에 빠져 있던 루이자는 뒤늦게 스위스의 병원으로 달려간다.

 곧 지구별을 이륙할 하얀 우주선에 탑승한 윌의 곁에는 링거병이 엄숙한 성주(聖柱)처럼 서 있다.

 루이자는 윌의 품에 안겨 따스한 미소를 짓는다. 윌의 표정은 비현실적일 만큼 평온하고 투명하다.

 그것은 부정의 변증법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루이자는 윌을 곁에 두려는 자신의 욕망을 부정함으로써 윌의 존엄을 긍정하게 되었고, 윌은 자신의 현존을 부정함으로써 본래적 자아를 긍정하게 된 것이다.

 사랑은 때로 상대를 내 곁에 묶어두는 밧줄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먼 바다로 떠나보내는 슬픈 축복이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이 별리와 배웅 장면을 나는 이따금씩 가슴 속에서 꺼내 본다.

 사는 게 숨이 차거나 관계의 상처로 외로워질 때, 윌이 루이자에게 남긴 유언을 떠올려 본다.

 

 “그냥 살아요. (Just live.)”

 

 그 실존적 응원을 주문처럼 되뇌이다 보면, 마음결이 절로 순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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