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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창작이론

위기 이후의 질문들

작성자이혜연|작성시간26.06.06|조회수21 목록 댓글 0

 

 

 

 

 흔히 요즘 글에는 감동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글을 쓰고 있다는 의미이다. 작품에 필요한 경험은 인터넷을 통해 보완한다. 제작(?)은 마치 공장에서 제시된 분량의 재료를 집어넣으면 모양 좋은 상품이 나오는 것처럼 작품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 넣고 기계적으로 돌리듯 한다. 그러면 그럴듯한(?) 문학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레시피만 있으면 만들지 못할 상품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요즘 글은 레시피만 있고, 작품이 환기하는 감동이 없는 글들이 많다. 그야말로 못 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존의 작법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깊은 고뇌와 사색과 경험의 과정은 생략된 채 기교만 습득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그만인 세태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문단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사회를 지탱해온 거대 담론의 삶의 가치들이 무너지고, 그 고유 가치들이 교환 가치로 바뀌게 된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은 굳이 무형의 고유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설산을 오르는 고행을 감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나가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굳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해 자신만의 고유의 영역을 확보해 가는 경험을 중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클릭 한 번으로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굳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루소가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주체의 본성으로서의 자유를 지닌 존재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즉 인간은 주체로서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자기 서사가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상이 습관적으로 지속되면 자기 서사는 삶의 패턴 속에 묻히게 된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자기 서사는 반복되는 일상과 생각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덮여버린다. 따라서 자기 서사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평범한 일상의 흐름을 뚫고 흐르는 강렬한 순간들을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삶에 예민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지점이 바로 문학의 출발점이다.

 

 수필은 내가 관심 있는것을 채집하고 만나고, 찾아,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물론 인간은 모든 서사를 독자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때로는 남의 좋은 점을 모방하기도 아고,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한 베껴쓰기나 답습이 아닌, 어떤 대상을 따라야 하고 반복하되 거기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차이 속에서 사유를 통해 자기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오늘날은 수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인칭 글쓰기의 전성시대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부르짖는 리어왕의 자문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나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한 수행적 효과는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재해석되고, '나'라는 정체성, 즉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유인실 평론집 <<풍경과 시선, 그리고 재현>> 수록 <위기이후의 질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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