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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창작이론

모이라; 인간에게 주어진 몫 / 김은중

작성자이혜연|작성시간26.06.12|조회수21 목록 댓글 0

 

 

개념의 운명, 서양사상의 핵심어 읽기 (1)

 

 

모이라; 인간에게 주어진 몫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의 근원을 묻기 전에 자신의 몫을 물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내 몫은 얼마인가요?" 이것 때문에 임금투쟁도 하고 하루에 1조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반도체 생산 라인을 멈추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몫에서 초연할 수 없다.

 

 몫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장례가 있던 날 죽은 이를 땅에 묻으며 살아남은 자가 품었을 질문이었을 것이다. "왜 너는 가고 나는 남았는가? 네 몫은 어디까지이고 내 몫은 어디까지인가?"

 

 희랍사람들은 이 몫을  moira라고 불렀다. 모이라는 "나누어 가지다', '분배를 받다'라는 동사인 meiromai에서 나왔다.

 

 그래서 모이라는 인간에게 나누어진 몫, 주어진 분수, 배당된 것을 뜻한다. 잔치에서 고기를 나누어줄 때 '네 몫' '내 몫' 하는 것이 그 몫이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차등의 몫이 모이라이다. 모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배당된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제9권을 보면 아킬레우스가 어머니 테티스에게서 들은 자신의 두 가지 모이라를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가지 모이라가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하기 때문이오.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인들의 성벽을 둘러싸고 싸운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길은 없어지나 나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에 남아 싸우다 죽지만 영원한 명성을 얻는 짧고 명예로운 삶과 고향으로 돌아가 명성 없이 오래 사는 평범한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운명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 된다. 그렇지만 짧고 영광스런 삶을 택한 그의 결정은 후대 신화 전승 속에서 결국 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

 

 이 장면은 '운명과 자유의지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신들은 선택지를 제시했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의지로 그 위에 발을 디뎠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도 명예를 위해 걸어들어갔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은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결단이라고 평가된다. 이때 신들이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은 모이라가 신들조차 함부로 폐기할 수 없는 질서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호메로스 시대에 모이라는 단순한 "몫"을 넘어 죽음의 몫, 영광의 몫, 인간에게 주어진 길이다. 몫이 운명이 되는 순간이다. 이 개념이 헤시오도스에 이르러서는 운명을 짜는 세 여신이 된다. 그는 "신통기"에서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 실의 길이 그러니까 몫을 정하는 라케시스, 실을 끊는 곧 되돌릴 수 없게 하는 아트로포스를 등장시킨다. 이때부터 운명이라는 추상 개념이 세 여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보다 뒤에 나온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운명이 결국 실현된다는 의미이다.

 

 "구약성서"에서는 모이라라는 개념이 없고 heleq(몫, 분깃), goral(제비뽑기, 할당)이 등장한다. 이것이 희랍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 모이라로 번역된다. 모이라와 헬렉 또는 고랄은 모두 '몫'을 뜻하나, 배경과 세계관은 다르다. 헬라스에서 모이라는 인간과 신들이 함께 존중해야 하는 질서이다. 히브리에서는 인간의 몫이 야훼의 의지와 섭리 안에 놓여 있다.

 

 모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다. 때로 우리는 모이라를 거부하려고 몸부림친다. 몫을 인간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몫을 인간이 반향하는 유일한 대상은 인간이다. 그래서 모이라는 오늘날 분수대로 살고 싶지 않아 아우성치는 숙명이다. 한국인의 표상 역시 모이라의 거역이 아닌가 한다. 아니면 몫의 계산이 애당초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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