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略歷)과 연보(年譜)
근래 수필집과 수필선집을 연이어 출간했다.
책의 마무리는 약력 혹은 연보다. 그런데 선집을 내면서 이 두 종류의 이력 기재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등단 초기에는 빈약한 이력을 어떻게 늘려 청탁서가 요구하는 세 줄 약력을 채워야 하나를 고심했다. 요즘은 세 줄 안에 무엇을 골라 넣어야 내가 돋보일까를 고민한다. 삼십 년에 이르는 문단 생활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약력 쓰기를 고심할 때면 어머니의 말씀과 폴란드 여성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가 교차되어 떠오르곤 한다.
“남들은 시시콜콜한 것도 잘도 늘여 적더만, 너는 왜 있는 것도 못 써먹냐?”
어머니의 말씀이다.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업적은 제외하고, 표창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쉼보르스카의 시 <이력서 쓰기> 중 일부이다.
어머니 말씀은 과대 포장하라는 것이고, 쉼보르스카의 시는 과정보다 성과를 우선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두 사람의 주장에는 다른 듯 같은 점이 있다. 같은 점은 행보(行步)의 중요성이요, 다른 점은 포장의 질이다.
약력에 적어 넣을 것이 마땅치 않아 잡아 늘이기를 할 때면 찜찜했다. 그런데 선집을 내면서 연보를 쓰려니 또 다른 씁쓸함이 따랐다. 행적(行蹟)의 보잘것없음이 부끄럽고 행보의 묘연함이 우울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연도를 추리해 적은 것은 그래도 꺼림칙함이 덜했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띄엄띄엄한 연도 사이 행보의 불분명함에 부딪혀서는 자괴감이 들었다. 행보가 행적의 계기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낸 것이다.
물론 그냥 산다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니다. 부조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낸다는 것은 수행 못지않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동기에 의해서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면, 그 이후 행보 하나하나는 문학과 연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자책이 드는 것이다.
철학수필 모임인 철수회(哲隨會) 연간 수필집에는 그 해 주어진 공동 주제로 쓴 수필작품 외에 자기가 선호하는 작가 혹은 그의 작품을 다루는 수필이 필수로 들어가 있다. 작가가 되었든 작품이 되었든 그것을 다루려면 그 작가의 작품들과 연보를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7년 연속 동인지에 글을 싣다 보니 다루는 작가의 연보에 담긴 행보가 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연보는 나를 주눅 들게도 했고 고무시키기도 했다. 동인들이 다룬 작품이나 작가론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중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M선배가 다루었던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연보다. 그의 걸음 하나하나가 허투루인 것이 없었다.
“작가나 사상가를 중심으로 5년 주기로 연구하고 또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3년 주기 연구를 스물다섯 살 때부터 해왔으며, 3년 주기 연구를 12가지 이상 했는데 한 가지 특정 주제를 작업할 때는 종종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읽기만 한다며, 그 작가가 쓴 모든 것을 읽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연구서를 다 읽는다고 한다.”-맹난자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말하다〉
관심이 있는 작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해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었다는 그. 설령 그의 연보 중 연도 사이 공백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빈 것이 아니었고, 그 멈춤의 시간조차 문학적 행보가 된 것이다.
그가 자기 작품 복제를 망설이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자신의 문학적 방법 중 하나가 ‘차이를 가진 반복’이며, 그런 경우 새 작품은 기존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되는 것이라 했다. 같은 적과 다시 싸운 결과로 나온 초고를 계속 손질하고 퇴고하다 보면 옛날 작품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전 작품의 복습이 새 작품의 동기가 된 것이다.
요즘 들어 내가 고전 명작, 혹은 지난 내 작품 다시 읽기를 해보고 싶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읽기’라는 멈춤의 시간을 내 시각(視覺)의 변화를 점검하는 행보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연보를 쓰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학에 입문한 동기가 무엇이었던가를 기억해냈고, 드문드문한 연도 사이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나의 행적(行跡)을 추리, 추적해보며 그 대책 없었음을 반성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게 된 점이 그렇다. 작가의 길을 택한 이상 내 몸이, 내 정신이 허락하는 한, 걸음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나를 추슬러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문학' 2026 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