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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한 삶과 돈의 의미: 짐멜의『돈의 철학』 을 중심으로

작성자ysoo|작성시간18.01.24|조회수65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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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과 돈의 의미:
짐멜의『돈의 철학』 을 중심으로


홍경자(서강대)



【한글요약】
본 논문은 어떤 근거에서 돈이 문화적 삶의 행위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돈이 삶에 의해 발전하고, 삶의 전체적인 부분들이 돈에 의해 발전하는지를 짐멜(G. Simmel)의『돈의 철학』을 통해 구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중심적 논지는 모든 인간을 단순한 경제적 역할과 기능의 담지자가 되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이중성, 즉 돈이 지닌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돈이 지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측면 또한 부각시키는 데 있다. 짐멜에 따르면 화폐경제의 물적 토대 위에서 돈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정신문화를 발전시켜 개인의 정신적 세계, 즉 인격을 심화시키고 영혼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돈과 영혼이 결합되는데, 그 이유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돈이라는 물질문화가 자신의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문화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본 논문은 현대사회의 문화적 공간에서 돈이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고 영혼을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돈의 철학』을 통해 심층적으로 고찰해봄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과 연관된 행복한 삶과 돈의 상호 연관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


【주제어】 돈, 문화, 자본주의, 행복, 영혼, 상호작용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4S1A5B8062069). 이 논문은 서강대학교철학연구소·가톨릭철학회가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하에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2015년 3월 21일)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들어가기


돈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대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이다.
오늘날 돈은 무엇보다도 권력과 안녕을 의미하며, 바로 그런 점에서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거나 저해하면서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돈은 인간이 고안해 낸 발명품들 중 가장 강력한 도구로서 개인과 사회 전체를 순식간에 노예로 만들거나 혹은 평정하는 막강한 지배자로 군림한다.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공업 중심의 산업사회로 옮아가는 근대화 과정을 촉진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돈은 인류가 존속되는 한 영원히 지속될 인간 삶의 현실적인 문제요 삶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실체로서 우리를 압도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연료로서 작동하는 –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 돈은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만큼은 별다른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돈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돈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이러한 의존은 곧바로 돈의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최고로 실현한 돈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품이자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본질로 급속도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수많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가치들 중에서 ‘돈벌이’를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삶의 중요한 목표로 간주하도록 만들며, 삶의 모든 행복과 궁극적인 만족이란 다름 아닌 일정한 양의 돈을 소유하는 것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1)
돈을 소유한다는 것은 개인들의 자유와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돈은 개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개인들이 갖는 희망과 원의가 바로 돈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돈은 개인과 그가 소망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용이하게 해 주는 메커니즘이며, 이 메커니즘은 돈만 획득하게 되면 수많은 다른 것들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현대인들로 하여금 돈에 동요하게 하고 열광하게 만든다. 이로써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돈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를 달아 쉼 없이 돈을 버는 지속적인 행위를 하도록 스스로를 자극하고 있다.2)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거대한 열망과 갈망은 ‘돈의 힘’과 ‘성공’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어서 더욱 더 견고해진다. 돈은 개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훨씬 더 가깝고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거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제 돈은 단순한 도구적 수단에서 벗어나 인간 삶의 최종 목적으로까지 고양되기에 이른다.3)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돈이 지닌 자기 목적적 성격이 어느 정도의 확실한 결정점(Krystallisationspunkt)을 가진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대체로 사람들은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 안에서만 행복감을 느끼게 되므로, 돈의 목적적 성격이 개인의 결정점 아래에서 멈춰 버리게 된다면, 실망, 좌절감등과 같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 “단순한 돈의 도구적 수단에만 의존하게 되면, 삶은 곧바로 무가치하고 불충분한 것”4)이 되고 만다. 이렇듯 돈은 개인들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가치들에 이르는 단순한 매개체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는 돈이라는 수단이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을 완전히 압도해 버리고 마는 비극적인 결과를 종종 초래하고 있다.


생철학자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이러한 현상을 발전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근본적인 특징이자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돈의 의미를 그의 저서『돈의 철학』에서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이때 여기서 다루어지는 돈은 당시의 지적 상황, 즉 돈의 경제학적 혹은 심리학적 접근방식이 아닌 철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짐멜의『돈의 철학』은 돈과 관련된 저작들 가운데 가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짐멜은 돈의 분석으로부터 시대정신을 추출하여 돈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대문화의 심층적인 본질적 구조와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화폐경제라는 물질문화의 토대 위에서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는 개인의 의지와 능력을 문제 삼아 돈에 의한 인간 삶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그는『돈의 철학』 에서 현대문화 및 변화된 대도시의 생활양식에 대한 돈의 심층적인 의미를 총체적으로 모색한다. 짐멜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돈이야말로 문화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결정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적 논의에서 한참을 비켜 서 있는 짐멜의 돈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의도는『돈의 철학』에서 ‘교환’의 전제조건을 비경제학적 개념으로, 즉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 혹은 돈과 영혼5)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 ‘교환’이 비경제학적 가치와 관계에 미치는 결과를 분석하는 데 있다. 짐멜의 주장대로 “돈은 가장 외면적이고 현실적이며 우연적인 현상들과 존재의 가장 관념론적인 힘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그리고 개인적 삶의 가장 내면적인 흐름과 역사의 가장 심층적인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기술하기 위한 수단, 재료 혹은 실례에 불과할 뿐이다.”6) 그러므로 짐멜은『돈의 철학』의 목표가 경제적 현상의 외면적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적인 것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데 있음을 철학적인 맥락에서 강조한다. 그러나 종종 쾰러(M. F. K?hler)와 같은 철학자들은 짐멜을 사회학자로 간주해『돈의 철학』 이 삶에 미치는 화폐경제의 영향력과 사회관계의 구조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주장하지만,7) 이러한 주장이 『돈의 철학』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 아니다. 짐멜이『돈의 철학』 서론에서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이 저서는 사회학적 접근뿐만이 아니라 문화철학, 나아가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 정립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어떤 근거에서 돈이 문화적 삶의 행위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돈이 삶에 의해 발전하고, 삶의 전체적인 부분들이 돈에 의해 발전하는지를 구명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을 단순한 경제적 역할과 기능의 담지자가 되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짐멜은 돈의 이중성, 즉 돈의 부정적인 측면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그와 동시에 돈이 지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측면 또한 부각시킨다. 짐멜에 따르면 화폐경제의 물적 토대 위에서 돈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정신문화를 발전시켜 개인의 정신적 세계, 즉 인격을 심화시키고 영혼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돈과 영혼이 상호 결합되는데, 짐멜은 그 이유를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돈이라는 물질문화8)가 자신의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문화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본 논문은 현대사회의 문화적 공간에서 돈이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고 영혼을 보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돈의 철학』을 통해 심층적으로 고찰해봄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행복한 삶’과 돈의 상호 연관성을 밝혀 보고자 한다.9)


1) G. Simmel, “Zur Psychologie des Geldes”, Gesammtausgabe, 2, Frankfurt am Main, 1999, 53 참조; 「돈의 심리학에 관하여」, 돈이란 무엇인가, 김덕영 옮김,도서출판길, 2014, 30 참조.

2) G. Simmel,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Gesammtausgabe, 5, 191 참조;돈이란 무엇인가?, 김덕영 옮김, 도서출판길, 2014, 75 참조.
3) G. Simmel,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188. 「현대문화에서의 돈」, 72 참조.
4) G. Simmel, “Zur Psychologie des Geldes”, 53. 『돈이란 무엇인가?』, 30.

5) 짐멜은 정신(Geist)과 영혼(Seele)을 구별한다. 정신은 영혼의 내부에서 생동감 넘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인식되는 객관적 내용이며, 영혼은 정신, 즉 사유의 논리적-객관적 내용이 우리에게 존재하도록 살아가게 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정신은 영혼에게 필수불가결한 통일성을 지향하는 형상화와는 결부되어 있지 않다.
정신의 내용은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이 정신의 내용을 자기속으로 통합시킨다는 점에서 영혼 자체는 의식의 개별적인 내용들과는 대비된다.
정신에는 객관성으로 해체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성이라는 가치가 결여되어 있지만, 인간의 영혼에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Pers?nliche und sachliche Kultur”, Gesammtausgabe, 5, Frankfurt am Main, 1992, 580~582 참조.
6) G. Simmel, Philosophie des Geldes, K?ln 2001, VII; 『돈의 철학』, 김덕영 옮김, 도서출판길, 2013. 이하 PdG로 표기하고 쪽수는 ‘/’의 구분을 통해 번역본, 원본순으로 표기함.
7) 쾰러(M. F. K?hler)는『돈의 철학』의 평론에서『돈의 철학』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조망을 가능하게 해 줄 방법에 특별한 특징을 가진 경험 사회학을 정립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관심은 문화철학 및 후기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삶의 형이상학을 정립하기 위한 과도기적 저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M. F. K?hler, “Georg Simmel”, Kantstudien, Vol. 24, 1920, 12~13 참조.
8) 짐멜은 문화에 정신적인 것 이외에도 물질적인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 둘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에 천착함으로써 문화의 외연을 넓히고 문화철학의 인식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예컨대 돈만이 아니라 성과 결혼, 심지어 매춘 등과 같이 세속적이고 비천한 것까지도 문화의 영역에 포섭시키고 있다. 이처럼 짐멜이 문화의 외연을 넓히는 이유는 이 영역들 또한 인간 삶의 실질적인 부분이자 과정이며, 또한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당시의 지적 풍토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11가지 풍경,김덕영 지음, 도서출판, 2007, 90/189 참조.
9) 문화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 삶에 주어진 선물, 즉 인간으로 하여금 과분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듦으로써 현대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짐멜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바로 물질문화인 돈이므로 행복한 삶과 돈은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2. 현대사회에서 돈의 본질과 그 존재 의미: ‘가치’와 ‘교환’


짐멜의 돈의 철학은 크게 제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분석편에서 짐멜은 화폐경제에서 돈의 가치론적인 의미, 즉 인간정신과 사회관계, 현실과 가치의 논리적 구조 속에서 돈의 본질과 그 존재의 미에 대한 전제조건들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다루며, 제2부 종합편에서는 이러한 경제학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돈이 인간의 내면세계에 미치는 영향, 즉 “개인들의 삶의 감정, 그들의 숙명적인 연계 고리, 문화전반에 미치는 영향”(PdG, 10) 등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실제로 분석편과 종합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돈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들은 서로 대립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장에서는 양화되고 평준화되고 탈개인화된 화폐경제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과 영혼이 어떻게 돈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 앞서, 돈이 유통되는 전제 조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가치’와 ‘교환’에 대한 짐멜의 입장이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사물들의 가치를 가장 단순하고 응축된 방식으로 대체하는 돈은 가치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주체가 인식하는 가치평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짐멜은 가치를 형성하는 원리인 상대주의에 입각해 돈의 본질과 그 존재의미를 규명한다. 사회 경제적 현실에서 사실 돈만큼 상대주의적 세계상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징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은 고정되는 바로 그 순간에 돈으로서의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PdG, 714) 돈은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운동의 담지자인 순수한 운동”이자 “영원히 움직이는 영구기관”(PdG, 713)으로 모든 인간 및 사물과 관계하면서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짐멜은 가치의 상대성을 가치들 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나 혹은 모든 가치들을 포괄하는 최상의 가치에서 그 근거를 확보하기보다는 아직 소유하거나 향유하지 못한 인간 ‘욕구(Begehren)’의 심리학적 토대가 되는 주체의 의식적인 판단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 말은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개인이 대상을 지향하는 정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물질적 욕구와 욕망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결국 짐멜에게 돈의 가치란 오로지 심리학적으로만 존재하며, 절대적 의미에서의 객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의지가 특정한 대상을 욕망할 때에만 비로소 그 대상은 가치를 갖게 된다.10)

예컨대 음식물을 비롯한 주거, 옷, 귀금속 등 다양한 대상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평가받는 주체11)의 심리적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가치의 실질적인 의미가 부여된다는 뜻이다.12) 그러므로 사물이 지닌 실질적 가치는 인식하는 주체와의 관계를 통해, 즉 주체의 주관성이 사물의 가치에 대해 그 객관성을 인정해 줄때에만 비로소 형성된다는 점에서 돈은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치는 대상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욕구를 극복하려는 주체와의 거리(Distanz)를 통해 진정한 가치가 결정된다.(PdG, 32) 짐멜에 따르면 거리가 극복되고 소멸되는 경우는 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향유’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향유한다는 말은 주체가 가치를 소비한다는 뜻이며, 이때 사물의 가치는 소비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주체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다시 형성하게 된다.(PdG, 34)


결국 가치란 직접적으로 향유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통해 주관적 가치가 객관화되는 과정이며, 한 대상의 실질적 가치는 ‘거리’로 표현된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성립된다. 이때 짐멜은 주체와 대상과의 ‘거리’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로 기다리는 시간, 노동하는 시간 이외에 상품의 ‘희소성’을 제시한다.

만일 재화나 상품이 사람들의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이 재화나 상품을 가치 있는 것으로서 욕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상품을 욕망하지 않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경우 주체 역시 이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대상을 지향하는 어떠한 목적적인 행위도 수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이 사물은 어떠한 실질적 가치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대상의 본래적인 의미, 즉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상과 주체
사이에 놓여 있는 이 ‘거리’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짐멜은 이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교환(Tausch)’을 제시한다.
잘 알다시피 교환의 근본 특성은 교환과정에 참가한 두 사람 중 한사람은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것을 이제 갖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한사람은 이전에는 갖고 있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환을 통해 아직 미분화된 채로 주체와 결합되어 있던 사물들은 이제 주체의 순수한 주관성에 용해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분리된다. 그 결과 분리된 사물들은 경제적 기능을 자체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주체로부터 독립된 가치를 획득한다.(PdG, 63) 이 말은 대상이 스스로 객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13)을 통한 결과로서 획득된다는 뜻이다.(PdG, 64) 이때 희생은 “이미 정해진 개별적인 가치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일 뿐만 아니라 오직 그 대가를 통해서만 가치들이 확립될 수 있는 대가”이기도 하다.(PdG, 65)

이런 의미에서 대상은 교환행위를 통해 자신을 희생물로 제공하며, 이렇게 제공된 대상은 교환행위에 참여하는 개인들에게는 곧바로 어떤 가치로 인식된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돈이 교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돈은 이미 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은 그 자체로 매우 구체적이며 가치 있는 실체이기는 하지만, 교환이라는 운동과 기능을 통해 스스로를 완전히 해체할 때에만 비로소 사물들의 가치가 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PdG, 212)


따라서 교환은 대상을 순수하게 주관적인 가치 의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동인이자 주체와 대상이 서로 분화됨으로써 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사물은 마침내 주관성과 개인성을 초월할 수 있게 되고, 사물의 가치는 이러한 교환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객관화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환은 주관적인 가치평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정해지는 등가물은 교환하는 대상의 객관성을 평가하는 매개자로 작용한다. 한편 짐멜은 교환을 인간의 사회적 행위나 사회적 관계를 결정적으로 매개하는 “사회학적 구성체”로서 “상호주관적인 삶의 근원적 형식이자 기능”(PdG, 80)으로 규정하며, 나아가 교환행위를 경제학적 의미에서 사회학적 의미로 확장시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확장된 의미의 교환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순수하며 동시에 가장 고양된 상호작용”(PdG, 59)으로 해석된다. 이는 돈을 매개로 영위하는 경제적 교환수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역시 일종의 교환으로서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짐멜은 개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교환행위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에너지를 타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교환은 짐멜의 말대로 “개인들 사이의 삶을 구성하는 형식과 기능의 일종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유용성과 희소성이라고 부르는 사물의 질적, 양적인 특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PdG, 89~90) 그러므로 교환은 개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결합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초일 뿐만 아니라 사물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러한 교환과정을 거치면서 돈은 실체적 특성이 점차 소멸되고, 드디어는 상징적 의미만이 남게 된다. 이제 돈은 그 실체에서 기능적 가치, 즉 “순수한 상징”과 결합된 관념적 혹은 개념적 존재가 되면서 추상적인 재산 가치로 변화된다.(PdG, 122) 왜냐하면 돈을 매개로 하는 교환행위에서는 사물의 본질가치를 대신해서 ‘기능적인 가치’가 파생되기 때문이다. 돈의 기능은 돈의 ‘사용가치’를 구성하는 것이며, 또한 이 사용가치는 돈의 교환가치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짐멜은 그 자체로는 가치의 평가대상이 되지 못하는 돈의 근본적인 특성을
‘무질성(Qualit?tslosigkeit)’ 혹은 ‘비개성(Unindividualit?t)’으로 표현한다.(PdG, 127)

왜냐하면 돈은 색깔도, 특성도, 개성도 지니고 있지 않은 단순한 매개 수단으로서 인간과 사물들 사이에서 그
둘을 분리시키기도 하고 결합시키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돈의 이와 같은 무질성은 교환과정에서 질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가치로부터 단순히 많고 적음과 관계되는 ‘양(量)’의 ‘가시적 상징’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닌 ‘상징’으로 이행되는 것이다. 이때 상징으로 인식되는 돈은 경제 행위자들 사이에서 특별한 신뢰를 획득해야만 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돈을 똑같은 가치로 다시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에만 비로소 돈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뢰는 어떻게 가능한가? 짐멜에 따르면 이러한 신뢰는 교환과정에서 돈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인들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제도화’함으로써 형성된다. 그 결과 돈은 이제 단순한 경제적 형식을 넘어 사회를 결속시키는 가장 순수한 형식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10) G. Simmel, “Zur Psychologie des Geldes”, 55 참조.
11) 여기서 주체란 물질적 욕구를 가지고 특정한 대상을 갈망하여 이것을 자신의 경제적 목표로 설정하는 경험적 존재를 의미한다.
12) G. Simmel, “Zur Psychologie des Geldes”, 56 참조.

13) 여기서 ‘희생(Opfer)’이란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고, 그 대신 교환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하나의 대상을 포기함으로써만 다른 대상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 돈과 영혼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본질과 그 존재의미에 대한 전제조건을 ‘가치’와 ‘교환’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그 자체로는 아무런 특성도 없고 획일적인 매개수단으로서 모든 것을 무차별화시키고 평준화시키는 돈이라는 물질문화가 어떤 조건 하에서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고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며,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촉진시키는지에 대해 자본주의적 화폐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문화를 통해 그 논의를 전개시켜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문화’와 ‘삶’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신칸트학파의 문화이론과는 달리 ‘문화’와 ‘삶’을 결합하고자 시도하는 짐멜의 문화이론에서부터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본 논문이 해명하고자 하는 의도에 잘 부합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의가 전제로 제시될 때에야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의 가능성14), 즉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과 그 둘의 역동적인 내적 결합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멜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에 속한다고 보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기존의 통념처럼 문화를 타락시키고 파괴시키는 주범만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물론 짐멜이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소외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한 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그는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의 토대 위에서 오늘날의 현대문화가 어떻게 인간 삶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동시에 타진했다는 사실 또한 부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드러나는 중요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문화적 삶의 물적, 경제적 조건과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시대적 삶의 흐름에 편입되어 새로운 인간관과 새로운 사회관계 및 사회구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전개되는『돈의 철학』 은 짐멜의 문화철학 및 생철학의 체계적인 기초 없이는 제대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14) 당시의 광범위한 문화철학적 경향은 ‘돈이 시작하는 곳에 문화는 끝난다’라고 치부할 정도로 돈과 관련된 문화를 매우 부정적으로 파악했다. 또한 문화를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문명을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으로 엄격하게 구분했던 독일 학계에서 전자는 바람직한 것으로, 후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던 당시 학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짐멜이 자본주의에 기초한 물적 토대 위에서 돈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신적 작업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1) 현대문화의 본질적 구조와 특성


짐멜은 문화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15)으로서 의식의 범주화 내지는 형식화로 이해한다. 문화의 대상들은 문화적 산물들을 창조해 내는 주체들에 의해 경험된 것의 결정체들로 인간의 정신적 삶, 즉 영혼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의 영혼은 다양한 객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다양한 정신적 영역으로 분화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 차원 더 높은 인격체로 고양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에는 이념을 통해 전개된 “개별 영혼들의 의지와 지성, 개성과 정서, 역량과 정취”16)가 함축적으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짐멜은 문화를 “영혼이 자기자신으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17)로 정의하면서 자신의 문화이론을 인간영혼의 토대 위에서 확립시키고 있다. 이때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길’은 구체적으로 객관화된 제도적, 구조적 사실 혹은 실체, 즉 삶에서 수행하는 내·외적 노동의 결과로서 과학, 종교, 예술, 윤리, 경제, 기술등과 같은 인간 삶과 행위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구현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이 ‘길’을 통해서 주어진 영혼의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인격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영혼이 다양한 객체 혹은 사물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가치증식’의 과정을 거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18) 그러므로 짐멜에게 문화는 주체로부터 나와서 객체의 다양성을 거쳐 다시 주체에게로 돌아가는 변증법적인 발전 과정으로, 즉 “폐쇄된 통일성에서 출발해 전개된 다양성을 거쳐 전개된 통일성에 이르는 길”19)로 정의된다.


짐멜은 이렇게 정의된 문화를 객관문화(objektive Kultur)와 주관 문화(subjektive Kultur) 혹은 물격문화(sachliche Kultur)와 인격문화(personliche Kultur)로 구분한다. 여기서 짐멜이 문화를 두유형으로 구분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존재론적 의미의 실제근거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삶에 대한 경험적 현상과 과정이라는 두 측면에 대한 인식근거로서의 구분을 위해 사용된 개념들이라는 사실이다.20)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객관문화와 주관문화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객관문화는 “교화되고 고양되며 완성된 사물”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인간 영혼을 자체의 고유한 길로 인도하거나 개별인간이나 전체 사회가 더 높은 존재로 나아가면서 통과하는 도정의 일부분”으로, 주관문화는 “그렇게 달성된 개인의 발전 정도”로 정의된다.21) 그러나 객관문화와 주관문화가 상호 대립적이지만, 양자 모두가 ‘정적인 구성체’로서 하나의 발전과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관문화는 어떤 경우에도 객관문화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하며, 객관문화 역시 개인의 삶과 양식 및 행위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주관문화 없이는 또한 불가능하다.

짐멜은 주관문화를 객관문화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객관문화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 다양한 객관문화가 많이 존재하면 존재할수록 주체는 이를 통해 더욱더 분화된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그 결과 개인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짐멜은 주장한다.22)


그런데 문제는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부터 객관문화는 급속도로 증가하지만, 이에 반해 주관문화는 그 속도의 면에서 객관문화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객관문화가 정도와 속도에서 주관문화를 점점 더 앞질러 발전하게 됨으로써 둘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크게 벌어져 상호간에 심한 불균형이 초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23) 결국 현대사회에서는 객관문화가 주관문화보다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점점 더 빨리 증가함으로써 주관문화를 압도해 버림으로써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다. “언어나 법률, 생산기술이나 예술, 과학이나 가정용품들에 구현된 정신의 총합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그에 비해 인간주체들의 정신적 발전은 매우 불완전하며 점점 더 뒤처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24)

이런 상황에서 개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주관문화, 즉 정신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객관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말은 주체에서 나와 객체를 통해 다시 주체로 발전해가는 문화의 흐름이 이제 그 연속성을 상실해 버렸다는 뜻과도 연결된다.25) 짐멜은 이와 같은 문화의 전도 현상을 ‘현대문화의 갈등과 비극’으로 진단한다. 이러한 문화의 비극은 객관문화가 주체들에 의해 창조됨과 동시에 주체의 발전을 위해 규정되지만, 점차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의 고유한 발전 논리를 따르게 됨으로써 이제 더 이상 객관문화는 주관문화와 어떠한 특정한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스스로 존속하고 발전하게 된다. 그 결과 객관문화가 원래 지향했던 본래적 근원이나 목적, 즉 ‘인간 영혼의 발전’에 편입할 수 있는 방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짐멜은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추월하는 이와 같은 현상을 ‘문화의 역설’이자 ‘비극’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비극으로까지 규정한다.26) 왜냐하면 그에게 주체의 발전, 즉 영혼의 발전은 어떠한 경우에도 객관문화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짐멜은 이러한 문화의 비극에 대한 원인을 무엇보다도 근대 이후의 ‘노동 분업’에서 찾는다.27) 왜냐하면 노동 분업이 주관문화와 객관문화를 분리하는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원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짐멜에게 노동은 단순히 육체적 현상이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심층적인 인격적 영혼의 표현으로서 본질적으로 노력, 희생 또는 포기와 같은 주관적 감정과 의지의 에너지가 관여하는 행위이다.(PdG,585)

그러므로 노동은 주체의 정신적 에너지와 객체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며, 개인은 이러한 노동을 통해 “정서적 희열과 자아의 고양 및 확장이라는 내적 체험”28)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근대 이후 노동 분업을 통해 노동이 지닌 본래적인 기능이 퇴색되고, 그 결과 주관문화와 객관문화가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생산’과 ‘소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생산의 경우, 노동 분업의 결과로 인해 노동과정, 노동수단, 그리고 노동생산물이 노동하는 주체와 그의 인격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하게 됨으로써 자체적인 논리와 법칙 및 동력에 의해 기능하게 되고, 그로 인해 노동자는 더 이상 자신의 행위에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전체적인 삶의 근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 주관문화와 객관문화가 서로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PdG, 630) 또 다른 측면인 소비의 경우에도 역시 생산의 전문화에 상응해서 주관문화와 객관문화가 서로 분리, 확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확대는 객관문화의 성장에 의존함으로써 문화는 이제 ‘문화의 객관성’ 및 ‘문화의 분업’과 연결된다.(PdG, 631)


노동 분업은 주체와 객체, 즉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부분화하고 파편화함으로써 인간 주체에게 단지 자기 영혼의 특정한 부분과 단편만을 객관적 사물에 투입하고 구현하도록 강요한다. 그 결과 노동과정, 노동수단, 노동생산물이 노동하는 주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해서 그 자체의 고유한 논리와 법칙을 가지고 존재하며 기능하게 된다. 여기서 객체에 투여된 개인의 주체적 영혼은 자기 자신에 이르러 자기실현을 해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에서 짐멜은 객관문화의 본래적 기능, 즉 주관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는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는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주관문화의 물적, 경제적 토대가 되는 ‘돈’에서 찾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대도시에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어느 정도 확보한 개인은 이제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과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개인의 인격적 삶을 형성하는 주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들은 이를 영위할 수 있는 여유와 가능성을 갖게 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29)

그러므로 짐멜에게 “돈은 무차별화되고 외화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직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에서만 달성될 수 있는 가장 내적인 것을 지켜주는 수문장”(PdG, 653)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통해 조명해 봄으로써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15) 상호작용(Wechselwirkung)은 짐멜의 지적 세계전반을 주도하는 형이상학적 원리이다. 상호작용은 사회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관문화와 객관문화 그리고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상호작용은 인간 세계 뿐만 아니라 자연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제적 세계원리이다.
16) G. Simmel, “Der Begriff und die Trag?die der Kultur”, Gesammtausgabe, 14, Frankfurt am Main, 1996, 392.
17) G. Simmel, “Der Begriff und die Trag?die der Kultur”, 395.

18) G. Simmel, “Pers?nliche und sachliche Kultur”, 560 참조.
19) G. Simmel, “Der Begriff und die Trag?die der Kultur”, 387.
20) 김덕영,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도서출판길, 2007, 194.

21) G. Simmel, “Das Wesen der Kultur”, Gesammtausgabe, 8, Frankfurt am Main, 1993, 371; 「문화의 본질에 관하여」, 문화이론, 김덕영·배정희 옮김,도서출판, 2007, 74 참조.

22) G. Simmel, “Das Wesen der Kultur”, 372~373; 「문화의 본질에 관하여」, 75~76.
23) G. Simmel, “Die Krisis der Kultur”, Gesammtausgabe, 13, Frankfurt am Main, 2000, 199; 문화이론, 김덕영·배정희 옮김, 196 참조.
24) G. Simmel, “Die Großest?dte und das Geistesleben”; 「대도시와 정신적 삶」,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김덕영·윤미애 옮김, 새물결, 2005, 50 참조.
25) G. Simmel, “Der Begriff und die Trag?die der Kultur”, Gesammtausgabe, 12,
Frankfurt am Main, 2001, 199, 김덕영·배정희 옮김, 문화이론, 196, 214 참조.

26) G. Simmel, “Die Krisis der Kultur”, 199 참조.
27) G. Simmel, “Der Begriff und die Trag?die der Kultur”, 214 이후 참조.
28) G. Simmel, Soziologie. Untersuchung ?ber die Formen der Vergesellschaftung, Frankfurt am Main, 1992, 439.

29) G. Simmel,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Gesamtausgabe 5, Frankfurt am Main, 1999, 184; 「현대문화에서의 돈」,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김덕영·윤미애 옮김, 새물결 2005, 18 참조.



2) 대도시에서의 현대인의 삶


짐멜은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문화와 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며,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문화’와 ‘삶’을 결합하는 생철학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도모한다. 생철학에서 정의하는 삶은 “형이상학적 원천사실”이자 “모든 존재의 본질”이며, 모든 주어진 현상, 즉 삶의 형식으로서의 문화는 “절대적인 삶의 맥박이나 표현방식”30)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그의 생철학적 핵심개념은 ‘삶(Leben)’과 ‘형식(Form)’이다.

짐멜은 ‘삶’과 ‘형식’을 세계를 형성하는 두 개의 궁극적인 원리로서 한번은 형식원리가, 그 다음에는 삶의 원리가 지배함으로써 삶과 형식은 대립적인 투쟁관계의 끊임없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31)

다시 말해 삶은 스스로 구성한 모든 형식들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파괴하며 무한히 지속되는 두단계, 즉 형식창조의 단계와 삶의 고정된 형식에 대한 반작용의 단계를 거친다. 이런 삶과 형식의 투쟁관계야말로 문화를 변동시키고 발전시키는 내적인 동기이며 문화의 ‘전제조건’이자 ‘기초’가 된다.
짐멜에게 삶은 자기 자신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와 목적을 실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삶은 언제나 수많은 형식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가진 고유한 형이상학적 실재, 즉 삶의 초월성32)에 따라 상이한 형식들과 형성물을 끊임없이 스스로 생성해내는 연속적인 흐름(Strom)으로 존재하며, 나아가 삶은 충동, 혁신의지, 자체변화 그리고 분화라는 본질과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삶은 그 자체로는 형식이 없는 존재이므로 삶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형상화 과정을 거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33) 형식을 통한 형상화와 그 현실화에 의지하는 정신적 삶은 단지 형식들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삶은 바로 삶-형식-삶이라는 도식에 의해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부단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은 멈추지 않는 지속적인 흐름과 제한된 결정화(Kristallisierung), 그 둘을 모두 포함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삶이 그 자체로는 형식이 없는 존재이므로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형식을 통해 어떤 결
정체로서 고정화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삶이라는 속성이 부단한 ‘흐름’ 이라는 운동적인 특성으로 인해 어떤 경우에도 형식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모순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러나는 문제는 삶의 형식인 문화의 가치가 삶의 가치와의 관계에서 주어져야 하는데, 대도시의 현대인의 삶에서는 문화와 삶이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분리됨으로써 문화의 가치와 삶의 가치 간의 불일치가 점점 더 커지고, 이로 인해 대도시에 사는 개인의 인격 전체가 위축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대도시의 문화는 삶에서 나오고 삶에 봉사하고 기여하도록 결정되어 있지만 오히려 현대인의 삶을 무의미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것으로 해체시키려 한다. 그래서 대도시의 인간 삶은 점점 더 개인들의 색깔, 즉 어떤 경우에도 타자와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들을 제거해 버리는 비인격적인 내용들로 자꾸 채워지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개인적인 것을 어떻게든 구제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과 특성을 짜내야 하는 신경과민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영혼의 위기이자 문화의 위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삶을 능가하는 문화의 우세함 때문에 삶이 위축됨으로써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대도시를 비판하지만, 짐멜은 이런 대도시의 특성에 대해 조금은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그에게 “대도시는 삶을 포괄하는 대립된 다양한 조류들이 동등한 권리로 만나고 전개되는 장소로서 위대한 역사적 형상물의 하나”34)로 이해된다. 짐멜은 여기서 드러나는 대도시의 개별적 현상들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지에 상관없이 현대인들은 대도시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단죄하는 태도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대도시에 작용하는 힘들은 전체 역사적 삶의 뿌리와 정점에 자리 잡고 있고 우리는 하나의 세포와 같은 덧없는 존재”35)로서 이러한 대도시의 삶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도시의 삶을 불평하거나 용서하는 식으로 판단하는 재판관의 입장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36)


30) G. Simmel, “Der Konflikt der modernen Kultur”, Gesamtausgabe, 16, Frankfurt am Main, 1987, 198; 문화이론, 김덕영 옮김, 도서출판길, 2007, 163.
31) 홍경자, 「짐멜의 비극적인 것(das Tragische)의 이해」, 해석학연구, 제8집, 2001, 309 참조.
32) “삶은 언제나 스스로를 넘어서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며 그 자신으로부터 객관적인 형식들을 외부로 정립시키며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짐멜은 이러한 삶의 근본적인 성격을 ‘삶의 초월성’으로 파악한다. 삶의 초월성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 초월함이란 그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과정의 근원적 현상을 생물학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성장’의 의미를 가진 ‘이상의 삶(Mehr-Leben)’으로 규정한다.

둘째, 이상의 삶을 넘어선 보다 심층적인 의미의 초월성은 정신적 삶으로 들어서는 ‘그 이상의 삶(Mehr-als-Leben)’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상의 삶은 이상의 삶을 넘어서 삶이 유의미한 형성물들을 생산할 때 획득된다.”(홍경자, 「짐멜과 야스퍼스에서의 삶과 정신의 문제」, 동서철학연구, 제35호, 2005, 8)

33) G. Simmel, “Der Konflikt der modernen Kultur”, 184.
34) G. Simmel, “Die Großest?dte und das Geistesleben”, Gesamtausgabe, 7,Frankfurt am Main, 1995, 131; 「대도시와 정신적 삶」,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새물결, 2005, 53.
35) G. Simmel, “Die Großest?dte und das Geistesleben”, 131.
36) G. Simmel, “Die Großest?dte und das Geistesleben”, 131.



3) 돈과 영혼의 상호작용


이 장에서는 짐멜이 현대문화의 갈등과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지적인 시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짐멜의 주요관심은 어떻게 하면 개인들이 화폐경제의 토대가 되는 물질문화, 즉 자본주의의 세력과 질서를 부정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사회적 강제와 요구로부터 영혼을 구제하고 인격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 여기서 짐멜이 말하는 영혼은 삶의 기본토대로서 더 이상의 표현이 불가능한 가장 심오하고 순수한 내면성을 의미한다. 영혼은 삶의 원형이자 동력이다. 여기에서 그는 돈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돈은 객관문화와 주관문화에 끼어들어 상호작용함으로써 개인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게 되고, 인격을 함양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멜은 돈을 문화의 타락과 파괴의 원인인 문명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간주한다. 현대사회에서 돈은 “한편으로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통용되는 매우 보편적인 이해관계, 결합수단 및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해 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격의 보존, 개체성 및 자유를 가능”37)하게 하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바로 돈이 지니는 이중적 의미 때문에 돈에 기반한 문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삶의 양식에 부여된 돈의 문화적인 의미는 객관정신과 주관정신이 서로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상승되는 것이며, 반증되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는 것이다.(PdG, 654)


이러한 논리 위에서 짐멜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특성도 없고 획일적이고 비천한 매개체로서 모든 것의 차별을 없애고 평준화시키는 돈이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고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며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에 대해 ‘친교(Geselligkeit)’, ‘사랑’, ‘종교’ ‘예술’ 등을 대표적으로 제시한다.

종교, 예술, 사랑 등은 목적-수단의 관계를 초월해 그 자체로 가치가 되며 목적이 된다. 여기에 열거된 것들 중에서 예술작품은 “인간이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완결된 통일성이며 가장 자족적인 총체성이다. 이러한 완결성은 주관적이고 통일적인 영혼이 그 안에서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은 오로지 한 인간을 요구하는바, 그를 전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내면성에 의거하여 요구한다. 그 대가로 예술작품은 자신의 형식이 그 한 인간에게는 인격의 가장 순수한 거울이자 표현이 되게 해준다.”38)

분업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는 이렇게 자기 안에서 종결된 작품의 총체성과 영혼의 통일성 사이의 연관관계의 징후이자 원인이다.
이와 더불어 짐멜은 돈을 매개로 하여 당시 유산시민계급과 교양시민계급이 만나서 정신적 교류를 한 대표적인 것으로 ‘친교’를 제시한다. 친교는 “상징적인 유희를 통해 삶을 충만케 하고, 또한 삶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상적인 사회적 세계이다.39)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기쁨과 행복이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하다는 사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친교의 사회적 세계에서는 개인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 학식과 명성, 예외적 능력과 업적은 전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40)

왜냐하면 친교의 세계에서는 개인의 구체적 목적이나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순간 더 이상 친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교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대도시의 시민들이다. 소도시와는 달리 대도시의 시민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나 객관적 내용과 실제적 요구에 의해 과부하에 걸리거나 신경과민에 걸릴 정도로 실질적이거나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

일상생활에서나 직장생활에서나 인격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친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순수한 인간으로 참여해 오직 인격적 관계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영혼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개개인들은 오로지 고상한 대화와 유희를 추구할 따름이다. 짐멜은 친교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전형적으로 관찰된다고 보면서 이 사회적 공간을 통해 직업세계로부터 해방된 놀이형식(Spielform)이라는 의사소통 구조와 상호작용 구조를 제시한다. 현대인은 친교라는 사회적 놀이형식을 통해 직업세계가 개개인들에게 주지 못한 인간의 영혼을 찾게 한다. 짐멜은 친교를 통해 자본주의적 논리의 토대 위에서도 자본주의적 논리를 초월하는 피안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삶과 행위가 전적으로 그리고 철저히 물질적 생존에 얽매여 있는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인격을 사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특성이나 능력을 발전시키거나 촉진시킬 수가 없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근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생산행위와 교환행위에 국한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최대관심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어 돈의 질적 범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양적범주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행위는 주관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수행하기 보다는 경제적 역할과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에게는 객관문화와 주관문화의 상호작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처럼 물적, 경제적인 것에 의해 전인격적 통제와 지배를 받게 되는 노동자 계급은 실천적 물질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환경만이 제공될 뿐이다.(PdG, 653)


그러나 사회가 점차 발전하게 되면 노동자 계급도 경제적 생존투쟁에서 벗어나 서서히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활동과 사회적 영역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 계급의 삶과 행위도 단순히 돈의 양적 논리뿐만이 아니라 질적 논리에 의해서도 지배받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라는 근대적 물질문화가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물적, 경제적 토대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짐멜이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을 단순한 경제적 역할과 기능의 담지자 및 수행자가 되도록 강요하다는 사실을 짐멜 역시 제대로 통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제가 바로 직업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개개인에게 객관적이고 즉물적 기능과 역할을 강요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잠식시킬 뿐만 아니라 점차 증가하는 직업의 분업화와 전문화는 개개인의 인격의 무차별화를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짐멜에 따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화폐경제의 발달이며, 이러한 화폐경제의 발달이 바로 건전한 정신문화 혹은 친교와 같은 이상적인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자 토대가 된다. 여기서 짐멜은 돈과 영혼의 결합이 가능해지고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짐멜의『돈의 철학』은 단순히 문화비판과 시대비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핵심적인 내용은 돈에 기반 한 문화의 가능성을 찾는 철학적 작업인 것이다.


37) G. Simmel, “Das Geld in der modernen Kultur”, 184;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18.
38) G. Simmel, Zur Philosophie der Kunst, Potsdam, 1992, 86.
39) G. Simmle,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Berlin, 1970. 53.

40) G. Simmle,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 54~55 참조.



4. 나가기


이상으로 현대사회의 문화적 공간에서 돈이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고 영혼을 보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짐멜의『돈의 철학』 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돈의 개념적 분석과 영향을 통해서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삶의 양식을 철저하게 분석한 짐멜의『돈의 철학』 은 화폐로 대표되는 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특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화폐경제의 발달은 인간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고, 그 결과 인간성의 상실로까지 이어지면서 삶의 황폐화를 결정적으로 초래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짐멜은 이러한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사회가 지닌 돈의 이중성을 동시에 파악했다는 점과 짐멜이 살았던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른, 매우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해석을 감행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적어도 『돈의 철학』이 지닌 학문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것이 본 논문의 핵심적 취지였다.


물론 본 논문이 짐멜의 이러한 학문적 의의를 옹호한다고 해서 그가 추구한 돈의 해석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전혀 비판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인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돈의 양적 논리에서 질적 논리에로의 전환에 있다면, 우리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체제하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고 자신의 인격을 고양시킴으로써 자기 소외를 극복하고 본래적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짐멜의 논의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철저히 물질적 생존에 얽매어 있는 소외계층들이 자신의 인격을 사물로부터 분리시키고 거기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특성이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혹자는
짐멜이 주장하는 돈의 이론이 장밋빛 환상에서 나온 낭만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거세게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한국사회에서 소외계층들의 경제적 형편이 점차 나아지면서 경제적 생존투쟁으로부터 해방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영혼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과 사회적 영역에 투자하게 된다면, 짐멜의 돈에 대한 분석이 단순하다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비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누군가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일중독에 빠진 연봉이 높은 사람이 과연 정신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돈의 가치를 ‘양의 가치’에서 ‘질의 가치’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답할수 있다. 이는 돈이 질적 논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양적 논리에 머물러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행복한 삶은 결코 돈의 양적 논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생존투쟁에 집중되어 있던 에너지를 자신의 영혼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에 투입할 수 있을 때, 돈은 비로소 질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짐멜이 제대로 분석하고 통찰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지닌 진정한 의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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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 Berlin, 1970.



<Abstract>

The Happiness of Life and the Meaning of Money

: Based on G. Simmel’s ‘Philosophy of Money’


Keung-Ja HONG

(Sogang Univ.)


This paper will research how money allows the action and social interaction of a cultural life, how money advances one’s life, and how money advances all aspects of one’s life. In a capitalistic society that pressures all human beings to become a simple financial role as well as a technological bearer, G. Simmel highlights the duality of money; in other words, he sharply criticizes the negative aspect of money while praising money’s positive and constructive side. If we follow G. Simmel, money, in the material foundation of our monetary economy, shows its capability of advancing the moral culture suitable for our modern society, intensifying one’s personality and preserving one’s soul. Here, money and soul are combined; the reason for this is our monetary culture in which money governs the monetary economy, as well as interacting with our moral culture based on one’s material foundation. on what grounds do we do that? From this question, this paper starts focuses on contemplating in-depth how money develops one’s character and preserves one’s soul in the cultural space of a modern society using the ‘philosophy of money’. It will also reveal the quality improvement of life in our present society, as well as the related interconnectivity of money and a happy life.


Key Words: Money, Culture, Capitalism, Happiness, Soul, Interaction



논문접수일: 2015. 07. 03.

심사완료일

1차 심사: 2015.07.11.

2차 심사: 2015.07.17.

3차 심사: 2015.07.18.

게재 확정일: 20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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