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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뽀뽀’와 ‘입맞춤’과 ‘키스’ . ‘개나리’의 어원. ‘도토리’의 어원 [국어 어원]

작성자ysoo|작성시간18.03.09|조회수42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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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어원]


‘뽀뽀’와 ‘입맞춤’과 ‘키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뽀뽀’는 ‘입맞춤’의 유아어이다. 즉 ‘볼이나 입술 따위에 입을 맞추는 일’을 아기들이 말할 때에나 또는 어른들이 아기들에게 말할 때에 쓰는 말이다.

 ‘뽀뽀’란 말은 한때 텔레비전에서 ‘뽀뽀뽀 친구’라는 제목을 가진 어린이 프로그램 때문에 ‘뽀뽀뽀’의 세 음절을 가진 단어로도 쓰인 적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뽀뽀’만 사용되고 있다.

 ‘뽀뽀’는 이렇게 아기들에게만 사용되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어른들이 ‘키스’라는 외래어를 쓰기 어색한 때에 대신 쓰이기 때문에 유아어에서 벗어나서 성인들의 말로도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기들에게나 하던 말이 이제는 어른들끼리도 쓰는 말이 되어 버렸다.


‘뛰뛰빵빵’이나 ‘꼬꼬’(닭)와 같은 유아어처럼 ‘뽀뽀’도 의성어일 가능성이 높다. 또 ‘뽀뽀’는 아마도 입 맞출 때의 소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입 맞추는 소리를 ‘쪽’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원래 ‘입으로 빠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입맞춤을 강하게 표현할 때에 쓰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아기들에게 ‘쪽쪽’은 오히려 맛있는 것을 힘차게 빨 때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기들의 입맞춤 소리는 ‘뽀뽀’가 제격이다. 그래서 ‘뽀뽀’는 입맞춤 소리인 ‘뽀’가 첩어가 되어 ‘뽀뽀’가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1회용 입맞춤의 소리인 ‘뽀’가 연속적인 입맞춤의 소리인 ‘뽀뽀’로 되면서 하나의 의성어로 자리 잡고 이것이 ‘뽀뽀’란 명사로, 그리고 여기에 ‘하다’가 붙어 ‘뽀뽀하다’란 동사까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사용되는 ‘뽀뽀’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이 ‘뽀뽀’란 단어는 1939년에 김유정이 쓴 ‘애기’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것 같다.


"오, 우지마, 우리 아가야, 하고 그를 얼싸 않으며 뺨도 문태고 뽀뽀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큰 행복과 아울러 의무를 우리는 흠씬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애기(1939년)>


이 ‘뽀뽀’가 20세기에 와서야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 이전의 국어사전에 전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국한회어』(1895년), 『한불자전』(1880년), 『한영자전』(1897년) 등에도 전혀 보이지 않고, 1925년에 만들어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에도 보이지 않는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 그리고 심지어 1957년에 완간된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에도 ‘뽀뽀’란 단어는 올림말에 없다. 이 ‘뽀뽀’란 단어가 처음 보이기 시작하는 사전은 1961년에 편찬된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이다. 이 사전에서는 ‘입맞춤’을 귀엽게 일컫는 말’이라고 하고 ‘소아어’로 처리하였다.

그러니까 ‘뽀뽀’가 사전에 정식으로 올려진 것은 1960년대에 와서의 일인 셈이다. 그 이후의 사전에는 모두 실려 있지만, 유독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이 ‘뽀뽀’란 단어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는 이 단어가 아직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은 아기들의 ‘뽀뽀’ 대신에 외래어인 ‘키스’(kiss)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이 ‘키스’란 말은 1922년에 쓰인 나도향의 ‘젊은이의 시절’에 처음 보이고, 이광수의 ‘흙’(1932년), 그리고 심훈의 ‘영원의 미소’(1933년)에도 보인다. 그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숭은 이번 만나서 처음으로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정선은 마치 처음으로 이성에게 키스를 당하는 처녀 모양으로 낯을 붉혔다. 그리고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흙(1932년)>.


"군혹이 달리듯 불뚝 내솟은 팔의 근육!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굳은 포옹! 그리고 퍼붓듯 하는 뜨거운 키스! 계숙이도 흥분이 되어 연감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수영의 널따란 가슴에 파묻었다.

…… 앞마당에서 첫닭이 울었다"<영원의 미소(1933년)>.


그러니 ‘키스’란 말도 이미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든 외래어가 된 셈이다. 이때의 ‘키스’의 대상은 남녀이지만, 입을 맞추는 곳은 꼭 상대방의 입술만은 아니어서 ‘이마’에 입을 맞출 때에도 ‘키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20세기 이전에는 ‘뽀뽀’나 ‘키스’란 단어는 없었을까? 물론 없었다. 그 이전에는 ‘입맞춤’이라고 했다. ‘입 맞추다’란 말은 17세기 말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입 마초다(親口) <한불자전(1880년)> 입 마추다(僻咡, 合口) <국한회어(1895년)>

입 마초다(唚嘴) <역어유해(1690년)> 입 마초다(親嘴) <몽어유해(1768년), 방언유석(1778년), 광재물보(19세기)> 입 맛초다(接吻, to kiss; to touch the lips)"<한영자전(1897년)


19세기 말의 필사본 고소설과 그 이후의 작품에서는 남녀간의 ‘입맞춤’ 표현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 의양의 숀질 고 말 긔롱도 여 보락 긔롱의 아즉 지쳐 셔로 고 굴글면셔 궁굴다 입 맛츄기 엽구레도 간지 간지리면 노와 쥬오 쳬면도 읍쇼 간지럽쇼 징그럽쇼  먹넌치 욕두며 희희희희  농치다

<필사본 고소설(19세기)>

이리 와, 입 한 번 맞추자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싫소, 그 시골 모내는 계집애 입 맞추던 입에서는 똥거름 냄새가 난다나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흙(1932년)>.


19세기 말에 간행된 성경에서는 ‘키스’를 ‘입 맞추다’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키스’를 ‘성애’(性愛)로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그 발에 ‘입 맞춘다’고 하지 ‘키스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유다가 그 압페 여 예수의게 나아와 입 맛초니 예수 갈오샤 유다야 네 입 맛초무로써 인 파냐 니 "<예수셩교전서(1887년)>


그러나 ‘입 맞추다’의 명사형은 ‘입맞춤’과 ‘입 맞추기’의 두 가지인데, ‘뽀뽀’나 ‘키스’에 대해서는 ‘입맞춤’을 쓰고, ‘입 맞추기’는 소위 ‘더빙’, 즉 ‘화면 인물의 입놀림에 맞추어 대사를 하거나 녹음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키스’ 중에 서양식으로 인사할 때 뺨이나 손등에다가 입술을 대는 것에는 ‘입맞춤’이나 ‘키스’를 쓰지 ‘뽀뽀’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입 맞추다’에서 ‘뽀뽀’와 ‘키스’로 분화되어 가면서 각각의 단어들은 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서 앞으로 이 단어들도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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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어원]

‘개나리’의 어원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이 온 것이다. ‘개나리’가 ‘개-’와 ‘나리’로 분석될 수 있을 단어라는 것쯤은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라는 동요를 부를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개나리’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등장한다. 그 형태도 오늘날과 동일한 형태다.


" 개나릿 불휘 디허  즙을 므레 프러 머그며" <구급간이방(1489년)>


그러나 ‘개나리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어 왔기 때문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개나리’는 향약명이 나타나는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모두 한자를 빌어 쓴 차자표기 형태로 보인다.


犬伊那里根<향약구급방(1417년)> 犬乃里花<향약구급방(1417년)> 犬伊日<향약채취월령(1431년)>


‘犬伊那里(根)’, ‘犬乃里(花)’, ‘犬伊日’는 각각 ‘가히나리불휘’, ‘가히나리곶’, ‘가히날’을 표기한 것이다.

‘犬’과 ‘日’은 각각 한자의 훈으로 읽어서 ‘가히’와 ‘날’로,

‘伊’와 ‘那’와 ‘里’와 ‘乃’는 각각 음으로 읽어서 ‘ㅣ’, ‘나’, ‘리’, ‘나’로 해독된다.

그래서 앞의 두 개는 ‘가히나리’로, 그리고 맨 뒤의 것은 ‘나리’가 축약한 ‘가히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伊’(‘伊’는 말음 첨기 표기), ‘犬’은 모두 동물의 하나인 ‘개’를, ‘那里’와 ‘乃里’는 각각 꽃 이름인 ‘나리’로 그리고 ‘日’은 마찬가지인 ‘나리’의 축약형인 ‘날’로 해독할 수 있다.

‘犬’을 ‘개’가 아닌 ‘가히’로 해독한 것은 15세기에 오늘날의 ‘개’는 그 형태가 ‘가히’였기 때문이다.


"각시  가온 가히 엇게옌 얌 여  앒 뒤헨 아 할미러니 <월인천강지곡(1447년)>

 狗 가히라 <월인석보(1459년)>

세 罪器옛 막다히와 매와 얌과 일히와 가히와 방하와 매와 <월인석보(1459년)>

가히 구(狗), 큰가히 오(獒), 가히 견(犬) 더펄가히 (厖) <훈몽자회(1527년)> "


‘가히’가 ‘개’로 변화한 시기는 대개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쇼과 과 양과 돋과 개과 서 뎐염병을 고툐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1541년)>

개 견(犬), 개 구(狗) <신증유합(1576년)>

개며 게 니 러도 다 그리홀 거시온 며 사 애녀 <소학언해(1586년)>

尊 손의 앏 개 구짓디 아니며 <소학언해(1586년)> "


그러나 실제로 ‘가히’가 ‘개’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5세기이다. 그렇지만 ‘가히’와 ‘개’의 출현 환경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하여 쓰인 ‘가히’(犬)는 16세기에 가서야 ‘개’로 변하지만 파생어로 쓰인 ‘가히’는 15세기에 이미 ‘개’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예문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집의 가히 삿기 나코 밥 어더 먹으라 나갓거 기와 그 개삿기 머규  흘 딕조 벌에며 개야미를 주 머기니 "<번역소학(1517년)>


‘집의 개가 새끼를 낳고’의 뜻인 ‘집의 가히 삿기 나코’는 ‘가히’로 표기되면서, ‘개새끼’(강아지)의 뜻인 ‘개삿기’는 ‘가히삿기’가 아닌 ‘개삿기’로 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5세기의 ‘가히나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5세기에 ‘개’(犬)의 뜻인 ‘가히’는 단독으로 쓰일 때에는 ‘가히’였지만, ‘가히+나리’의 파생 과정을 거치면 ‘개나리’로 변화하여 ‘개’가 ‘가히’로 쓰이던 시기에 ‘가히나리’는 이미 ‘개나리’로 변화하여 쓰이는 것이다.

15세기에 ‘가히나리’가 이미 ‘개나리’로 변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접두사인 ‘가히-’나 ‘개-’는 어기인 ‘나리’에 그 의미를 첨가하여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의미를 첨가시켜 준다. 따라서 ‘개나리’는 ‘질이 떨어지는 나리’를 말하는 셈이다. 어기인 ‘나리’는 오늘날의 ‘참나리’인 ‘백합’을 말하는 것이었다.


"들에 나리츨 헴라 엇더케 자며 입부지도 안코 방적도 안이되 <예수셩교젼셔(1887년)> "


‘참나리’의 꽃과 ‘개나리’의 꽃을 비교하여 본 사람이면 두 꽃이 색깔은 다르지만 그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결국 ‘참나리’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꽃을 ‘개나리’라고 한 셈이다. 이 ‘개나리’는 ‘개리, 나리, 개너리’ 등의 다양한 표기가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모두 ‘개나리’로 통일되었다.


"개너리곳(捲丹花) <역어유해(1690년)>

개리곳(辛夷花) <방언유석(1778년)>

 나리 <한불자전(1880년)> "


아처럼 ‘참’과 ‘개’가 대립되어 사용되는 어휘가 제법 있어서 ‘참꽃’ 대 ‘개꽃’, ‘참두릅’대 ‘개두릅’, ‘참가죽’ 대 ‘개가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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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어원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도토리’는 원래 ‘떡갈나무’의 열매만을 가리키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상수리나무에 열리는 ‘상수리’까지도 ‘도토리’라고 불러서, 시골 사람들은 ‘상수리’와 ‘도토리’를 구분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도토리’는 언뜻 보아 그 깍정이가 도톨도톨해서 ‘도톨도톨’의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이 꽤나 많은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 도토리의 밑을 싸받치는 도토리 깍정이가 오돌도톨하지, 그 도토리 받침에서 나온 알맹이는 오히려 매끈매끈하다.

‘그 사람이 도토리 같다’고 하면 키가 작은 것을 연상하지만 오돌도톨해서 거친 듯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키는 작지만 깎은 듯이 세련된 인식을 준다. 도토리가 ‘도톨도톨하다’는 인식은 아마도 그 이름으로부터 민간어원설로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향약구급방』(1417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저의율(猪矣栗)’로 나타난다. 이것은 한자를 빌려 쓴 차자 표기 형태인데, ‘저’(猪)는 오늘날의 ‘돼지’를 뜻하는 ‘돝’을, 그리고 ‘의’(矣)는 음으로 읽어서 속격 조사의 ‘-’나 ‘-의’를, 그리고 ‘율’(栗)은 그 뜻대로 ‘밤’을 표기한 것이어서, ‘저의율(猪矣栗)’은 ‘도밤’으로 해석된다. 그 뜻은 ‘돼지의 밤’이니 ‘돼지가 (즐겨 먹는) 밤’이란 뜻이다. 도토리는 다람쥐나 먹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돼지가 도토리를 먹는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 멧돼지가 먹으면 멧돼지 것이고 다람쥐가 먹으면 다람쥐 것이다.”란 문장이 실려 있을 정도로 멧돼지가 즐겨 먹는 것 중의 하나가 ‘도토리’인 것이다.


‘멧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으로 만들어진 ‘도밤’은 15세기에 ‘도토밤’과 ‘도톨왐’으로 나타난다.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토바 주니라 (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1481년)>

 마다 도톨왐 주믈 나 조차 뇨니(歲拾橡栗隨狙公) "<두시언해>


‘도토밤’이나 ‘도톨왐’에서 ‘밤’을 획인할 수 있고, 한문 원문의 ‘상율(橡栗)’에서도 ‘밤’이 확인된다. ‘도토밤’은 ‘도밤’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다른 어휘에도 그러한 변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명아주’를 뜻하는 ‘도랏, 도랏 ’이 ‘도토랏’으로도 나타나는 현상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토랏’도 ‘돝’과 연관될 것으로 추정된다).


도랏과 팟닙과 먹고 <삼강행실도(1471년)>

도토랏 막대 디퍼 뇨미<두시언해(1481년)>


그리고 ‘도토밤’이 ‘도톨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밤’이 ‘’이 되고 이 ‘’이 ‘왐’으로 변화한 예는 음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도토’에 ‘ㄹ’이 들어간 사실은 음운변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하면서 ‘도톨’이 다른 것에서 온 형태소라고 하기는 어렵다.

 ‘도토밤’은 ‘돼지의 밤’이란 뜻을 가져서 만들어진 것이고, ‘도톨밤’은 ‘도돝도톨한 밤’이란 뜻을 가져서 따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동일한 문헌인 『두시언해』의 초간본에서는 ‘도토밤’이었던 것이 중간본에서는 ‘도톨밤’으로 등장하는 예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톨바 주으니라(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 중간본(1613년)>


그래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도톨’과 ‘돝’과의 유연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돼지’를 뜻하는 ‘돝’이 음운변화를 일으키면서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한 단어들이 꽤나 많다. 예컨대 ‘고슴도치’는 ‘고솜(의미불명)+돝’이었다.

고슴도치의 생긴 모습을 멧돼지와 연상시키면 금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돝’이 구개음화를 일으켜 오늘날 ‘고슴도치’로 되면서 ‘돼지’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윷놀이를 할 때 윷의 세 짝은 엎어지고 한 짝만 젖혀진 경우에 ‘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원래는 ‘돝’이었지만, 오늘날 이것을 ‘돼지’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도톨밤’이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면서 역시 ‘돼지가 먹는 밤’의 의미가 사라지고 단지 의미를 모르는 형태로만 남게 되자, ‘도톨밤’의 ‘도톨’에 접미사 ‘-이’가 붙게 되고 이것이 16세기부터 ‘도토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토리 셔(芧), 도토리 (橡) 도토리 (栭) <1527훈몽자회(1527년)>

굴근 도토리(稼實) <동의보감(1613년)>

도토리와 밤괘 섯것도다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집이 가난야 도토리늘 주어  됴셕을 치더니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도토리(櫟實)<역어유해(1690년)>

도토리 (芧栗) <몽유편(1810년)>

도토리 샹(橡) <훈몽배운(1901년)>


이것이 오늘날의 ‘도토리’로 굳어진 것이다.


이 ‘도토리’와는 다른 것이 ‘상수리’다. 상수리는 보통 ‘상수리나무’라고 하는 참나무에 열리는 열매로서 도토리나무에 열리는 것보다 크기가 크고 둥글다. 그런데 이 ‘상수리’는 이전에 ‘상슈리, 샹슈리, 샹슐니’ 등으로 쓰이다가 ‘상수리’로 정착하였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혼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세기 말부터였다. ‘상’(橡)의 석이 16세기에 이미 ‘도토리’였었는데, 19세기부터 ‘샹수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샹슈리 샹(橡) <훈몽자략(19세기 말)> 샹수리 샹(橡) <아학편이본(1813년)> 샹슐이 샹(橡) <식자초정(19세기)> 샹수리 샹(橡) <언문(1909년)> 상수리 상(橡) <초학요선(1918년)> 샹슈리 샹(橡) <유합천자(1834년)>


이 ‘상슈리’의 ‘상’은 한자 ‘상’(橡)에서 온 것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슈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상수리’를 한자로 ‘상실’(橡實)이라고 하니까 이 ‘상실’이 ‘상슈리’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결국 ‘도토리’는 ‘도밤’, 즉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도토밤’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도톨밤’으로 되면서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여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도토리’가 만들어지면서 ‘도톨밤’에 대치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도토리는 멧돼지가 먹는 것이 아니라 다람쥐가 먹는 것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만약에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이 남아 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무의 열매이지만, ‘상수리’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도토리’가 ‘상수리’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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