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Crusader Kings

[CK2]닉네임으로 살펴보는 크킹 인물들 (3) - 바이킹특집 2편

작성자Gyaaak|작성시간15.09.12|조회수3,105 목록 댓글 25


(1) - the Crusader: http://cafe.daum.net/Europa/1AT/14930

(2) - 바이킹 특집 1편: http://cafe.daum.net/Europa/1AT/14949


----------------------------------------------------------------------------


(2)와 (3)은 원래 하나로 쓰려던 글이라, (2)를 보시는 쪽이 (3)을 이해하시기에 조금 더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해가 어려우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2)를 참조하시거나 덧글로 질문해주시면 최대한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이 남자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라그나르의 다른 아들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별명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무런 별명이 없는 이 남자.

그 심플함이 오히려 더 매력적인 이 남자.

우베 라그나르손(Ubbe Ragnarrsson)입니다.

사실 우베보다는 우바(Ubba), 허바(Hubba)라고 더 자주 표현되는데, 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의 대부분에서 Ubba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인물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할프단으로 영지를 하사한 뒤에 콘솔이나 로드로 플레이해야 합니다.

라그나르의 다른 아들들이 모두 자신만의 영지를 갖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죠.

앞서 언급했듯 아무런 별명이 없는 것도 그렇고, 진짜 라그나르의 아들이 맞나 슬슬 의심스럽기 시작합니다.


이런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그에 대한 기록을 추적해 봅시다.

우베가 자신의 이름을 역사서에 새긴 것은 869년의 이스트앵글리아 침공인데 말이죠.

이 때 이스트앵글리아의 왕인 Edmund the Martyr (순교자 에드먼드, 후에 교회에 의해 시성됨)을 자신의 형제인 이바르와 함께 살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데서 이름을 새겨

사실 이 기록도 완전히 확신하기는 힘든 것이, 11세기 성직자 Abbo of Fleury에 의해 쓰여진 Passio Sancti Eadmundi 에서 제기된 내용이며, 

그 이전의 기록에서는 에드먼드 왕이 전투에서 사망했다고 쓰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외에 우베가 라그나르의 아들이라 서술하고 있는 기록은 Annals of St Neots와 11~12세기에 쓰여진 라틴어 기록이 있습니다만, 진위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쪽 기록에서 우베가 라그나르의 아들이라 기록된 것은 Gesta Danorum이 유일하고, 

Ragnarssona þáttr에서는 Husto라는 이바르의 사생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이 Husto가 Hubba로 잘못 기록되면서,

이후 기록으로 남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외의 서적에서는 라그나르, 혹은 이바르와 우베에 대한 관련성에 대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Anglo-Saxon Chronicle에서는 우베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이름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름없는 한 바이킹 지휘관이 데본에서 적을 만나 죽었는데, 그는 할프단과 이바르의 형제이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우베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데본 지방. 이 부근에서 발견된 바이킹 무덤과 우베와의 관련성이 제기되곤 한다.>


12세기에 Geoffrey Gaimar에 의해 쓰여진 Estoire des Engleis에서 이 지휘관이 Ubba 라고 정의되어있습니다만,

문제는 이게 명확한 출처가 있는 것인지, 가이머의 추론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으며, 실제로 데본 지방에서 종종 발견되는 바이킹 무덤과 우베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우바(Ubba)가 이바르(Ivar)를 혼동했거나, 이바르의 다른 표기가 아닌가하는 주장도 간혹 제기되곤 합니다.

다른 형제들이 확실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그 존재가 수상한 것이 정말로 슬프기 짝이 없네요.


대신 우베의 존재는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데요. 

우베로 추정되는 인물이 죽었다는 데본지방으로 진입하려면 남부 잉글랜드를 제압해야 하는데, 

남부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국가인 웨식스는 노스의 잉글랜드 침략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살아남아서 형세를 역전시켰던 국가거든요.

게다가 데본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서머셋 지방은 웨식스의 최중심지 중 하나였구요.

이러한 정황과 더불어 데본지방이 잉글랜드 서쪽 끝에 있는,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로 진입하는 경로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노스의 잉글랜드 침략이 아일랜드와 스칸디나비아 양방향에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학계의 주류 의견까지는 아니고, 그냥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가설 정도지만요. 


어쨌든 이렇게 불확실한 인물이니만큼, 오히려 플레이어의 자유도는 더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별명이 없다면 얻으면 되고, 기록이 없다면 만들면 되죠.

존재감없는 이 남자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이 남자가 라그나르의 진정한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플레이어의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사족으로 드라마 'Vikings'에서는 Ubbe가 라그나르와 아슬라우그의 첫째아들로 등장합니다.

사료 상으로는 그렇게 신빙성이 있어보이지는 않지만, Ubbe가 워낙 귀요미로 등장하기 때문에 Ubbe가 라그나르의 친아들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올드갓 DLC 발매시점이 Vikings 방영 직후라는 것을 고려하면, Ubbe가 라그나르의 친아들로 당당하게 등장하는 게 드라마와 조금 관계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귀요미 우베. 드라마는 사실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다음은 비요른 'the Ironside' (Bjǫrn Járnsíða)입니다.

흔히 굳센 비요른, 무적의 비요른 등으로 해석되곤 하죠.


이 인물은 일단 정황상 라그나르의 아들임은 거의 98%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아들 중에서도 최연장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정도의 수상함이 남아있는 까닭에 친자여부를 두고 끊임없이 의심을 받는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우선 비요른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을 살펴봅시다. 

Ragnarssona þáttr에서는 비요른을 라그나르와 아슬라우그의 아들이라 명시하고 있으며,

형제들과 함께 스웨덴과 덴마크 전역을 정복한 뒤, 그들의 리더가 되어 Lejre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후 라그나르 사후 스웨덴을 물려받아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Lejre는 현재는 매우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게임 상에서는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Lejre의 정경.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깊은 역사를 이용하여 관광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

 

Hervarar saga 에서도 마찬가지로, 라그나르 사후 스웨덴을 이어받은 것이 비요른이라고 적고 있으며, 

비요른의 아들이 스웨덴의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적음으로서 스웨덴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바르가 했다고 적었던 외스틴 살해 등도, 일부 기록에서는 비요른과 그의 형제들(이바르 포함)이 함께 한 것이라고 적혀있구요.

거기에 정복왕 윌리엄에 관한 최초의 기록자 중 하나인 William of Jumièges가 라틴어로 적은 기록에서도 

Bier Costae ferreae는 Lotbroci의 아들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여기에 시구르드 링을 비롯한 라그나르의 선조들이 비요른이 물려받은 우플란드의 지배자로 기록되고 있는데,

장자에게 자신의 본거지를 물려주는 노스의 승계 방식을 고려하면 기록 면에서나 정황 면에서나 비요른이 라그나르의 장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도 자신의 큰아들인 로베르 2세에게 잉글랜드가 아닌 노르망디를 물려주었죠)


이후 비요른의 후손들이 1060년까지 스웨덴을 계속해서 지배해나간 까닭에, 

이들의 직계 조상인 비요른은 아프 문쇠 가문의 실질적인 시조로 여겨지곤 합니다. 

라그나르나 시구르드 링 같은 비요른의 선조들 또한 아프 문쇠 가문에 당연히 포함하긴 하지만 말이죠.


물론 비요른의 시대도, 역사와 신화의 경계에 가까운 시기였기에 그 실체를 의심받곤 했는데,

문쇠 가문에서는 스톡홀롬 근방에 있는 문쇠 섬(Island of Munsö)에 있는 무덤이 비요른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통성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문쇠 섬의 항공사진 및 비요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이러한 측면에서 라그나르의 정통 후계자로서 플레이하고픈 유저에게, 비요른은 아마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크킹에서도 다른 아들들은 모두 각자 독자적인 가문명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비요른은 라그나르와 같은 아프 문쇠 가문으로서 그 정통성을 보이고 있구요.


그런데 왜 비요른을 1편에서 안 쓰고 2편에 쓰는가 하면...

이렇듯 거의 완벽해보이는 비요른이지만, 역시 라그나르의 아들인지 논란이 되는 한 인물과 소울 - 부라더 관계인 까닭에

그와 엮여서 도매금으로 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라그나르의 친자인지 논란이 되는 또 하나의 인물.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헤스테인입니다.




헤스테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그는 라그나르와 제법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고 추정되긴 하지만,

그가 라그나르의 아들인지, 아니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초빙된 인물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최소한 그가 라그나르와 아슬라우그 혹은 토라의 아들, 즉 적자가 아님은 거의 분명해 보이며,

어머니가 다른 자식이라도 언급은 되는 사료에서조차 그의 이름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라그나르의 아들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헤스테인과 앞서 언급한 비요른이 많은 자료에서 형제로 묘사되기 때문에,

비요른까지 정말 아들이 맞는지 그 정체를 의심받곤 하는 것이지요.

다른 라그나르의 아들들과 헤스테인은 사료상 거의 엮이지가 않거든요.

(물론 황정민이 이정재보고 부라더라고 한다고 해서 진짜 부라더는 아닙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비요른이 헤스테인과 '형제라 부를만큼 친한 사이'지 형제는 아니라 생각하는 까닭에,

그냥 둘을 소울-부라더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역사적 지식이 전혀 없이 헤스테인을 처음 플레이해 본 유저는 상당히 놀라게 됩니다.

별 알려지지도 않은 듣보잡인데, 선택가능한 인물 중 거의 최상급에 가까운 능력치를 갖고 있으며, 

500이라는 무지막지한 금을 들고 있는데다가 시작부터 위신이 1000을 찍고 있거든요.

여기에 1700여명의 초미니 둠스택을 갖고 있기에, 시작부터 3000 가량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헤스테인은 게임 상에서 이러한 평가를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킹 약탈자로서, 전무후무한 지중해 전역의 약탈에 성공하며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 내려오는, '바이킹에 대한 공포' 를 만들어낸 장본인입니다. 

그럼 이제, 이 대단한 인물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록 하겠습니다.


우선 잠깐 바이킹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바이킹에 의한 최초의 습격 기록은 790년경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연구가들은 바이킹들이 약탈질을 시작한 이유를 8세기경 찾아온 소빙하기 때문이라 추정합니다.

이로 인해 북구의 농업, 목축업, 어업등이 일제히 큰 타격을 받았고, 

우월한 항해술을 이용해서 먹고 살만한 지방과 교역을 하거나 약탈을 하고, 

때로는 살기 적합한 땅에 정착한 뒤 뿌리를 박은 것이 바이킹의 시초라는 것이죠.


물론 그들은 당시 기준으로 상식을 초월하는 항해술을 갖고 있었고, 830년 경에 이미 콘스탄티노플에 사자를 보낸 것이 확인됩니다만, 

이건 아마도 드니프로 등, 동유럽의 강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추측되고, 실질적인 정착 및 약탈은 프랑크 왕국 및 브리튼 섬 정도로 한정되었죠,

앞서 언급했듯 애초에 목적 자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 까닭에, 갈 데까지 가보는 게 아니라 갔다가 돌아오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개중에는 꼭 정신이 나간 사람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이 정신나간 사람이 능력까지 있으면 상식을 초월하는 짓을 해내고야 맙니다.


헤스테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834년 느와흐무티에(Noirmoutier) 섬 약탈입니다.

느와흐무티에 섬은 799년부터 약탈된 기록이 남아있을만큼, 바이킹들에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맛집이었습니다.

이후 약 20여년 간 헤스테인은 프랑크 왕국을 신나게 약탈하며 자신의 이름을 기록에 남깁니다. 


<맛집 지도.jpg>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약탈을 하고 싶었던 헤스테인, 

그리고 그의 소울-부라더인 비요른은 프랑크 왕국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859년, 기록에 따르면 둘은 64척의 배를 끌고 루아르 강을 이용해 이동하며 지중해 근방까지 내려갑니다.


<르와르 강의 위치. 낭트에서 프랑스 남쪽까지 이어지는 큰 강으로, 강 줄기를 따라 지중해 해안도시에 진입할 수 있다>


다만, 이 때 르와르강의 큰 줄기를 따라 몽폴리에 등의 프랑스 동남쪽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서쪽 줄기를 타고 프랑스 남쪽과 이베리아 반도로 진입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보이며,

어쩌면 대서양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지브롤터 해협을 돌아 지중해로 진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 있는 아스투리아스 왕국과의 교전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지브롤터 해협 근방의 니에블라, 알헤시라스가 헤스테인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어떤 경로로든 지브롤터 해협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명백해보입니다. 

 


이후 헤스테인은 오리후엘라, 발레리아스 제도, 루슬리옹(마르세이유 바로 위 지역)등을 약탈한 뒤, 

론강 유역의 마흐그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나르본, 님, 발랑스, 아를을 약탈합니다.


남부 프랑스를 완전히 털어먹은 뒤, 헤스테인은 캐-썰릭의 심장 이탈리아로 향합니다.

 

<헤스테인이 로마인 줄 알았다는 루나, 현재는 유적만이 남아있다>


루나에 도착한 헤스테인은 공략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책략을 사용합니다. 

자신이 죽었다고 소문을 낸 헤스테인은 부하를 통해 루나의 주교에게 사기를 칩니다.


"헤스테인님은 죽기 직전 캐-썰릭으로 개종하셨고, 꼭 이탈리아 땅에 묻히고 싶다고 하십니다."


순진한 루나의 주교는 관을 들여오는 것을 허락했고, 

관 속에 숨어있던 헤스테인은 루나에 들어오자마자 관뚜껑을 박차고 뛰어나와 루나를 점령했다고 하네요.

물론 믿거나말거나 한 민담이지만 말이죠.


또한 이것도 여담이지만 헤스테인은 루나가 로마인 줄 알았다고 하는데, 

만약 그가 로마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교황 성하는 블로트 축제에 게스트로 참여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관뚜껑에서 튀어나왔건, 정공법으로 승리했건, 어쨌든 헤스테인은 루나 공격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해안가를 따라 이동한 뒤, 피사와 피에솔레(피렌체의 동부)를 약탈합니다.


배를 가득 채운 헤스테인은 안전한 항구 본거지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루아르 강으로 향하던 중,

지브롤터 해협에서 벼르고 있던 이슬람 함대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헤스테인과 비요른은 그리스의 불을 이용해서 싸우는 이슬람 함대에게 완전히 떡실신하게 되고,

60여척의 배 중 40척을 잃고 나머지 20척만으로 도망갑니다.


그러나 헤스테인은, 20척으로 도망가는 와중에서도 팜플로나를 약탈하고 파괴하며 알뜰히 보물을 쌓았으며,

20여척의 배에 담긴 보물만으로도 헤스테인과 비요른은 남은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만큼의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붉은 원이 헤스테인이 지중해 원정에서 약탈한 지역. 당시 지중해의 어지간한 지역은 다 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헤스테인은 낭트에 자리잡은 채 프랑스 북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브리타니의 왕 살로몽과 연합하여 앙주 지방을 거덜내면서, 

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가 살로몽을 브리타니의 왕으로 공식 인정하게끔 합니다.

그 와중에 카페가문의 로베르를 살해한 것은 덤이구요.


<피해자 로베르씨. 그의 두 아들이 서프랑크(프랑스)의 왕인 외드 카페와 로베르 1세이며, 

그의 증손자가 카페 왕조의 창시자 위그 카페이다.>  


여기까지가 시나리오 시작년도인 867년까지의 헤스테인의 인생역정입니다.

이후 헤스테인은 892년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건너가지만, 웨식스의 알프레드 대왕에게 패배하고 낭트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역사 속에서의 일일 뿐이죠.


유저가 잡은 헤스테인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부르타뉴 지방을 지배할 수도 있으며, 라그나르의 아들들과 함께, 혹은 혼자의 힘으로 영국을 정복할 수도 있습니다.

비옥한 프랑스를 공격하여 노스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 수도 있고, 다시금 위대한 지중해 원정을 떠날 수도 있죠.


그가 라그나르의 아들이든 아니든 그건 헤스테인에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라그나르와의 혈연에 기댈 필요가 없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킹이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헤스테인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몫입니다.




지금부터는 아프 문쇠가 아닌 나머지 가문의 바이킹들을 살펴볼텐데요.

이전에 언급한 시구르드 - 라그나르는 스웨덴 왕가인 아프 문쇠 가문의 시조들이라 신화 상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라그나르의 아이들은 색슨 쪽 역사서에 기록이 많고, 헤스테인은 한 일이 넘사벽급이라 할 말이 많죠.

반면 지금부터 언급할 인물들은 역사적 기록이 상당히 부실한데다, 신화 상의 기록도 적기에 간단한 소개 정도가 될 거 같습니다.


어쨌거나 첫 번째 인물은 시구르드의 적수였던 하랄드 'Wartooth' 혹은 'hiltertooth' (Haraldr hilditönn)입니다.

이 인물의 별명인 워투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는데, 하나는 전쟁 중에 이빨이 두 개 뽑혔는데 새로 난 이빨이 돌출되어서 생긴 별명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영웅' (War Hero)가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게 많진 않구요. 

시구르드 소개에서 적었듯이 덴마크의 왕이었으나 브라발라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아들도 이 전투에서 하랄드와 함께 전사해서 덴마크의 지배권이 시구르드에게 넘어갔다...

정도가 끝이겠네요.


덴마크 쪽 기록인지라 "시구르드한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가까워짐을 알았기에 전장에서 죽어 발할라로 가고 싶었던 것" 이라고 적혀있긴 합니다만...


만약 이 인물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발할라는 갈 때 가더라도, 우선 시구르드 링 먼저 발할라로 보낸 뒤에 생각하도록 합시다.




867년 시나리오의 먼치킨 중 하나인, 류리코비치 가문의 시조 류리크입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좀 자세히 설명하고 싶긴 한데, 쓸 내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요. 

스칸디나비아 바이킹들은 신화 속에라도 남아있고, 프랑크에서 깡패짓했던 기록으로 사료 간 교차검증이 되는데,

이 인물은 성실하고 열심히 노브고로드를 개척한 인물이라...


그나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우선 류리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노스인이고, 류리크의 아내는 비요른의 딸이라고 전해집니다.

크킹에서도 이 설을 따르고 있구요.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류리크의 가문의 유전자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류리크가 슬라브 인종이 아니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다만 류리크의 후손들에게서 나타나는 유전자는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유전자라고 하네요.

반면 발트해 근방의 핀란드인에게서는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류리크가 노스에서 온 바이킹이 아니라 핀란드쪽 출신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게임 상에서 류리크의 영토확장을 재현하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문을 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1300년대를 기점으로 류리코비치 가문원의 숫자는 500명을 넘어갑니다.

한 때 서유럽을 뒤덮었던 카롤링거 가문은 겨우 131명, 카페가문은 채 100명도 되지 않죠.

과연 플레이어는 류리크와 그 후손들의 생식능력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까요?



그 드물다는 천재트레잇을 달고 있는 뒤레(Dyre, Dir, Dire, Dyri) 'the Stranger' 입니다.

이 인물은 정말 수수께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 시대 인물들이 그렇듯 존재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건 물론이고,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가 한 명의 독립된 인물인지, 두 명의 공동 지배자였는지, 온갖 추측만이 난무하는 인물이죠.


우선 이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사료로는 16세기 중반에 쓰여진 Nikon Chronicle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Askold (Oskold)는 Kyi 가문의 후손으로 키예프에 동슬라브족 최초의 국가를 세웠으며, 기독교인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12세기 초에 쓰여진 Primary Chronicle에서는 전혀 다른 기록이 존재하는데요.

여기서는 Askold와 Dir가 류리크의 허락을 받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던 중, 키예프에 정착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두 사료들은 중세 슬라브에 대한 거의 유이한 사료들이라 할 수 있는데, 서로 완전히 다른 내용을 적고 있는 까닭에 혼란이 가중됩니다.


한편 라그나르와 그의 아들들에 대해 적고 있는 Ragnarssona þáttr에서는 Askold가 할프단의 아들, 즉 라그나르의 손자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Al-Masudi라는 아랍 역사가(896 ~ 956)는 Al - Dir가 최초의 슬라브 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Askold 혹은 Dir에 대해 동시기에 언급된 유일한 사료입니다.


이러한 중구난방의 사료덕분에, 이 시기 키예프의 지배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은 없는 상태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 설명이,


1. 키예프의 지배자는 Dir (혹은 Dyre)

2. Askold, 혹은 Oscold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노스어 óskyldr(영어의 strange)에서 파생된 것 

3. 루스인들이 Dir를 óskyldr Dir, 즉 뒤레 'the Stranger'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óskyldr의 의미가 잊혀지면서 Ascold와 Dir 의 두 사람이 존재한 것으로 오해된 것


이라는 것입니다. 크킹에서도 이 설명을 따르고 있구요. (Askold = óskyldr는 뒤레의 성으로 붙어있습니다)


한편 뒤레 혹은 아스콜드역사에 기록된, 860년 루스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공성의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콘스탄티노플 교외지역을 신나게 유린하다가 이유없이 돌아가버린 이 행위에 대해 

콘스탄티노플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으로 표현할만큼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부족하지 않을까요?

플레이어의 야망과 뒤레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넘어 콘스탄티노플에 깃발을 올리는 건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루스는 동방의 로마임을 자처할 필요없이, '로마 그 자체'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하랄드 'Bluetooth' (Haraldr blátǫnn Gormsson) 입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으로, 스칸디나비아 최초의 기독교 국왕 중 하나입니다.


별명인 블루투스는 


1. 그냥 이빨이 하도 더러워서 생긴 별명이라는 설, 

2. tǫnn이 Thegn(족장)을 의미하고 Blue는 어둠을 의미하므로 어두운 족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설

3. 블루투스가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비싼 파란 옷을 즐겨입어서 생긴 별명이라는 설.

이에 따르면 tǫnn의 의미는 2번과 동일하지만, Blue가 어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파란색을 의미함.


이상의 3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의 업적이라면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인데요. 

다소 강압(?)적이기까지 한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포교한 끝에, 스칸디나비아, 특히 덴마크는 비교적 빠른 기간만에 개종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그의 강압적인 포교는 여러모로 많은 불만을 일으켰고, 결국 반란을 일으킨 아들에게 살해되고 말죠.

(살해되지 않고 독일지방으로 도망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크킹에서는 블루투스의 사망은 자연사로 표기하되, 아들에게 친족살해자 트레잇을 달아줌으로써 두 설 모두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블루투스에게 반란을 일으킨 아들이 스벤 1세이며,

그 스벤의 아들이 바로, 노스에 의한 잉글랜드 점령을 완수하고 북해에 제국을 건설한 크누트 대왕입니다.

만화 <빈란드 사가 > 등 크누트 대왕을 그리는 많은 매체에서, 크누트의 아버지인 스벤 왕의 성격이 개차반으로 나오는 데에는 이러한 속사정이 있는 것이죠.


어쨌든 종교문제가 얽혀있는 탓에, 그에 관한 기록은 상당히 이중적입니다.

캐-썰릭 국가들이 그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으로 기록하는 반면, 스칸디나비아 내부의 기록에서는 비겁한 겁쟁이로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고 많이들 활용하시는 블루투스 무선통신 기능이 바로 이 인물의 별명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블루투스를 상징하는 로고가 바로 하랄드 블로탄의 이니셜 H, B를 상징하는 룬문자 hagall과 berkanan입니다.

블루투스는 플레이가 불가능한 시기의 인물이기 때문에 뭐, 특별히 더 설명할 내용은 없을 거 같네요.


이외에 1066년 시나리오의 Eric 'the Heathen' 가 있긴 한데,

이 인물은 정말 사료에 딱 한 줄 나오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해서 그냥 생략합니다.



이상으로 바이킹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소개하지 않은 인물 중에 자주 플레이하시는 인물이 있거나 궁금하신 인물이 있으실 경우,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추가하거나 댓글로 간단히 소개해드리도록 할게요.


앞선 두 글보다 더 긴 글이었던 거 같은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썼는데, 제가 당연히 썼다고 생각하고 빼먹은 인물이 있어서 간략하게나마 추가합니다(...)




노르웨이 최초의 왕이라 기록되는 하랄드 'Fairhair' (Haraldr Hárfagri) 입니다.


노르웨이는 척박한 북구 중에서도 완전한 똥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북구의 바이킹들조차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요.

그 버려진 땅을 통일하고 하나의 국가로 발전시켜나간 노르웨이의 시조라고 할 수 있을 인물입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1960년대 북해유전이 발견되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땅이 됩니다)


별명인 'Fairhair'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요. 

하랄드는 노르웨이의 소국 중 하나인 호르다란드의 공주 기다(Gyda Eiriksdatter)에게 반해 청혼하지만,

하랄드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기다는, 노르웨이 전체의 왕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에 하랄드는 노르웨이의 왕이 되기 전에는 머리를 정리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죠.

그래서 하랄드의 원래 별명은 'Tanglehair' 였습니다.

하랄드는 결국 근성으로 노르웨이 전체의 왕이 되고, 기다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지저분했던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Fairhair'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강렬한 러브스토리를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하랄드는 867 시나리오에서 이미 결혼한 상태인데, 

뒤를 이어 즉위하는 에릭 1세의 어머니가 기다가 아니기때문에 다른 여자가 마누라 자리를 차고 앉아있습니다.

별명도 탱글헤어가 아니라 이미 페어헤어구요. 

하랄드가 스웨덴 왕이었더라면 아마 전용 이벤트에 전용 디시전까지 있었을 것


그러나 다행히도(?) 게르만 파간은 첩을 들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유저의 손으로 노르웨이를 통일한 뒤에, 기다라는 이름의 첩을 들여 역사 재현을 해 보도록 합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멍태 | 작성시간 15.09.12 류리크의 미친 확장력은 대단하죠.
  • 작성자호엔촐레른 | 작성시간 15.09.12 좋은 글 ㅊㅊ
  • 작성자호노룰루산 | 작성시간 15.09.13 이렇게 좋은글을 보고 바이킹 멋지다! 하고 크킹에 들어가면 3초만에 다시 "아씨 노스퀴토들 ㅡㅡ" 이렇게 되더군요. 고로 블루투스처럼 '강압적'으로 기독교화 시켜줍시다.
    성전이다 이 그지깽깽이들아!
  • 작성자까망엘프 | 작성시간 15.09.14 와 정말 좋은 글이네요..
  • 작성자알바니아 | 작성시간 24.03.19 오랜만에 와도 생각나는 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