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9년, 새해가 시작되기 무섭게 가라는 십자군은 안 가고 베네치아부터 때리는 헝가리 왕 벨러 3세.
목표는 해안의 요충지 자다르입니다. 베네치아는 바르바로사에게 맞은 데가 아물기도 전에 또 얻어맞고 있군요. 불쌍해라...
사실 아들의 신부감을 찾기 위한 사신은 에스테르곰에도 들렀습니다만, 벨러의 유일한 딸 머르기트의 얼굴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입이 비뚤어져 있었어요... 사실 카지미에시 2세의 부친인 볼레스와프 3세의 별명이 '크시보우스티', 즉 비뚤어진 입이란 뜻입니다.
헝가리는 언제나 잠재적 동맹으로 삼을 가치가 있지만, 가문의 트라우마를 굳이 건드리고 싶진 않네요.
당연히 벨러는 펄펄 뛰었습니다. "그대의 딸은 뭐 어디 대단한 데 시집가기라도 하나?"
뭐 이해합니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왕이기도 하니, 동로마 제국에게서 되찾아야 할 땅이 널렸는데...
폴란드가 이러면 동맹을 맺을 명분이 없잖아요. 배신감이 엄청날 겁니다.
고작 혼인 하나 어그러진 거 가지고 뭐 저리 화내나 싶을 수도 있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과거 폴란드는 보헤미아의 공격으로 망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조상의 무덤은 파헤쳐지고, 보물들은 죄다 빼앗기고...
쫓겨난 카지미에시 1세 - 카지미에시 2세에겐 증조부입니다 - 는 죽을 힘을 다해 헝가리로 도망쳤습니다.
당시 헝가리 왕 이슈트반 1세가 그를 받아들여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냥 송환해버리고 당장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도.
벨러가 당장 카지미에시를 적대하지는 않겠지만, '두고 보자'라는 게 지금으로선 제일 정확할 겁니다.
"술탄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하면 흠결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완전히 기가 죽은 라돔 시장의 보고.
근면하고,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알며, 자비롭고 공정한 외교 4단계의 살라흐 앗 딘. 위신은 바르바로사보다도 높습니다.
어디 보자... 예루살렘 왕국과는 이미 한판 붙었다가 휴전 중이고, 세 개의 속국을 거느리고 있으며... 어? 반 아이유브 연합이 두 개나?
그렇습니다. 너무나 잘 나가는 그를 사라센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슬림 반 아이유브 연합의 수장이 칼리프예요...
투구를 쓴 채 왕좌에 앉은 시빌라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녀를 살려두었다는 게 저리 미움받을 이유인가...
어쨌거나 이젠 저 살라흐 앗 딘의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토 수복이 우선인 벨러와는 달리, 카지미에시는 교황에게 순명하기로 서약했으니까요.
포메랄리아가 없다면 내륙국이 되어버리는 폴란드에서 실어나를 수 있는 병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발트해의 배들을 끌어모아 봤자 600명이 한계... 용병대의 배까지 동원해야 1600명. 동맹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게 살 길입니다.
급하게 들어갔다가 순삭당하는 다른 기독교 군주들의 병력들을 보며, 카지미에시는 겨우 카이로의 성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포르투갈 출신의 장수인 주앙 데 바이아오의 지휘하에 공성전이 시작되었습니다. (Siege Leader는 귀해요)
1180년, 실제 역사보다 몇 달 빨리 동로마 황제 마누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패고 다녔으면 반연합 해체 알림이 먼저 뜨는거야...
새로운 바실렙스는 안드로니코스 랄리스-라울. 살아있는 사탄 소리를 듣는 인물이군요. 군재가 모자라서 그의 세력은 사실 별볼일 없습니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네마냐는 이 자에게 치를 떨면서도 두 아들의 목숨을 저당잡혀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카지미에시 또한 바르바로사의 궁정에서 인질로 살아봐서 잘 알죠. 그냥 숙이고 살라는 말밖엔 못 해주겠네요.
하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믿었던 조카 레셰크가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왕이시여, 제 남편은 쿠야비아 공작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부디 정의로운 판결을!"
피해자는 레셰크의 봉신. 대놓고 영지를 노린 살인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하사했던 땅인데, 죽이고 도로 빼앗은 겁니다.
증거가 너무 뚜렷해서 감싸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야망 칸의 상태가...? 주군에게 봉작을 요구하기.
저딴 짓을 해놓고 영지를 더 달라고? 돌아버렸군요. 힘을 더 키워서 왕위를 요구할 속셈이에요. (Strong Claim)
"짐의 딸 마리아와 쿠야비아 공작 레셰크의 약혼을 파기한다. 시칠리아 왕 윌리엄에게 국혼을 맺을 뜻이 있는지 알아보라."
무고한 자의 피를 묻힌 조카놈에게 내 귀한 딸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진노한 왕은 재상인 라돔 시장 보구발에게 엄숙하게 묻습니다.
"죄없는 이웃의 밭을 탐내 그를 죽인 자에게 어울리는 처벌은 무엇인가?"
불쌍한 보구발은 제 죄인 양 덜덜 떨고 있습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떼어 말하기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생명은 생명으로..."
아니 잠깐, 지금 나보고 친족살해자가 되라고?
왕국 첩보관, 쿠야비아와 마조비아의 공작 레셰크의 체포동의안이 세임을 통과했습니다.
남은 것은 실행뿐입니다. 하지만 왕은 망설입니다. 어떻게 내 손으로 저 아이를...
'네가 돌봐주어라. 병약한 아이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만일 자식 없이 죽거든, 그 유산인 쿠야비아와 마조비아는 네가 물려받도록 해라...'
레셰크는 죽은 둘째 형 볼레스와프 4세가 남기고 간 유일한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젠 폴란드 왕국의 가장 큰 불안요소입니다.
그는 비록 겁에 질려 셋째 형 '스타리'와 함께 나를 황제의 손아귀에 쥐여준 채 달아나버렸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입니다.
카지미에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