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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sader Kings

[CK2]게임 내 역사적인 가문 소개(11) Kingdom of Jerusalem 王家 2편

작성자shyisna|작성시간14.04.04|조회수1,333 목록 댓글 2

쓰고나니 후회스러운데... 조심스럽네요... 쩝...

 

앞선 두 가문은 예루살렘왕국 때문에 소개해 드린 것이고... 이제부터가 본론이겠죠. 앙주가문...

잠시 고민되는 점은... 앙주지방의 지배가문이니 앙주백작의 역사부터 소개해야 되는가에 대한 어줍지 않는 망상 때문입니다. 가문 소개이어니... 얼마 전 제국의 황제 위까지 넘보신 어느 앙주시장 여성분의 연대기에 대한 휴유증(?)으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의 일정 부분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앙주백작 및 공작 작위는 프랑스 역사에서 엄청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이왕 소개하는 김에 백년전쟁 까지 갈 예정이니... 처음부터 시작하는 걸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갑자기 서양사 강의 준비하는 이 느낌은....??? @.@

 

앙주백작령의 기원은 서프랑크왕 Charles ‘the Bald’marquis of Neustria이며 count of Tours였던 로베르[카페가문의 중시조]에게 작위를 수여하면서 시작됩니다. 그의 아들 오도는 훗날 서프랑크왕이자 네우스트리아왕이 되면서 영지를 쿨하게 신하에게 하사합니다. 내가 왕이 되었으니 심복에게 넘기지 뭐...

Viscount of Angers였던 Ingelger는 운 좋게도 앙주백작령을 받게 되어 자신의 이름을 딴 House of Ingelger를 열게 됩니다. 시조의 이름에서 가문이 유래한다는 것은 이미 아실터...

 

 

867년 올드갓 시나리오 게임 상에서 등장하는 초대 앙주백작인 Ingelger입니다.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앙주의 주인으로 등장하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으로 성장해나갈껍니다...ㅋㅋㅋ

 

 

그의 아들은 Fulk I ‘the Red’... 929년 그가 앙주백작이 되면서 풀크라는 백작들의 이름에 대한 계승의 첫 스타트가 시작됩니다. 풀크1세의 현손자인 조프리2세는 다섯 번 결혼하였고 첩도 들이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자손이 없었습니다. 결국 1060년 사망하자 영지는 여동생 에멘가르드에게 넘어갔죠. 그녀는 두 번 결혼하였는데 첫 남편은 Geoffrey II, Count of Gâtinais로 힐데가르드, 조프리와 풀크 등 21녀를 남겼고, 두 번째 남편은 부르군디공작 로베르1세였는데 딸 힐데가르드를 얻었고(이부언니랑 이름이 같음) 힐데가르드는 나중에 아키텐공작 빌럼8세의 부인이 됩니다. 아무튼 앙주백작령의 경우 장남인 조프리가 이어받아 앙주백작으로 조프리3세가 됩니다. 바로 널리 알려진 앙주 가문의 시조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잠깐...! 게임 플레이 하시다보면... 훗날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등장하는 de Courtenay가문이 나옵니다. 이 가문이 이때 처음 앙주백작 가문과 통혼하는데 조프리의 친누나인 힐데가르드가 Joscelin I, Lord of Courtenay와 결혼하면서 쿠르트네이남작 가문은 앙주백작 가문의 외손 가문인 House of Courtenay를 이루죠. 이 연줄 때문에 훗날 후손들이 명문귀족으로 발전합니다. 상세히 설명한다면... Joscelin I of Courtenay는 두 번 결혼하는데 첫 결혼이 바로 앙주백작의 누이 Hilegarde of Gatinais였고 재혼상대는 Elizabeth of Montlhéry, 앞서 소개해 드린 예루살렘왕 볼드윈2세의 이모였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첫 부인의 자식인 Miles of Courtenay의 자손들은 플랜타저네트 가문과의 연줄로 잉글랜드로 진출하여 Earl of Devon 작위를 가지면서 명문이 됩니다. 그리고 재혼한 부인의 자식인 조슬랭은 예루살렘왕국으로 진출하여 Joscelin I, Count of Edessa가 되어 또 하나의 명문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Joscelin I의 손녀 아그네스는 훗날 예루살렘왕 아마릭1세의 왕비가 되기도 합니다. 이게 다 결혼에 의한 연줄입니다...

 

결혼빨로 아들을 앙주백작으로 만든 장본인 Geoffrey II, Count of Gâtinais의 가문 위상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녀가 남작부인이 된 것으로 보아서요. 다만 처갓집의 자손이 단절되자 두 아들이 Geoffrey III, Count of AnjouFulk IV, Count of Anjou이 되면서 가문 이름이 앙주가문으로 변경됩니다. 외손자로서 백작이 된 조프리3세는 별병이 "the Bearded"였는데 백작이 된 직후 결혼했지만 7년간의 결혼기간 중에 자식을 얻지 못했고 아내가 죽은 다음해 그도 죽는 바람에 동생이 후계자가 됩니다.

1043년에 출생한 풀크4(Fulk IV)는 형을 이어 1068년 앙주백작이 되었고 5번에 걸친 결혼을 통해 총 3명의 자식을 얻습니다. 첫 아내가 장녀 Ermengarde를 낳았는데 그녀는 두 번의 결혼으로 아키텐공작부인 및 브리타니공작부인이 되었죠. 두 번째 부인이 상속자가 된 조프리4세를 낳았고 마지막 결혼은 1087년 한참 연하였던 Bertrade de Montfort(1070-1109)와 했는데 그녀는 Simon I de Montfort의 딸로 그녀의 선조는 Count of Dreux의 분파였습니다. 대귀족의 후손이지만 제대로 된 영지를 상속받지 못한 귀족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Count of Évreux의 딸이었기 때문에... 앙주백작의 다섯 번째 부인이라도 될 수 있었던 겁니다. 44세의 풀크4세가 17세의 어린 신부를 맞이한 것은 상속자가 조프리뿐이라 가문의 대가 절멸될 것을 두려웠거나 이미 외가의 대가 끊겨본 경험자의 노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어린 신부는 상당한 미인이었던 모양입니다. 호색했던 풀크4세가 몽포르 가문의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하였고 열렬한 구애로 결혼에 골인했다는 연대기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랑이 동반된 결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혼에는 곧 결실이 맺혔고 1089~1092년경 사이에 풀크가 태어납니다. 바로 예루살렘왕이 되는 풀크입니다...

 

 

 1081년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는 풀크4세입니다. 능력치가 준수하네요...

희안하게도 그의 부인란은 항상 비워있네요... 흠... 

천재 여인 데려오세요~ 아들 이름은 풀크로 해서... 프랑스와 예루살렘을 정벅...

 

 

그런데 변수가 등장합니다... 풀크가 태어날 부렵... 그의 어머니는 고귀한 자의 눈에 또 들고 맙니다. 얼마나 미인이었는지... 백작부인으로 만든 그 미모는 그녀를 다시 왕비로 만들죠. 앙주백작의 주군인 필립1(Philip I, 1052~1108)는 왕비 Bertha of Holland 사이에 31녀를 두었고 여기엔 후계자 루이6(Louis VI)도 포함됩니다. 그는 앙주백작부인의 미모에 홀딱 반하였고... 일설에는 납치되었다고 하는데... 정식 왕비가 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앙주백작이 정식으로 이혼해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하여간 풀크4세는 쓰린 마음으로 아내를 보내야했죠. 그 후 1109년 죽을 때까지 다시는 결혼하지 않은 걸로 보아... 쓰리고 쓰린 마음으로 자신의 주군과 옛 아내를 바라보며 울분으로 나날을 지새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추측...

필립1세는 Bertrade와 결혼해 Count of Mantes가 된 Philip 21녀를 생산하죠. 이들은 모두 훗날의 풀크5세의 이부동생들이며 프랑스의 왕자와 공주... 신분이 확~ 다름니다만 풀크의 신분을 한층 고귀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훗날 예루살렘왕국이 승천할 때 이부누이 Cecile of France는 중동으로 시집을 와서 Tancred, Prince of GalileePons of Tripoli와 차례로 결혼합니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Raymond II, Count of Tripoli는 훗날 예루살렘왕 볼드윈2세의 딸 헤디에르나와 결혼하죠. 그리고 그는 하샤신에 의해 암살되는 최초의 비무슬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앙주가문과 연줄이 닿은 가문들은 대부분 다시 예루살렘왕국에서 만나죠... 어떤 인연이든지... 그래서 결혼은 잘해야 됩니다...

한편 앙주백작으로 인정되지만 공동통치자로서 이름뿐인 Geoffrey IV(1075~1106)은 첫 번째 부인 소생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마누라를 왕에게 빼앗겨 정신이 나간 아버지와 앙주를 공동통치합니다만... 아버지는 어린 동생 풀크만을 총애하고 장남인 그의 권리를 빼앗으려 합니다...

... 어려운 일을 장남에게 맡겨 궁지에 몰아넣죠. 심지어 화살에 의한 암살위협도 받고... 이에 열 받아서 아버지랑 그 잘난 계모를 죽일 궁리까지 했다는... 결과론적이지만... 조프리는 사랑받지 못하고 죽은 비운의 장남이었다는 사실 뿐...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으로서 그의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는 어이없는 사실만 남는군요.

 

 

이 가문은 잉글랜드와 예루살렘을 지배하는 앙주가문의 부계조상입니다.

즉 조프리3세와 풀크4세의 친할아버지란 소리겠죠... 아들이 모계결혼해서 가문이 변경된 사례...

 

 

1109년 아버지가 죽자 풀크는 앙주백작이 됩니다. 풀크5세로서... 그리고 1110년 이웃 영지를 외동딸로서 불려받는 Ermengarde, Countess of Maine과 결혼하여 명목상의 메인백작을 겸합니다. 장인이었던 Elias I, Count of MaineGervais II, Lord of Château-du-Loir의 딸이었던 마틸다와 결혼해서 딸 하나만 얻자 초초해지죠. 아내가 죽자마자 1109년 다시 급하게 재혼하였지만... 다음해 사망함에 따라 누구랑 결혼할까 고민하던 풀크5세만 행운을 잡습니다. 앗싸~ 이웃 멘지방을 평화적으로 접수...

ErmengardeCountess of Maine으로 1126년 죽을 때까지 22녀를 낳습니다. 장남인 Geoffrey와 차남인 Elias 그리고 마틸다와 실비아를 남기죠. 그녀가 죽자 무슨 생각인지... 풀크5세는 짐을 꾸려 성지로 갑니다. 심경의 변화가... 아무튼 영지는 자식들에게 맡기고 죽을둥살둥 싸움만 해대다가... 갑자기 볼드윈2세로부터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게 되죠...

위대한 풀크여... 당신... 예루살렘왕 한번 해보지 않겠나...?

놀라운 제안에 풀크는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귀국길에 오르고...

두 아들에게 영지를 분배합니다. 장남에게 앙주백작령을 물려주었고 차남에게 처가로부터 받은 멘백작령을 주죠. 그 중 차남이었던 Elias II, Count of Maine1145년 반란을 일으키다 투옥되어 1151년 투옥 중 사망하였고 외동딸만 남겼는데 비어트릭스는 백작이었던 John I of Alençon과 결혼하였습니다만 그녀의 후손들은 멘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엘리아스 계열이 반역자의 후손이라서... 결국 조프리가 어머니의 영지도 모두 물려받죠. 아마도 음모...?!

딸 마틸다는 잉글랜드왕 헨리1세의 후계자 윌리엄과 결혼합니다만... 그가 요절하자 수녀원으로 직행합니다. 이 결혼은 훗날 앙주가문이 잉글랜드를 먹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그릭 막내 실비아는 노르망디공작의 후계자 윌리엄과 결혼했다가 과부가 되어 다시 플랑드르백작 티에리와 재혼하여 33녀를 얻었는데... 플랑드르와 불로뉴, 에노, 사보이백작들의 할머니가 됩니다. ... 이들 가문과 연혼을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하 생략~

 

 

풀크5세가 첫 결혼에서 태어난 조프리4세입니다...

노르망디 여공이며 진정한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었죠...

 

게임에서는 노르망디공작으로 나오네요...  서자 표시는 아마도 게임상의 룰때문에...

즉 가문명이 변경되고 이복형제인 예루살렘가문이 단절되면 조프리와 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왕이 됩니다.

그래서 서자로 표기해서 클레임승계을 막아놓았네요. 앞서 에스테가문의 벨프가문에 대한 처리와 비슷합니다.

게임상의 룰 때문에... 부득이 서자표기가 된 것고 벨프가문이나 플랜타저네트가문은은 절대 서자 아닙니다...

 

 

 

다음 이야기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새로운 왕조를 일으킨 풀크의 이야기입니다... 

트레잇은 그다지... 별로군요...

 

 

프랑스의 앙주는 풀크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조프리 자손들이 이어갑니다. 그들은 훗날 잉글랜드를 먹습니다. 그리고 재혼하게 되어 얻게되는 풀크의 자손들은 예루살렘왕가를 이룹니다. 다음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앙주가문이 됩니다.

아무래도 풀크는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떠난게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만... 전번에 말씀드린 실질적으로 초대왕으로 보이는 Godfrey IV, Duke of Lower Lorraine도 삶의 집착이나 고민 등을 성지에 가서 해결하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되죠... 성지에 가면 무엇이든 해결 가능하다... 이런 믿음이 십자군시대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는 귀족들마다 가정사에 문제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도 나약한 인간이거든요... 정작 예루살렘왕국 근처도 못가고 다시 끊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예루살렘왕국 내 가장 큰 봉지였던 에데사백국과 안티오크공국, 그리고 트리폴리백국의 역사는 한 번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더 가능하면 사이프러스왕국도 함께...

의욕은 앞서지만 시간이 허락해 줄까요...? ~~~

 

풀크의 가족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두번째 부인의 자손 이야기가 됩니다...

 

 

Fulk V (1089-1143)

Count of Anjou 11061129

Count of Maine 11101126

[with Ermengarde]

King of Jerusalem 11311143

[With Melisende]

 

 

In 1110, Fulk married

Ermengarde, Countess of Maine

(died 1126)

Geoffrey V(1113-1151)

Count of Anjou, Touraine,

and Maine

House of Plantagenet

 

Sibylla of Anjou

(11121165)

Countess of Flanders

 

 

Matilda of Anjou

(11111154)

Duchess of Normandy

 

 

Elias II of Maine

(died 1151)

Count of Maine

 

In 1129, Fulk remarried

Melisende, Queen of Jerusalem

(1105-1161)

Baldwin III of Jerusalem

(1130-1163)

King of Jerusalem 11431162

 

 

Amalric I of Jerusalem

(1136-1174)

King of Jerusalem 1162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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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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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통장 | 작성시간 14.04.04 캬 결혼을 통한 확장이나 아내 강탈이나 과연 크킹 배경답네요ㅋㅋㅋ
  • 작성자라플 | 작성시간 14.04.04 크킹가계도만 봐서는 이해가 안되던게 쏙쏙들어오네요
    앙주가문과 플랜태저넷 그리고 프랑스앙주왕가가 그렇게 헷갈려서 한참을 봤었거든요 점점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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